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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만 따뜻한 마주침

마음을 채워줘서 고마워요.

by 삼각커피


“오늘은 통신사 할인 안 하세요? ”


어느 날은 집 바로 앞에 있는 마트에 갔다가 직원분이 할인 적립을 물어보셨다. 하루에 한 번은 꼭 가고 갈 때마다 할인을 받았는데 그날은 핸드폰을 두고 몸만 왔더니 그걸 기억하신 거다. 그 이후로는 어쩔 때는 나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밖에 나와계시는 직원분과 눈이 마주쳐 알아봐 주시니 인사도 드리고 안부도 나눈다.


자주 가는 동네 치킨집은 배달은 안되고 포장만 되는 곳인데 깨끗하고 저렴한 데다 반마리 포장이 되니 나에게 정말 딱 맞는 가게다. 이 가게도 꾸준히 자주 가게 되니 내가 항상 주문하는 메뉴도 미리 알고 있고, 항상 뭘 입고 오는지도 기억하고 계신다. 낯가림이 있는 나도 이 년 넘게 이용하니 기다리면서 먼저 간단하게 안부나 가게 하면서 궁금했던 부분도 물어볼 정도로 낯이 두꺼워지고 편해졌다.


책상에 10시간 이상 앉아서 작업만 하며 집에서만 생활을 할 때, 난 나 나름대로 집에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고 혼자서도 재밌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떨 때는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한 집안에서 덩그러니 하루 종일 앉아 그림과 씨름하는 내 모습과 함께, 하루 종일 입 밖으로 단 한마디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낸 오늘의 시간이 파도처럼 확 밀려들면 지금 내가 쓸쓸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헛헛해진다. 그럴 때는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주고 간단히 씻고 동네 투어를 하러 윗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서는 거다.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단골 가게들을 들러 한아름 먹을거리를 손에 들고 넘어가는 해와 물들어가는 노을을 보고 밖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도 보며 집안에서는 몰랐던 세상을 구경을 한다. 가는 길은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조금 돌면 있는 인테리어 가게 들러 진열장에 항상 올라가 있는 강아지와 인사를 한다. 나를 보고 문 틈으로 들이미는 코에 내 손 냄새도 맡게 해 주고 한참을 서로 마주 보다 집으로 돌아온다.


풍성한 식탁. 그리고 가볍지만 작고 소소한 마주침으로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은 차오르고 위로가 된다. 꼭 숨이 푹 죽은 것 같던 마음에 물 분무기를 뿌린 것처럼 마음의 숨이 다시 살아난다.


대학생 때, 밤을 새 과제를 할 때가 많았다. 한숨도 못 자고 완성을 해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고 아침 수업에 과연 이 과제를 완성해 가져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새벽을 지새울 때, 나에게 의지가 된 건 창 밖으로 보이는 새벽을 밝히는 다른 건물의 불 빛이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도 지금 이 새벽에 자지 않거나, 혹은 자지 못하고 깨어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 새벽을 버티는 힘이 됐다.


가게를 하는 요즘은 저녁 늦게 손님이 없는 가게를 홀로 지키고 있을 때, 가끔은 뚝 떨어진 섬에 홀로 남겨져 있는 것처럼 무서운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는 괜히 문 앞으로 나가 기웃거리며 주변 가게들의 켜진 불 빛을 보고, 도로를 달리는 차도 구경한다. 친한 사이도 아니고 내 옆에 든든히 지켜주지도 않는데 인기척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항상 오는 단골손님이 일주일 넘게 가게에 들리지 않으면 괜히 걱정이 되고 안부가 궁금해진다.


친하고 깊은 사이는 아니더라도, 인사와 안부를 나누고 얼굴을 기억하는 가벼운 관계는 ‘어울림’을 알게 해 주는 기본 부품이자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아무리 세상을 혼자 살아간다고 해도, 완전한 혼자는 쓸쓸하다. 어느 영화처럼, 인류 모두가 멸망한 지구에 혼자 남게 된다면 과연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다. 깊고 끈끈한 사이는 아니지만 지금 이 시대, 이 땅 위에 간접적이지만 서로가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어려움이 오면 같이 위기를 겼었다가도 봄이 오면 모두가 행복해하며 따뜻한 봄을 만끽한다. 그렇게 서로의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인연들이 소소히 짜이고 엮여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브런치에서 연제한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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