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기력해지는 것이 더 무서웠다.
카페를 차리는데 들어갈 비용과 매달 내야 하는 월세와 유지비, 자유시간 없이 운영해야 하는 일인 카페. 카페를 차렸을 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잘 알지만 나는 이 무기력과 우울에서 (특히 무기력과 우울의 원인이 되는 집과 내 방구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방구석에서 그냥 숨만 쉬면서 산 지 1년이 넘어갔다. 어떤 목적이나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걸 목표로 나아가려 노력했을 텐데 그런 것 하나 없이 그냥 살아만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냥 살아만 있다는 게 숨이 막혔다. (관련된 이야기는 <오늘도 집순이로 알차게 살았습니다>에 나와있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 외의 주제이니 간단히 넘어가자.)
실상 백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 가끔 들어오는 작업 의뢰에 그림을 그리며 띵가띵가 여유롭게 사는 삶. 물론 그렇게만 살아도 충분한 자본이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세상이 없고, 그렇게 살아도 멋진 인생이다. 그런데 모아둔 돈도 없으면서 아무 계획도 없이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잉여인간이지만 스스로 인정하지는 못하고 얕디얕은 일러스트레이터의 경력을 움켜쥐고 들어오지 않는 일을 방 안에서 손가락만 빨며 기다릴 수 없었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일러스트레이터 활동은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곧 잘될 것만 같은 희망을 주며 부모님도 '어디 잘되나 한번 지켜보마' 정도로 지지해 주었지만 시간은 점점 흘러 30대가 되었고, 겁 없이 뛰어든 그림 관련 장사도 2년을 못 채우고 폐업한데다가 그림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일도, 수입도, 영 흐지부지했다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좌절감, 사회에서 어떤 역할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동시에 아직 포기하지 못한 그림도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머리를 굴리고 굴린 끝에 카페가 떠올랐다. 카페는 당시의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자 유일한 선택이었다.
하루하루 '노동'을 하고 그 '대가'를 받는 행위는 생각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들어준다는 걸 카페를 운영하며 느꼈다. 일주일 중 하루를 쉬고 보니 휴식의 귀중함도 알았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과 고된 일과 끝에 얻는 휴식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었고, 쉬는 것이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닌 순수한 기쁨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면서 추가로 '작은 카페 사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