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와서 지낸 지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주에 예보됐던 비 소식대로 하늘이 어두컴컴하고 바람이 많이 불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학교를 가는 길에서는 나와 다른 모습을 하고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을 많이 마주친다. 물건을 사러 가게에 들어가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르게 생긴 사람이 계산을 해준다.
해외에 나와서 지낼 것을 생각하면서 걱정했던 것 중에 한 가지가 인종차별이다. 유튜브나 인스타 같은 미디어에서 실제로 여행 중에 인종차별을 당한 사례들에 노출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지금까지는 한 번도 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오히려 차별이 아닌 다른 행동에 놀랐다.
사람들이 붐비는 아침 시간대에 좁은 인도 길을 지나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만 부딪혀도 “Sorry”라는 말을 거의 자동적으로 건넨다. 사소한 접촉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두 눈을 마주치며 하는 모습을 보고 그 태도에 놀랐다. 그 이후엔 나도 누군가와 부딪히는 상황이 되면 “오 쏘리!”라고 말을 내뱉으며 그 태도를 따라 하려 했다.
학교를 오고 갈 때나 친구들과 놀러 갈 때엔 구글맵을 쳐다보며 우리가 타야 할 지하철과 버스의 번호를 유심히 찾아본다. 분명 유심히 찾아봤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불규칙적이고 복잡한 런던의 대중교통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정거장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고 싶은 목적지를 말하며 방법을 물어봤는데, 지금까지 물어봤던 모든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마트나 길거리에서 구경을 하고 있으면 종종 “How are you?”라고 물어본다. 처음엔 내가 어떤지 왜 물어보는지, 우리가 흔히 아는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라고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었다. 그러다 요즘 많아진 영어 실생활 표현들을 다루는 쇼츠 영상에서 스몰토크에 대해 보게 됐다. 영상대로 여기서는 처음 만난 사람과도 그냥 인사로 안부를 묻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본인이 아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이어가려 한다.
런던에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것 같다. 우리 집은 흑인 아주머니와 아들이 있고, 한 친구의 집에는 파키스탄에서 오신 분들이 그리고 다른 친구가 지내는 집에는 이집트에서 오신 분들이 계신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서로를 존중하고 또 부족한 부분들을 알려주며 배려한다. 처음에 내가 걱정했던 것과 전혀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나와 한국 친구들을 친절하게 대해줬으며 오히려 그들의 태도를 보며 내가 많이 배웠다.
이러한 모든 태도들이 언어를 습득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다양한 어휘를 많이 알고, 문법 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또 훌륭한 발음을 가졌어도, 언어는 태도가 제일 중요하다. 작은 부딪힘에도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말을 내뱉으려는 태도. 외국인이 부정확하게 말을 걸어와도 경청하며 길을 알려주려는 태도.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사람이 보여도 안부를 물으며 공통 주제로 대화를 해보려는 태도. 이런 태도들을 가졌을 때 비로소 언어에 대한 학문적인 지식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나도 그들의 태도를 본받아서 언어와 소통에 능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나아가 이런 태도를 핑계 삼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문적인 이해와 지식 습득에도 게으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일 수업을 위해 자야겠다.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