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 여섯번째 글
처음엔 목이나 어깨 통증이 와도 진통제를 먹거나 마사지를 받으면 되려니 생각했다. 목과 어깨 통증이 30대 이후 워낙 흔한 질환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 탓도 있었겠지만 '카더라'통신을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통증이 심할 땐 누구라도 통증만 없앨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럴 땐 주변에서 주워 들은 얘기나 인터넷에 올라온 광고만 봐도 귀가 솔깃해 지고 좋다면 무턱대고 시도부터 해본다. 통증을 앓는 환자들이 체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노린 짝퉁 정보와 잘못된 상혼(商魂)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그러나 먼저 건강에 이상이 감지되었다면 의사의 정확한 진단이 꼭 필요하다.
전문 병원에서 X-ray와 MRI를 찍고 분석한 결과 경추 추간판(디스크) 탈출과 추간공 협착을 진단받았다. 아래 그림은 목 부분을 옆에서 본 종단면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왼쪽이 앞쪽(anterior) 오른쪽이 목 뒤쪽(posterior)이다. 중앙의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연결된 튜브로 보이는 것이 척수(脊髓: spinal cord), 즉 척추 중심에 상하로 나 있는 척추관(vertebral canal)을 따라 뇌와 온몸을 이어주는 신경다발이다. 척수의 왼쪽으로 회색으로 보이는 척추 뼈와 그 사이에 보다 짙은 색으로 추간판이 보인다. C5-6 사이의 간격이 다른 척추 간의 간격보다 좁아진 것도 볼 수 있다. C4-5, C5-6, C6-7 사이 추간판이 후방으로 탈출되어 척수신경을 누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래 오른쪽의 MRI 사진은 경추(목부분 척추)를 위에서 아래로 본 횡 단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사진을 보면 탈출된 추간판이 오른쪽 어깨로 나가는 신경근(빨간 원 안)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측후방에서 본 MRI 사진을 보면 아래와 같이 C5-6, C6-7 사이 양쪽 어깨로 신경근이 나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추간공(foramen)이 막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추간공 협착(foraminal stenosis)이다.
한 마디로 척수관과 추간공이 좁아져 신경을 누르면서 목뿐 아니라 해당 신경이 뻗어있는 어깨와 팔의 저림과 통증이 나타났던 것이다. 또 최근 연구를 보면 탈출된 수핵에서 나온 독성물질로 인한 신경근의 염증이 통증의 주요 원인이라고도 한다.
병원에서는 퇴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별 다른 원인 치료방법은 없다면서 증상에 대한 치료로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처방해 주었다. 만약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면 문제의 추간판을 제거하고 위 아래의 척추를 유합, 고정하는 수술이 필요한데 수술 후 최대 40%의 환자가 후유증을 호소한다고 한다. 또 수술적 치료 전에 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시술로 병변에 스테로이드 계열 진통소염제를 국소 주사하는 경막외 신경차단술(neve block; epidural steroid injection)을 권유했다. 증상 치료이기는 하나 비교적 저렴하고 통증 개선에 효과적이라고 했다. 일단은 신경차단술을 받아 통증을 완화시킨 후 문제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더 알아보기로 했다.
목디스크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넘쳐 났다. 그러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믿을 수 있는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중에 인터넷에 올라온 경추 추간판 탈출 관련 정보의 질을 분석해 놓은 것이 있었다 (Morr et al., 2010). 100여 개의 웹사이트를 경추 추간판 관련 전문의들이 조목 조목 분석하여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평가했는데 여기서 최고 점수를 받은 웹사이트가 Spine-Health.com이다 (http://www.spine-health.com/). 삼차원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비디오까지 동원해 척추 관련 질환의 원인, 증상, 진단 및 치료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영어로만 되어 있다. 영문 웹사이트로는 이 밖에도 '3. 내 몸을 안다는 것'에 소개한 WebMD.com, MayoClinc.org에서도 좋은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국문 자료 중에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선근교수의 세미나 "자라목으로 변해가는 현대인을 위한 운동 처방"이 큰 도움이 되었다. YouTube에 45분 분량의 강의 전체가 올라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htyfesVHpI). 이 밖에도 대한정형외과학회 건강정보 페이지 (http://www.koa.or.kr/info/index.php)와 대한척추외과학회의 질환 정보 페이지 (http://www.spine.or.kr/)에 올라온 정보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파악한 나의 퇴행성 목디스크 질환은 대략 이렇다.
우리 몸의 장기도 각기 내구연한이 있다. 척추 뼈 사이의 추간판(디스크)도 예외는 아니다. 추간판은 척추뼈 사이에서 쿠션 역할을 해주며 충격을 완화시켜주는데 중심부에는 젤과 같은 역할을 하는 수핵(nucleus pulposus)이 있고 그 주변을 섬유륜(anulus fibrosus)이 둘러싸고 있다 (문성환, 2007).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수핵의 80%를 차지하던 수분이 밖으로 빠져 나가면서 수핵이 탄력을 잃으면 추간판이 눌려 낲작해지게 되고 이 때문에 섬유륜이 압력을 받아 파열되면서 수핵이 밀려나오게 된다(연성: 軟性). 또는 척추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어 상하의 척추뼈가 서로 부딪히면서 마모된 관절 부분의 뼈가 울퉁불퉁하게 웃자라는 골극(osteophytes)을 형성하는데 이것이 척수나 신경근을 압박하기도 한다(경성: 硬性).
