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그런 날 있잖아 여행지에서 맥주를 마시고 숙소로 들어가려다 문득 밤 산책이 가고 싶은 날.
그런 날은 하필이면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지도 없이 걷곤 하는데 걷다 보니 점점 습한 기운이 드는 게 갑자기 바다 냄새가 나는 거지.
그렇게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걷다 보면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거고, 다시 한 다리 건너 길을 따라가다 보면 반쯤 떠오른 달에게 빛을 애원하며 소리치는 바다가 보이는 거야.
나는 반쯤 부족한 달빛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멍하니 쳐다볼 거고, 바다 냄새 어딘가엔 여기저기 뒤섞인 맥주 향이 딸려 오겠지.
그렇게 냄새를 쫓아 고개를 돌렸을 때 하필이면 그곳엔 불 꺼진 핸드폰을 한 손에 쥐고 은은한 맥주 향을 풍기는 네가 있는 거야.
아마도 나만 그날따라 맥주를 마신 건 아니었단 말이겠지.
말을 걸어볼까 마음 따라 엉덩이를 조금씩 들썩이며 네 쪽으로 옮겨도 무심한 듯, 바람 따라 움직이는 네 발 걸음에 우린 점점 멀어지는 거야.
잠시 동안 멀어지는 네 뒷모습을 보며 일어날 생각일랑 못 해본 나는 이내 고개를 숙일 거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바다를 쳐다보며 애꿎은 달빛만 탓하겠지.
그러다 답답한 마음만큼 큰 소리로 에휴. 한숨 한 번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불쑥 가로등에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바다 냄새 섞인 맥주 향. 아,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었구나. 그저 바람 따라 흘러갔을 뿐인데. 한 가지 깨달음. 어느새 바람은 나를 향해 불고 있던 거야.
한숨 소리가 들렸던 거지. 무슨 고민이 있냐는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피다 문득 떠오른 생각. 바람이 떠나길래. 적당히 두리뭉실한 대답. 그리고 끄덕이는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