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스페인어로는 그렇게 떠들기 좋아하면서 영어만 나오면 왜 그렇게 주눅 들던지 호스텔처럼 여러 국가 사람들이 한 방에 모이는 곳에서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하면 나에게 말을 걸진 않을까 괜히 애꿎은 배낭을 정리하는 척. 딴청을 하기 바빴다. 멕시코시티를 떠나 도착한 바깔라르에서도 마찬가지로 호스텔을 찾았다. 다만 이번엔 그동안 틈틈이 공부한 영어가 빛을 바라길 기대했다.
“안녕, 반가워. 네 이름이 뭐야?”
미국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4개국 인이 섞인 호스텔 방에 동양인이 들어왔다. 그들 중 두 사람은 하던 대화를 마치더니 내 이름을 묻는다.
“나 상가인데! 한국인이야. “
서로 이름을 주고받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퇴근하고 자기 전 30분씩 전화 영어 한 게 쓸모없지 않았다는 듯 말이 술술 나왔다. 독일 사는 친구는 6개월 동안 휴가로 여행을 왔단다.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오래 휴가를 받았냐 물어보니 해맑은 목소리로 그러더라.
”나 일 관둬서 6개월 휴가야! “
그 말에 둘 다 한참을 웃었다. “그래?! 나도 관두고 왔는데!” 앞의 웃음에 조금 더 보태서 웃고. 일 관뒀는데 왜 6개월만 휴가냐 묻자 다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여준다. 암, 돈이 있어야 여행도 하지. 여행하는 삶이 좋아서 6개월 여행하고 돌아가 6개월 일하고 다시 여행하며 벌써 몇 년을 살고 있다고. 그러더니 대뜸 내일 일정을 물어보길래 버스를 타고 3시간을 이동한다하니 버스 말고도 좋은 교통수단이 많다며 걸터앉은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자기가 사용하는 교통수단 비교 앱을 보여준다. 귀에 닿을 정도로 짧은 금색 단발머리에 술을 한잔하고 들어왔는지 볼이 빨갛게 상기돼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프리카에 가면 호스텔에 찾아가 혼자 겉돌진 않을까 했던 고민이 이제는 고민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비록 잠시였지만 스페인어로 떠들며 놀던 멕시칸 친구들을 제외하고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차오르는 설렘이 온몸을 은은하게 맴돈다. 맴도는 설렘을 하나씩 잡아 가슴에 채울 때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은 익숙함에서 떠난다는 불안과 새것을 맞이한다는 설렘이 공존하는 시간. 설렘이 불안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서로가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비로소 그것을 여행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