20대를 지나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퇴행성 질환이다.
그러나 자료를 찾다 보니 이러한 퇴행성 질환도 생활 습관에 따라 늦추거나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몰랐던 목디스크를 부르는 습관들이다:
첫째, 잘못된 자세와 일하는 패턴
하루 중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몇 시간이나 될까? 나는 주중에는 보통 하루 6시간 정도를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제안서나 보고서 마감이 코 앞이라거나 논문 리뷰를 해주기로 한 날짜가 되면 하루 10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강의 외의 시간에 컴퓨터 앞에 없다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거나 책을 본다거나 노트에 글을 끄적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모두 목을 앞으로 쭉 뺀 나쁜 자세로 말이다.
이렇게 목을 앞으로 뺀 자세로 몇 시간씩 모니터를 보면 목 뒤쪽 근육이 약해지고 척추의 앞쪽(성대 쪽, anterior)이 머리의 하중을 고스란히 받아 추간판이 뒤쪽(뒷덜미 쪽, posterior)으로 탈출되기 좋은 조건이 된다. 풍선 한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튀어나오는 원리와 같다.
둘째, 운동부족
적당한 유산소 운동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추간판과 척추가 맞닿는 종판(end plate)으로 부터의 산소와 영양분 공급을 활성화시켜 건강한 추간판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목과 그 주변의 근육이 강화되면 경추를 잘 잡아주고 불안정한 움직임을 방지해 추간판 탈출이나 골극 형성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그러나 경추가 이미 자연스러운 C형의 곡선을 잃고 일자(一字) 목이 된 경우 달리기와 같은 격렬한 상하운동을 지속하면 경추가 충격을 흡수 못하고 추간판을 압박해 오히려 퇴행을 촉진시킬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셋째, 몸의 산성화
'4. 신장결석을 부르는 습관'에서 몸의 산성화와 신장결석 발생의 관계에 대해 다루었는데, 몸의 산성화는 퇴행성 디스크 질환과도 관련이 없지 않다. 추간판을 구성하는 세포의 재생 능력은 pH가 낮아지면(즉 산성화가 되면) 급격히 떨어지고 낮은 pH가 지속되면 이들 세포는 사멸한다고 보고 되어 있다 (Urban & Roberts, 2003). 고기를 좋아하는 내가 과도한 육류 섭취는 피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넷째, 높은 베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목을 움직일 수 없었던 산티아고에서의 그 날('2. 정비 불량 차량 퍼지다' 참조), 내가 베고 잤던 베개는 무척 높은 것이었다. 베개가 높으면 추간판의 뒤쪽(뒷덜미 쪽)이 위아래로 당겨지고 앞쪽(성대 쪽)이 압력을 받아 뒤쪽 섬유륜이 파열되고 수핵이 후방으로 탈출되기 쉽다. 출장지 숙소에 높은 것 밖에 없어 무심코 베고 잤던 높은 베개가 위의 이유들로 이미 약해진 후방 섬유륜을 파열시켰던 것이다.
다음 글(#7)에서는 환자가 디스크 질환의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기 힘든 이유를, 그 다음 글(#8)에서는 그간 알아본 방사통을 동반한 목디스크의 치료법에대해 썼다.
'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는 건강을 잃고 나서 느낀 것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수집한 정보와 경험을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환경과학경영 대학원 교수)
문상호, 김한식. (2015). 경피적 경막외 신경성형술, J Korean Orthop Assoc. 50: 215-224.
문성환. (2007). 추간판 변성의 생화학적 요인: 추간판 재생에서의 의의. 대한척추외과학회지 제, 14(2).
Lee, J.H., Lee, S.H. (2012). Clinical effectiveness of percutaneous adhesiolysisusing Navicath for the management of chronic paindue to lumbosacral disc herniation. Pain Physician. 15:213-21.
Morr, S., Shanti, N., Carrer, A., Kubeck, J., & Gerling, M. C. (2010). Quality of information concerning cervical disc herniation on the Internet. The Spine Journal, 10(4), 350-354.
Urban, J. P., & Roberts, S. (2003). Degeneration of the intervertebral disc.Arthritis Research and Therapy, 5(3), 120-138.
저자: 서상원 교수 (캘리포니아 대학교 환경과학경영대학원)
<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는 제가 지난 몇 년간 건강을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배우고 느낀 것을 정리한 글 입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상술을 걸러내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더라구요. 기왕 어렵게 찾고 익힌 정보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분들과도 공유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