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된 자동차를 매일 같이 운전한다고 치자. 차라곤 이것 한대 밖에 없어서 동넷길은 물론이고 고속도로도 매일같이 이 차로만 달려야 한다. 개인적인 용도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촉박한 회사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 고물을 밤새도록 몰고 다니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정비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주유해 주고, 엔진오일 제때 갈고, 가끔 타이어 압력 체크해 주기도 바쁘다. 그런데 이 차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다. 디젤은 안되고 휘발유를 주유해야 한다는 정도? 별 관심도 없거니와 너무 바빠 공부할 시간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 차가 서버린다. 그것도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정말 중요한 계약을 하러 가는 길에서. 사십 년간을 주유만 해주면 군소리 없이 달려 주던 녀석이 갑자기 꿈쩍도 안 한다. 그냥 달려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이 녀석은 나에게 '내가 꼭 그런 것 만은 아니야'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 차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왜 갑자기 서버렸는 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런 일이 내게 찾아왔다.
내 몸이라는 차가 서버리기 전에도 몇 번의 경고는 있었다. 나는 몇 년 전 까지 미국 미네소타주에 살았다. 중국 출장이 있어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에 탔을 때였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속이 좀 안 좋았는데 이륙 후 두 시간쯤 지나자 갑자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통증이었다. 처음엔 진통제를 먹으면 되려니 했는데 좀 있으니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기내 승무원에게 기어가다시피 해서 도움을 청했다. 승무원들은 비행기 맨 뒤쪽 기내식을 준비하는 공간(갤리라고 한다)에 담요 몇 장을 깔고 나를 눞였다. 곧 기내에 탑승한 의사를 찾는다는 방송이 나왔다. 두 번 방송했지만 아무도 나와주지 않았다. 세 번째 방송은 기장이 직접 했다.
지금 응급환자가 발생해 탑승 중인 의사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나와 주신 분이 없었습니다. 기내에서 이 환자의 응급처치가 안 될 경우 저희는 가장 가까운 공항인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임시 착륙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만약 임시 착륙한다면 나를 그냥 내려 주고 바로 출발한다 해도 최소한 몇 시간의 지연은 뻔한 것이었다. 비행기에 탄 모든 사람의 스케줄이 순식간에 틀어질 판이었다. 역시 기장의 협박(?)은 효과 만점이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금방 네 명의 의사가 모였다. 내 증상을 보고 가장 전공과 맞는다는 두 의사가 남았다. 나를 두들겨도 보고 맥박도 재 보고 동공도 관찰하고 이것저것 물어도 보더니 내린 결론은 kidney stone, 즉 신장결석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신장결석이 뭔지 전혀 몰랐다.
의사가 처방해준(!) 치료약은 맥주 두 캔과 물 1 리터. 나는 의사의 처방대로 맥주와 물을 마셨다. 금방 다 마셨다. 참을 수 없는 통증만 없애게 해 준다면 물 1 리터 한번에 마시기가 문제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처방은 이뇨작용을 촉진해서 신우나 요관을 막고 있는 돌을 소변과 함께 배출 해내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몰랐던 사실. 기내에 모르핀 주사가 있다는 것. 승무원은 이 주사를 쓰고 나면 복잡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는 모르핀을 맞고 바로 꿀잠에 빠져 북경까지 누워서 갔다.
작전은 성공! 다행히 돌이 크지 않았는지 돌은 북경 착륙 전 소변과 함께 배출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경황이 없어 나를 친절히 돌봐 준 의사와 승무원들에게 제대로 된 답례도 못 했던 것 같다. 의사는 착륙하자마자 바로 병원에 갈 것을 권고했는데, 나는 북경에서의 바쁜 일정을 핑계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이제 아프지도 않은데 뭐 갈 필요가 있겠나 싶기도 했다.
내 생애 첫 신장결석 에피소드는 다름 아닌 내 몸 '이용 불편 신고'이자 더 큰 고장의 사전 경고였다. 내 몸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나를 돌보지 않고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으면 넌 앞으로 더 큰 불편을 겪을 지도 몰라.
그러나 나는 이 경고를 말끔히 무시하고 말았다. 그 후 이 사건은 가끔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건네는 자랑 아닌 자랑 거리 쯤으로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나: 너 이코노미 티켓으로 비행기에서 완전 누워서 가본 적 있어?
친구: 없어.
나: 나는 있지~
친구: 우와!
또는
나: 너 비행기에서 모르핀 맞고 꿀잠잔 적 있어?
친구: 없어.
나: 나는 있지~
친구: 우와!
뭐 대략 이런 식이었다.
나는 이후 신장결석으로 두 번이나 더 응급실 신세를 지고서야 의사를 찾고 신장결석이 무엇인지,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장결석은 더 큰 고장의 서막일 뿐이었다.
'내 몸의 매뉴얼을 쓰자'는 건강을 잃고 나서 느낀 것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수집한 정보와 경험을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환경과학경영 대학원 교수)Bren School - Faculty - Sangwon Su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