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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Sep 19. 2015

7. 효과적인 디스크 치료법 찾기가 힘든 이유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입원환자를 낸 질병은 무엇일까? 올 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낸 자료에 의하면 2014년 한 해 동안 추간판 장애, 즉 목이나 허리 디스크로 입원한 환자는 27만 9000명으로 입원 요인 1위를 차지했다. 2012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낸 통계를 보면 2010년 한 해동안 디스크로 치료받은 환자는 219만 9천 명, 이 때문에 건강보험에서 지출되는 진료비만 6,860억 원을 기록했다. 디스크의 진단과 치료에 비싼 비보험 항목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한 해 디스크 때문에 지출되는 돈은 일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한 마디로

디스크 = 억수로 큰 돈

그러다 보니 인터넷이나 신문에 돌아다니는 디스크 치료 관련 정보엔 의술(醫術) 만큼이나 상술(商術)도 만만치 않다.


나는 방사통을 동반한 목디스크로 오랜 기간 고생하면서 다방면으로 치료법을 찾아 봤지만 마땅한 치료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목디스크 치료에 관한 논문을 들춰보고, 관련 법규, 의료시장의 생리를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야 왜 디스크 치료법 찾기가 그리 어려운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게 물어봐?

전문지식을 요하는 의료정보의 특성상 환자들은 의사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데 같은 진단 결과로 병원을 찾아도 병원마다 권유하는 치료법과 그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지난해 9월 척추전문의 신규철 박사가 KSB1 여유만만에 출연해 직접 소개한 친구분의 예를 보면 똑같은 허리디스크 진단으로 찾은 다섯 군데 국내 유명 병원에서 권유한 치료법은 미세감압술부터 후방 유합술, 인공디스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기 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2FPn5YWs1sg; 42분 41초부터).  


2013년 5월 18일 방영분 KBS2 '추적 60분', "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진실 [제1편] 위험한 열풍 - 척추 비수술 요법"과 같은 해 8월 6일 방영분 MBC 'PD 수첩', "과잉진료·탈법의 온상 네트워크 병원 실태 고발"에서도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비싼 비수술 치료를 권하는 유명 척추전문병원들의 과잉치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도 처음 방문한 유명 척추 전문병원에서 수백만 원 하는 비보험 비수술 치료인 신경성형술(neuroplasty)을 당일날 바로 들어가자고 해서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 병원은 노련한 신경성형술 전문 마케팅 실장까지 고용해서 환자와 일대일 상담을 시켰는데 그 실장의 청산유수 같은 설명을 듣다 보면 누구라도 꼴딱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히 250만 원이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나왔지만 그땐 얼떨결에 그냥 신경성형술 시술을 받을  뻔했다.  


참고로 신경성형술은 미국에서 개발됐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장비들도 대부분 미국 회사의 장비라고 하는데 실상 미국에서는 거의 시행되고 있지 않다. 내 경우도 미국에서 신경성형술을 권유한 의사는 한 명도 없었다. 급여항목인 신경차단술과 비교해 유효성과 비용 효율성이 입증되지 않아 (Kim et al., 2013) 임상진료지침에도 나와 있지 않은데다가 보험 적용도 안되는데 괜히 시술했다가 환자에게 소송이라도 당하면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치료법은 의사에게 문의해야 한다. 그러나 디스크 환자라면 병원에서 해주는 얘기를 잘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주변에 물어봐?

목 디스크 질환의 경우 수주일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통증이 감소하고 증상이 개선될 수 있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치료라도 3-4주 받다 보면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치료받지 않은 대조군과  치료받은 실험군을 통계적으로 비교해야 치료효과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주변에서 '누가 무슨 치료를 몇 주 받고 나았더라'라는 것 만으로는 치료법의 효과를 증명할 수 없다.


정부에게 물어봐?

약국에서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몇 백 원, 몇 천 원짜리 약이라도 시판 전 3단계, 시판 후 1단계 까지 포함하여 총 4단계 임상시험을 거쳐 정부로부터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받은 약품이라야 판매와 유통이 가능하다.


그러면 병원에서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하는 치료법들은 어떨까?


병원에서 시행하는 의료기술은 수술적 치료나 비수술적 치료를 막론하고 정부로부터 치료효과에 대한 검증을 받을 필요가 실질적으로 없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항목의 경우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를 수행해 치료효과가 있는지, 수가는 적정한지를 평가한다. 비급여 의료기술도 원칙적으로는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를 통해 유효성과 비용 효율성이 검증된 의료기술이라야 시중 병원에서 시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상은 제재는 고사하고 평가를 받지 않았거나 탈락한 '비등재' 의료기술들이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현황파악조차 되지 않고있다 (심평원, 2011).

