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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Jun 21. 2021

집순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카페가 생기니 좋은 점


이 공간이 카페처럼 보이게 해주는 물건들이 하나둘 쌓이고, 계산 포스기까지 놓으면서 오픈에 박차를 가했다. 가끔 사람들이 공사 중인 가게 앞을 지나면서 '여기 뭐 생기는 거예요?'라고 물어봤는데, 이제는 '여기 카페예요?' 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분, 들어와 카페를 구경하고 음료를 주문하는 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 갓 뽑은 에스프레소에서 나는 고소하고 묵직한 커피 향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가게 안을 울리자 이제야 아, 내가 가게를 차렸다는 게 실감이 났다.


'오전 10시 30분에 오픈'이라는 고객과의 약속이 생기자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출근시간이 회사처럼 이르지 않아 여유롭게 일어나도 되고, 가게를 집과 멀지 않아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걸어서 출근을 하니 그 길이 그렇게 상쾌하고 즐거울 수 없었다. 빨간 머리 앤이 처음 기차에 내려 '초록지붕 집'을 향해 마차를 타고 가는 기분이랄까?


화려하진 않아도 내 취향껏 꾸미고 '생활과 분리된 공간'된 공간에서 손님이 없을 땐 한구석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손님이 오면 음료를 만들고 서빙을 했다. 곳곳에 놓은 상큼한 시트러스 한 향이 항상 코 끝에 머물고, 내 취향의 노래가 빈티지 스피커에서 부드럽고 조용히 흘러나왔다. 한 여름에는 에어컨도 엄마 눈치 보지 않고 실컷 틀어놨다. 시원하게 튼 에어컨 바람 덕에 뽀송한 책상 위에 팔을 붙이고 앉아 그림을 그리다 손님을 맞이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처음 나의 원대한 계획은, 가게를 계약한 2년 동안 일러스트레이터와 카페 사장, 이 두 직업의 균형을 잘 지켜서 나를 괴롭힌 무기력을 타파하고, 손 놓았던 그림도 다시 일정 수준 수입이 나는 반열로 올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그림'을 정말 다시 그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당장 하루 수입은 적지만 지긋지긋한 방구석에서 탈출할 수 있고, 나만의 작업 공간이 생겼고, 나도 남들처럼 출근을 하고 있고, 어엿하게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다는 만족감에 그저 좋고 행복했다.


로망은 로망을 뿐, 또 다른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감사하게도 카페가 어디인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세요. 자랑할 만큼 멋지지도 않고 소개가 쑥스럽기도 합니다. 여러 솔직한 이야기들을 위해 카페 위치나 이름은 밝히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음만이라도 물어봐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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