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벤자민은 고불고불 잎이 매력적인 고무나무과의 식물이다. 언젠가 우연히 SNS에서 사진을 본 후 언젠가 꼭 키우고 말겠다 눈독을 들였는데, 마침 온라인 화원에서 판매 중인 것을 보고 냉큼 품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식물을 구입하다 보면 어떤 녀석이 오게 될까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지만, 마음에 드는 수형을 직접 고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내게 온 바로크씨가 그랬다. 가운데 줄기가 사선으로 휘어 있었던 것. 이렇게 키우다가는 한쪽으로만 자라 언젠가 꺾여버릴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바로크씨에게 지지대를 세워 주기로 했다. 처음엔 집에 있는 나무젓가락을 사용해 줄기를 바르게 세운 후 철사 끈으로 대충 묶어 주었다.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젓가락과 흙이 맞닿은 부분에 하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아차 싶어 황급히 젓가락을 뽑아내자, 애써 곧게 서있던 바로크씨가 풀썩 하고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원예용 식물 지지대는 얇은 철사처럼 보이지만 적당한 두께와 무게감을 가졌다. 식물의 줄기와 비슷한 초록색이라 미관을 해치는 일도 없었다. 동네 소품점에서 단돈 천 원에 얻은 훌륭한 소확행. 내심 뿌듯해하며 화분 속으로 조심스레 지지대를 밀어 넣었다. 행여나 뿌리가 다치진 않을까 손 끝에 온 감각을 집중시키고는, 휘어진 줄기를 지지대에 바싹 붙여 다시 한번 끈으로 고정해 주었다.
간신히 지지대에 매달려 있는 바로크씨를 보니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 녀석은 옆으로 자라길 원하는 건 아닐지. 내가 주고 있는 도움이 사실은 바로크씨를 힘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하자 조금 미안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로크씨는 점차 지지대에 적응해 갔다. 뿐만 아니라 서서히 휘어진 줄기를 펴고 바른 자세로 하늘을 향해 곧게 서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아래쪽 잔가지들을 정리해 주었다. 꿈에 그리던 외목대의 멋진 수형이 되었다.
요즘 바로크씨는 집에서 해가 가장 잘 들어오는 창가에서 독보적인 미모를 뽐내고 있다. 매력적인 잎들은 산소를 뿜어내며 특유의 공기정화능력을 발휘하는데 여념이 없다. 매주 윗부분에 꼬불꼬불 새순을 마구 만들어 내면서도 그 무게에 흔들리지 않는다. 집 안까지 들이치는 비와 바람도 거뜬히 견디어 낸다. 모든 건 지지대의 도움이 있어서다. 이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어떤 식물에게는 지지대야말로 아름답고 건강한 삶의 비결이라는 것을.
지친 몸과 마음에도 지지대를 세우고
요즘 들어 회사생활이 버겁다. 올 초 믿고 의지 했던 팀 동료가 회사를 떠났고, 내 의도와 무관하게 엉뚱한 일로 오해를 받는 사건도 있었다. 도무지 존경심이 들지 않는 감정적인 상사 밑에서 종일 덩달아 널을 뛰다 보면, 퇴근 후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진 상태가 되고야 만다. 그런 상태로 잠이 들면 꿈속에서도 계속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라 좋지 않은 신호들이 불쑥 고개를 들었을 때, 겨우 정신을 차리고한의원을 찾았다.
"스트레스가 심하신가 봐요. 지금의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많이 약해지셨어요."
한의사는 이렇게 말하며 당분간은 몸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권해 주었다. 다음날 집으로 배달된 한약 파우치를 냉장고에 옮겨 넣으며 '이깟 한약을 먹는다고 좋아질까' 생각하다가, 짐짓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한약이 휘청이는 나의 육체를 지탱해 주길. 일상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마음에도 지지대가 되어 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다.
잘 살아가다가도 이유 없이 지칠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꾸만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 같고, 그래서 혼자 힘으로 서 있기 조차 버겁다면, 인생에 지지대가 필요한 시절이다. 그럴 땐 잠시 숨을 고른 후 기댈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처럼 누군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내게 에너지를 주는 좋은 습관에서도 찾을 수있다. 그저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몸과 마음을 단단히 붙잡을 수만 있다면,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첫 한약 파우치를 개봉해 본다. 한약재의 쓰디쓴 향이 익숙치 않다. 모서리를 가위로 잘라 컵에 따라 담으며 조용히 스스로에게 속삭여 봤다. '야 이거 되게 비싼 지지대야. 바로크씨의 천 원짜리 지지대보다 몇십 배, 아니 몇백 배나 더 비싼 거라고. 그러니까 지친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보자고. 그러고 나서 구겨진 마음도 함께펴보는 거야. 그렇게 차근차근 몸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힘든 상황도 잘 견디어 보자. 그러니 눈 딱 감고 한 번에 쭉 들이켜. 쭈~욱!
글.그림: 김세경(꽃개미)
회사원이며 작가.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
/낮에는 HR부서의 교육담당자로 일하며, 퇴근 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식물을 돌보는 일에 즐거움을 느껴 8년째 키우고 있습니다. 잘 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