그나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평가해서 인정한 인정급여 항목(국민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나 인정비급여 항목(국민건강보험에서는 비급여 항목이나 실손보험에서는 처리해 주는 항목)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검증은 받았다 할 수 있다. 심평원에서 인정받지 못한 항목, 즉 임의비급여 항목이라면  정부로부터 전혀 인정받지 못한 경우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임의비급여 항목을 선호한다. 임의비급여 항목은 정부나 보험사로부터 치료비에 대한 관리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 물어봐?

이렇게 정부가 의료시장을 관망하고 있는 데는 시장원리에 따라 비싸고 효과 없는 치료는 자연 도태되고 값 싸고 효과 좋은 치료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깔려있다. 그러나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장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구매자가 구매할 재화와 서비스의 품질을 정확히 알 수 있고 다수의 공급자가 제시하는 가격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어야만 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 시장의 경우는 의료서비스의 공급자, 즉 병원이나 의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수요자인 환자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정보의 비대칭(information asymetry)라고 하는데 이 경우 정보를 가진 자가 시장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시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를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 한다.


그래서 잘되는 병원에서 하는 치료라고 꼭 비용효율적인 치료라는 보장은 없다.


'학술지'에 물어봐?

학술지는 전문분야 종사자들끼리 보는 잡지다. 내용의 대부분이 독자인 전문분야 종사자들이 투고한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료분야 저명 학술지의 하나인 미국의사협회지의 1964년 11월호 표지. 1847년에 창립된 미국의사협회에서 발간한다.

이런 논문들에서는 원칙적으로 무작위 대조군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방법이라는 것으로 치료효과를 밝혀낸다. 신약(新藥)의 경우를 예로 들면 충분히 많은 수의 환자들(표본집단) 중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한 그룹(대조군)에게는 위약(플라시보)을 주고 다른 한 그룹(실험군)에게는 테스트할 약을 주어 실험군의 구성원이 대조군의 구성원과 비교하여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증상의 개선을 보이면 다른 모든 조건은 같고(ceteris paribus) 해당 약의 투약만이 두 집단 간 유일하게 다른 조건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그 약이 증상개선에 결정적인 요인(condicio sine qua non)으로 작용했다는 증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해당 약제가 증상개선의 원인이라는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비약물 치료, 즉 물리치료나 수술적 치료의 검증도 한방 양방 할 것 없이 원칙적으로는 마찬가지다.  

실험군과 대조군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어야 효과가 검증된다.

그러면 학술지로 치료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추적 조사가 필요한 디스크 질환의 치료의 경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집단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발표된 논문중에는 제대로 된 무작위 대조군 실험만 있는 것은 아니고 몇몇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사례연구나 전문가 의견이  실리기도한다. 그래서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치료 효과에 대한 증거의 질에 등급을 매기는데 무작위 대조군 실험 논문의 경우 표본집단의 크기와 실험의 치밀한 정도에 따라 가장 우수한 I 등급부터 II, III 등급 까지 나누고 사례연구는 IV 등급, 전문가 의견은 V등급으로 분류한다.


또 나중에 더 설명하겠지만 현재의 국민건강보험 제도 아래서는 새로운 치료방법을 구태여 논문을 통해 검증해 봐야 병원 입장에서는 별 이득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자나 이를 운용하는 병원에서도 새 치료법에 대한 논문을 굳이 쓰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치료효과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도 완벽하진 못하다.


'임상진료지침'에 물어봐?

다행히 이러한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치료법의 효과를 검증하는 방법이 정립되어 있는데 이를 "체계적 논문고찰(systematic review)"이라고 한다. 발표된 무작위 대조군 실험 정보나 이를 데이터베이스 화한 MEDLINE이나 EMBASE와 같은 DB를 바탕으로 특정 치료법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규격화된 수치로 정량화하는 논문들이다. 앞에서 설명한 I 등급부터 III 등급 연구를 위주로 통계학적 방법을 써 분석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체계적 논문고찰 논문들을 공신력 있는 협회나 위원회가 취합해 특정 질환의 치료방법별 효과와 위험을 분석해 의사들이 의료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침으로 만든 것을 "임상진료지침(clinical guideline)"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상진료지침 정보센터에서 각 학회나 기관에서 개발한 백여 가지 임상진료지침을 모아 놓았다 (KoMGI; http://www.guideline.or.kr/). 아쉽게도 디스크 질환 관련 임상진료지침은 아직 KoMGI에 올라와 있지 않다.

