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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Aug 24. 2015

2. '내 몸'이란 정비 불량 차량 드디어 퍼지다

산티아고에서의 돌발상황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을 등지고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칠레의 아름다운 도시, 산티아고.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 따지면 세계적으로 몇 군데 없는 Csb,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건조하고 시원하며 겨울은 온화하다. 일 년 내내 좋은 날씨에다가 유럽풍의 거리에는 맛갈스러운 레스토랑과, 화려한 바, 가성비 높은 와인이 가득한 이곳. 나는 칠레 재단(Fundacion Chile)과의 공동 연구 차 산티아고에 출장을 와 있었다.


그 날은 며칠간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나를 초청한 칠레 재단 연구자들과 근교의 Los Vilos라는 곳으로 나들이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도저히 목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아팠다. 그  전부터 어깨가 자주 결리곤 했는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파스를 붙인다거나 진통제를 먹는 정도로 넘겨 왔었다. 가끔 목이 뻣뻣할 때도 잠을 잘못 잤으려니 또는 베개를 잘못 벴으려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정도가 심했다.

나를 데리러 온 칠레재단 연구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그날 일정을  취소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러지 말고 다녀와서 마사지를 받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나도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건가 싶기도 해서 그냥 무작정 차에 올라탔다.


남미 친구들이 있다면 알겠지만 이 친구들 작정하고 놀면 밤새도록 열심히 논다. 차라리 깁스라도 했다면 다들 아픈 줄 알아 보겠지만 이 경우는 나 홀로 느끼는 고통이라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선택한 전략은 '안 아픈 척'. 그렇게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새벽에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표정관리가 너무 힘든 하루였다.

산티아고에서 5번 고속도로를 타고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달리면  작은 해안가 마을 Los Vilos가 있다.


느려진 시간과 좌절

그 다음 날도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나는 그 상태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지난 4년 동안 통증은 어깨와 팔까지 내려와 나를 괴롭혔다. 너무 아픈 날은 앉아있을 수 도 서있을 수 도 없어 누워만 있어야 했다. 통증이 심한 날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이 지경이 되기 전 까지만 해도 자투리 시간도  아까와하며 일에 매달려 왔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할 때면 마감 날짜가 가까워진 일들, 언제까지 해 준다고 하고 미쳐 못 다한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조급한 성격에 할 일은 계속 싸이고 누워만 있으려니까 무기력감이 엄습했다.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너무나도 빨리 돌아가고 있는데 나의 시간만은 느릿 느릿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만성통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자신감 상실이 아닐까?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감 날짜를 못 맞추는 일도 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자신감은 작아져 갔다. 일의 효율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이러다가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한참 통증에 시달릴 무렵 동부의 명문 사립학교에서 임용 관련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내 커리어에 있어서 둘도 없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통증이 있을 때는 집중하기가 참 힘들다. 앉아서 일을 좀 하다 보면 곧 통증이 심해져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인터뷰를 준비했다. 그러나 인터뷰 중에도 통증이 찾아오면 표정관리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인터뷰 준비도 깔끔하게 못한 데다가 누워 지내는 동안 자신감 마저 많이 상실한 상태라 좋은 인터뷰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최종 임용 결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정비불량 차량이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그렇게 퍼지고 만 것이다.


초기 대응

살면서 이런 문제를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나의 (잘못된) 대처 방법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 나는 마사지, 여러 가지 베개, 안마기, 지압봉, 진통제, 스트레칭, 찜질, 인벌전 테이블 (inversion table, 속칭 꺼꾸리 운동), 진통제, 비타민, 건강보조식품 등을 주워 듣는 대로, 닥치는 대로 해봤다.


체계적인 지식 없이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근본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읽는 글에 따라 내 문제가 극상근건염인 것 같다 싶다가도 또 다른 글을 읽으면 근막통증증후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보통 얘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담이 결린 것 같기도 했다.


그 보다는 진작 전문의를 찾아 봤어야 했다. 보통 목이나 어깨가 아프면 잠을 잘 못 자서 그렇다거나, 베개를 잘못 베고 자서 그렇다거나, 아니면 담이 결렸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이런 것으로 병원을 찾으려고 하면 '유난을 떤다'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전문가로부터 정확한 원인을  진단받지 않고 '카더라' 통신만 믿다 보면 되레 병만 키울 수 있다.  


전문의의 진단과 자료 수집

드디어 찾은 병원에서 MRI를 찍고 받은 진단은 속칭 목디스크,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경추 추간판 탈출(cervical disc herniation)이었다. 이곳 의사 말로는 퇴행성 질환이라 별다른 치료 방법은 없고 악화되면 문제가 있는 경추를 제거하고 골을 이식한 후 위 아래 경추를 접합하는 수술을 한다고 한다. 수술적 치료는 리스크가 큰 방법이었다. 나는 수술을 결정하기 전 우선 정확한 진단을 위해 귀국해 우리 나라에서 최신 장비를 쓴다는 병원을 찾았다. 거기서 정밀 진단한 결과 추간판 탈출 이외에 추간공 협착증(foraminal stenosis)을  진단받았다.


그때부터 추간판 탈출과 추간공 협착증에 대한 자료를 찾고 나름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덕분에 왜 신장결석이 자주 생기는지, 나의 어떤 생활 습관이 추간판 탈출과 추간공 협착증을 유발했는지, 또 앞으로 어떤 생활 습관이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는지 조금씩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비전공자가 건강에 대한 고급정보에 접근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꼈다. 상술과 진실된 정보를 구별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상당부분 영문인 학술 정보는 전문용어 장벽이 높아 한동안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학술논문을 쓰고 읽는 것이 직업인 내가 그렇게 애를 먹어야 한다면 한국에서 나와 같은 질환으로 고통받는 다른 이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서 '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는 건강을 잃고 나서 느낀 것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수집한 정보와 경험을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시작했다.


척추. 왼쪽 (위에서 본 단면): 아래쪽이 목 앞쪽(anterior). 노란색이 척수 (spinal cord). 오른쪽(뒤에서 본 모습): 척수 신경이 추간공을 통해 나와 있다.

내 몸 매뉴얼

우리 몸은 아주 복잡하고 정밀한 기계와 같다. 문제는 리콜이나 반품이 안 된다는 것. 좋던 싫던 잘 고쳐서 가능한 오래 오래 써야 한다.


그런 몸이 평소에 문제가 없다가 갑자기 반복해서 고장을 일으킨다면 잘못된 생활 습관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럴 땐 먼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며칠 또는 몇 주간은 열심히 생활 습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다가 증상이 호전되면 다시 예전의 나쁜 습관이 고개를 드는 경우가 많다. 비 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집을 나섯을 때  귀가할 때 까지 계속 비가 온다면 우산을 꼭 챙겨 오지만 중간에 비가 멈추면 우산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내게 맞는 건강한 생활 습관을 기록해 두고 이를 실천하는 것, 즉 매뉴얼에 의한 내 몸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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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는 건강을 잃고 나서 느낀 것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수집한 정보와 경험을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환경과학경영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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