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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Oct 09. 2021

모호한 태도에서 나오는 관계의 실수

문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실수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처럼 서로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없다면 쉬운 문제이겠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어려움은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가장 큰 숙제임은 틀림없다. 가끔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겪는 외로움이나 어려움 그리고 배신감은 나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특히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다른 또 다른 불신을 낳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사실 잘하는 듯 하지만 부족한 걸 매우기 위한 몸부림이 큰 소심한 사람이다. 매 순간 생각이 많아 적절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함에 스스로 지치는 그런 햄릿형 인간이다. 요즘 말로는 결정장애라고도 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고민이 많은 나도 돈키호테형 인간을 추구한다. 햄릿형 인간과는 달리 저돌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민 많은 사람이 저돌적인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둘의 장단점이 있단 말인가.


생각이 많은 사람은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가까운 듯했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고, 통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나만의 모호한 태도들이 그렇다. 그래도 잘하는 것 하나가 있다면,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물론 거리를 둔다는 이야기가 사람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거나 대충대충대충 한다는 뜻은 아니다. 즉, 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기름기 줄인 관계 형성을 말한다. 


Photo by@paris_shin / 한상권


사람은 외로움에 취약하지 않은가.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이득이 될까에 대한 기대를 한 껏 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만나는 게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만남의 이유가 있고, 관계 형성에 목적이 있다면 그게 과연 우리가 필요한 인관관계의 본모습일까 라는 생각은 고민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쉽지 않겠지만, 자신의 형성할 수 있는 관계의 마지노선을 정해놓는 건 어떨까. 이유가 있는 관계를 위해서는 적절하지 못한 이야기로 무의식적인 과장하게 되고, 생각지 못한 실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실수란 그런 것이다. 내 본연의 모습을 감추거나 빛나게 하기 위해 나를 포장하는 언어와 행동에서 오는 부정적인 영향력인 것이다. 마음이 앞서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불안함으로 시작하는 관계점은 브레이크 없는 KTX와 같아서 한계점을 모르고 직진만 하게 된다.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는 실수로 무너지게 되고 복원이 필요 없는 저마다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내부의 압력에서 시작하는 행동에서는 유연한 흐름을 상실하게 되고, 나만의 페이스는 무너지게 된다. 매 순간마다 자신을 발걸음을 찾기 위해 진정 신경 써야 할 대상과의 관계는 소홀해지고 만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 마지노선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의 시간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생각을 노트에 적으면서 이야기를 경량화해보면 모든 결정을 하기에 손쉬울 수 있다. 


모호한 태로에서 나오는 포장된 행동은 부자연스럽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낸다. 나름의 감이 있다고 말해야 할까. 그런 꺾어지는 듯한 로봇의 굳은 관절과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벗어나기 위해 고민에 몰두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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