미국 의학한림원(IOM)의 새로운 임상진료지침 프로그램 가이드

그러면 임상진료지침(clinical guideline)을 보면 치료법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 검증 정도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그 유는 첫째, 임상진료지침을 누가 또는 어느 기관에서 썼느냐에 따라 이해관계나 편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 '8. 디스크 치료법 요점 정리'에서 주로 인용하고 있는 북미척추학회(North American Spine Society; NASS)의 경우 회원의 3/4이 수술을 주로 하는 외과 전문의이다 (Schofferman et al., 2013). 이 학회에서 발간한 임상진료지침을 보면 C등급(poor: 빈약한 증거)을 받은 신경차단술을 제외한 모든 비수술적 치료에 모두 최하위 등급인 I등급(insufficient: 증거 불충분)을 주고 유합술과 같은 수술적 치료는 한 가지만 빼고 모두 B등급(fair: 보통 증거)을 주었다 (Bono et al., 2011).


반면에 미국물리치료협회(American Physical Therapy Association; APTA)에서 발간한 임상진료지침을 보면 경추통증(방사통 포함)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지구력 운동, 근육 강화 운동, 도수치료 등에 A등급(good: 충분한 증거), 경추 견인에는 B등급(fair: 보통 증거)을 주는 등 비수술치료에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Childs et al., 2008).


그렇다고 임상진료지침이 발행단체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매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임상진료지침을 접했을 때 이런 점에 어느 정도 유의할 필요는 있다. 굳이 이해관계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본인이 해왔던 친숙한 치료법에 더 믿음이 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북미척추학회(NASS)의 방사통을 동반한 퇴행성 경추 디스크 질환의 진단과 치료 임상진료지침

둘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무작위 대조군 실험이나 체계적 문헌고찰논문 없이도 보험 비급여 치료법 시술로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는 마당에 병원에서 굳이 논문이나 쓰고 앉아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논문을 내서 정말 좋은 치료법이라는 게 검증이라도 되는 날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해당 치료방법을 급여항목으로 책정할 것이고 그러면 병원은 환자에게 비싼 치료비를 물릴 수 없게 된다. 병원입장에선 열심히 논문써서 결국 매출만 떨어뜨리는 꼴이 된다.


이렇다 보니 정말 효과 좋은 치료법이라도 게재된 논문이 없을 수 있고, 그러면 임상진료지침은 증거가 불충분해 해당 치료법을 권고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어떤 치료기술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는 무척 힘들다. 일부 상충되는 금전적 이해관계, 전문지식을 요하는 의료기술의 특성, 의료정보의 비대칭성, 규제와 법제도 구속성의 한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일반 환자들이 효과적인 디스크 치료에 대한 정보를 쉽게 구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디스크 치료기술에 대한 효과를 파악해야하나?

그나마 환자로써 가장 손쉬운 방법은 권유받은 치료가 건강보험 급여 대상인지, 아니더라도 인정 비급여 대상인지를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둘 중 하나라면 치료효과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공신력 있는 제삼의 기관이 나서서 의료기술과 그 비용, 효과를 환자가 알기 쉽게 분석하는 포탈이 있어야 하겠다. IT강국이라고 자화자찬인데 정작 체계적이고 가치있는 정보는 대부분 영문 사이트에 있으니 일반 환자가 쉽게 접할 수 없다. 디스크 질환에 대한 임상진료침도 하루 빨리 개발되어야 하겠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이제까지 알아본 방사통(척추와 신경근이 눌려 어깨, 팔, 손으로 찌릿 찌릿하게 전해지는 통증)을 동반한 목 디스크 질환의 치료기술과 그 효과에 대한 문헌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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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는 건강을 잃고 나서 느낀 것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수집한 정보와 경험을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환경과학경영 대학원 교수)


인용 문헌

Bono, C. M., Ghiselli, G., Gilbert, T. J., Kreiner, D. S., Reitman, C., Summers, J.  T.,... & Toton, J. F. (2011). An evidence-based clinical guideline for the diagnosis and treatment of cervical radiculopathy from degenerative disorders.The Spine Journal, 11(1), 64-72.


Childs, J.D., Cleland,  J.A.,... Flynn, T.W. (2008). Neck Pain: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Linked to the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From the Orthopaedic Section of the American Physical Therapy Association. J Orthop Sports Phys Ther 38(9): A1-A34.


Kim, H. J., Rim, B. C., Lim, J. W., Park, N. K., Kang, T. W., Sohn, M.  K.,... & Kang, S. (2013). Efficacy of epidural neuroplasty versus transforaminal epidural steroid injection for the radiating pain caused by a herniated lumbar disc.Annals of rehabilitation medicine, 37(6), 824-831.


Schofferman, J. A., Eskay-Auerbach, M. L., Sawyer, L. S., Herring, S. A., Arnold, P. M., & Muehlbauer, E. J. (2013). Conflict of interest and professional medical associations: the North American Spine Society experience. The Spine Journal, 13(8), 974-979.


심평원, (2011). "의료행위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절차 개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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