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안다는 것'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있는 것 같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도 하고 아는 것이 병이라고도 하니 말이다. 과연 무엇이 옳을까?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처음 발견해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제임스 D. 왓슨(James D. Watson) 박사는 2008년 역사상 두 번째로 개인 게놈지도를 완성하고 이를 일반이 열람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공개했다. 그러면서도 19번째 염색체에 있는 아포리포 단백질 E(ApoE)의 유전정보만은 본인도 알려고 하지 않았고 대중에게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ApoE는 세 가지 변형체가 있는데 이중 E4형은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후발성 알츠하이머(Late-onset Alzheimer Disease; LOAD)의 발병 위험을 최대 20배 까지 높일 수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Hauser & Ryan, 2013). 참고로 최근 개봉된 줄리언 무어 주연의 영화 '스틸 엘리스'에서 엘리스가 앓았던 병은 조발성 유전형 알츠하이머(early-onset familial Alzheimer disease; eFAD)로 관여하는 염색체가 LOAD와는 다르다.
왓슨 박사는 알츠하이머의 예방과 치료가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약 본인의 LOAD 발병 위험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들 그 '안다는 것'으로 인해 걱정만 늘 뿐이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즉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생각이다.
아는 것은 병일까? 실제로 유전자 분석 결과 본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시적인 우울증과 불안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덕분에 이를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는 활동을 실천한다면 '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기적인 운동이 알츠하이머병의 발병을 예방하거나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Adlard et al 2005; Intlekofer & Cotman 2013; Radak et el 2010). 이렇게 본인에게 맞는 건강한 습관을 알고 실천할 수 있다면 '아는 것은 힘'이 된다.
'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는 내 몸에 대해 아는 것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파악하고 실천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 즉 '아는 것은 힘'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용하느냐에 따라 아는 것은 약이 될 수 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잘못된 지식이라면 모르는 것 보다 나을 리 없다.
우리 몸은 수 많은 생물화학적 피드백 메커니즘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유기체다. 그래서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우리 몸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 생물학은 단일 세포의 수정란이 분화하여 복잡한 장기를 형성하는 과정은 상세히 알고 있지만 그 기전(機轉, mechanism)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내고 있지 못하다. 한 마디로 우리 몸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을 다루는 의사들은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도 공부와 훈련을 다른 직업보다 오래 시키지 않나.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과 의학이 과거에 비해 우리 몸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과거에는 극 소수의 전문가 집단에서만 공유되었던 고급 지식의 문턱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한 층더 낮아졌을 뿐 만 아니라, 전문지식을 대중이 이해 수 있는 언어로 번역, 해석하는 고급 지식의 전파자들이 블로그, 위키피디아, 유튜브 등 여러 인터넷 미디아를 통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전문 지식 없이 여기 저기서 얻은 자투리 정보와 상식만 가지고 섣불리 건강 문제에 대해 판단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따라서 건강에 이상이 감지되었다면 다음과 같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차근 차근 자신의 몸에 대해 공부하는 게 좋겠다:
첫째, 의사를 찾아보고 가능한 빨리 정확한 진단을 받는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원인을 정확히 모르고 무작정 증상 치료부터 시작하다가는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처럼 ("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 2. 정비 불량 차량 퍼지다 참조) 한 번의 진단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도 있기 때문에 사안의 경중에 따라 필요하다면 다른 의사의 의견(second opinion)을 받아 보는 것도 좋다.
둘째, 진단받은 건강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한다.
관련 전문의가 아니고서는 해당 분야의 최신 의학 논문을 만화책 읽듯이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요즘 저명한 의사들이 집필하거나 감수한 대중적 고급 의학 정보를 접하기는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예를 들어 영문으로 된 의학 정보 포탈인 WebMD.com를 보자. 의학 전문 기자가 쓰고 의사(MD)가 감수한 최신 의학정보들이 매일 업데이트된다. 그 내용도 다이어트에서부터 암에 대한 최신 의학정보까지 다양하다. 1975년 도날드 W. 켐퍼가 세운 의학 정보 전문 기관, Healthwise로부터 의학정보를 제공받아 원문을 서비스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마요 클리닉(Mayo Clinic)의 웹사이트도 좋은 정보로 가득하다(mayoclinic.org). 윌리암 W. 마요 박사가 1864년에 설립한 마요 클리닉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냥 큰 병원 이상의 기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 종합병원으로 연구개발(R&D) 예산만 연간 5,000억 원을 넘게 지출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국립보건연구원의 연구개발 예산은 연간 500억 원 수준이다. 이 웹사이트에는 여러 건강정보를 증상, 병명, 검사, 약과 식품 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국문 정보로는 국내 유명 병원들이 네이버 지식백과에 올린 글들, 한국정형외과학회(koa.or.kr)와 같은 개별 학회의 웹사이트에서도 유용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셋째, 진단받은 건강 문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따로 자료를 수집했더라도 임의로 판단하지 말고 반드시 의사와 상의한다.
