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단순히 식사를 위한 가구의 도구적 정의를 뛰어넘는다. 먹는 자리는 먹는 사람과 먹는 음식을 포괄하니, 식사의 형태와 내용을 결정한다.
네모진 식탁은 기능적이다.
기본적으로 마주 봄은 동등하고 객관적이어서, 머리를 맞대는 협상을 연상한다. 가정용 4인용 식탁이야 모두가 하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크기여서 문제 될 것 없으나,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상황은 바뀐다. 같은 선상의 사람은 옆자리가 아니면 이야기를 나누기도, 눈을 맞추기도 어려워진다. 마주 보는 쪽은 적나라하다. 가까운 거리와 직접적 마주함은 어색함을 남긴다. 무난한 사이가 아니라면 서로의 무게를 피하려 대화의 주제를 찾는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면, 멀어질수록 시각은 좁아진다. 어쩔 수 없이 나를 중심으로 한 좌우와 마주 보는 세 명으로 관계는 굳어진다. 인원이 많은 회식이 시간이 흐를수록 소규모 그룹으로 나뉘어, 그를 만회하기 위한 자리 옮기기와 모두를 위한 건배사가 생기는 이유다.
협상을 위한 쌍방의 대치 형국이건 여럿이 모인 식사의 자리건, 네모진 식탁은 서열을 만든다. 한 열의 가운데가 중심이 되어, 서열이 낮을수록 테이블의 끝단으로 몰린다. 예절을 갖춘 서양의 식사 자리 배치 역시 마찬가지다. 긴 테이블의 양쪽 끝에 주인 내외가 마주하여 앉고, 손님과 식솔이 긴 면에 나란히 마주 보며 자리한다. 서열과 관계를 고려한 자리배치는 연회를 마련한 주인의 의무이자 권리다.
원탁은 상반되어 관계지향적이다.
여럿이 한자리에 앉지만 모두와 눈을 맞춘다. 각각에게 배분되는 시야 역시 고르게 나뉜다. 정면의 끝은 멀어지는 거리에도 고개 돌리는 수고 없이 마주 봄이 가능하다. 그래서 서양은 평등의 의미를 원탁에 담았다. 국제기구의 회의 자리는 국가 간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해 원탁에서 이루어진다.
중국의 식탁이 둥글다. 소규모, 가정용은 네모진 형태도 많으나, 온 가족이 모이는 식사자리와 공적 사적 모임의 자리는 당연히 원탁에 둘러앉는다. 식당의 큰 테이블에는 15명까지도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다.
그 원탁에도 자리의 서열이 있으니 평등을 우위에 놓진 않았다. 입구나 문을 마주하는 안쪽의 자리가 상석이다. 상석에서는 그 자리의 사람과 음식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석의 뒤는 커다란 벽이니 보통 액자가 걸리거나 장식이 있어, 반대쪽의 사람이 바라봄에도 앉은 이의 권위가 선다. 상석에 앉는 주인의 오른쪽으로 2, 4, 6, 왼쪽으로 3,5,7의 순으로 서열에 따라 앉는다. 입구를 등진, 상석의 맞은편은 말석이거나 손님을 대접하는 주인의 처가 앉는다.
상석의 좌우가 그날의 중요한 손님이니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술을 권한다. 마주 보는 네모진 식탁의 자리와는 마음가짐도 행동도 달라진다. 비스듬히 마주하니 가깝고, 정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으니 부담은 덜하다. 고개를 숙여 조용히 귓속말을 전하고, 팔을 잡고, 등을 두드리며 술을 권한다. 정면으로 대면함이 기능석이고 이성적이라면, 원탁의 교류는 정(情)적인 관계를 만든다.
동그란 원탁(圆桌)은 탄위엔(团圆)을 상징한다. 한데 모이는 단합과 단란함의 의미다. 매년 춘절엔 온 가족이 원탁에 둘러 않아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워 새해를 맞는다. 가을의 한가운데인 중추절 보름달도, 그를 닮은 월병(月饼)도 둥글다. 똑같이 탄위엔(团圆), 한데 모인 단란함을 상징한다.
원탁은 음식과 함께, 가족의 단합을, 주변과의 원만한 관계와 일의 순조로움을 기원하며 담는다. 각 지지 않은 둥글둥글한 모습처럼 원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