믿을 수 있는 기관이나 저자가 제공한 정보라 할지라도 의료정보의 특수성 때문에 독자가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 했을 수 도 있다. 따라서 의사와의 상담 때 자료수집 과정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나 이해했더라도 그 중요성에 비추어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물어보는 것이 좋다.
물론 이것이 우리 나라의 의료 현실에서 쉽지는 않은 얘기 기는 하다. 한 번은 국내 유명 척추 전문 병원을 갔는데 다음 환자를 진료실 안으로 불러 바로 내 뒤에 앉히는 바람에 제대로 된 얘기도 못하고 5분 만에 일어난 적이 있다. 환자의 사생활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경우였다. 환자당 10분 정도를 잡고 공장에서 껌 찍어 내듯 진료를 하니 제대로 된 상담이 될 수 있겠나? 또 이것저것 물어 보면 친철히 대답해 주시는 의사분들도 계시지만 은근히 짜증을 내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의료법의 환자의 권리와 의무(제1조의 2 제1항)에 따르면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병명, 증상, 원인, 치료 방법, 부작용, 비용 등에 대해 이해될 때까지 설명받을 권리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해될 때까지 라는점. 그러므로 법에서 보장하는 환자로서의 권리를 꼭 챙기자.
넷째, 수집한 정보를 정리하고 의사와의 상담내용, 새로 확인한 내용은 반드시 메모해 둔다.
기말고사에 반드시 나온다는 심정으로 수집한 정보를 정리하자. 따로 노트를 만들어 연구 노트나 실험 노트를 쓰듯이 새로 수집한 정보의 출처, 내용 등을 정리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휴대전화의 노트 기능을 이용해 그때 그때 메모해 두거나 사진 첨부가 필요한 것은 사진을 찍어 내게 이메일로 보내 놓고 이따금씩 정리를 해 둔다.
정리한 내용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혹시 자신의 생활 습관 중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또는 본인의 건강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이 있는지를 기록해 둔다.
다섯째, 신뢰할 수 있는 건강정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다.
오늘의 정설이 내일 하루 아침에 폐기될 수 있는 것이 현대 과학이다. 따라서 항상 새로운 지식에 눈과 귀를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관련 웹사이트의 뉴스레터를 구독한다든지,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의 의학 정보를 주의 깊게 본다든지, 관심 분야가 같은 커뮤니티에 가입한다면 중요한 새 정보를 놓질 확률을 줄일 수 있겠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나의 나쁜 습관, 그 때문에 얻게 된 병, 그 예방법을 쓰려고 한다.
'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는 건강을 잃고 나서 느낀 것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수집한 정보와 경험을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환경과학경영 대학원 교수)
Adlard, P. A., Perreau, V. M., Pop, V., & Cotman, C. W. (2005). "Voluntary exercise decreases amyloid load in a transgenic model of Alzheimer's disease". The Journal of Neuroscience, 25(17), 4217-4221.
Hauser PS, Ryan RO (2013). "Impact of apolipoprotein E on Alzheimer's disease". Current Alzheimer Research 10 (8): 809–17.
Intlekofer, K. A., & Cotman, C. W. (2013). "Exercise counteracts declining hippocampal function in aging and Alzheimer's disease". Neurobiology of disease, 57, 47-55.
Radak, Z., Hart, N., Sarga, L., Koltai, E., Atalay, M., Ohno, H., & Boldogh, I. (2010). "Exercise plays a preventive role against Alzheimer's disease. Journal of Alzheimer's Disease", 20(3), 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