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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 속에서

Who Gets a Seat at the Table?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뉴욕 한여름 저녁, 유엔 본부 회의실은 에어컨의 기계음과 종이 넘기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날의 안건은 특별정치임무(SPMs) 예산. 마이크 앞에 앉은 대표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문장을 읽었지만, 그 눈빛은 마치 주방에서 메뉴를 짜는 셰프들 같았다. 나는 커피잔을 두 손에 쥔 채, 이 ‘연회’의 조리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유엔은 포틀럭 파티가 아니다. 각국이 음식을 가져오지만, 메뉴는 극소수만이 정한다. 상석에 앉은 P5—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거부권이라는 셰프의 칼을 쥐고 있고, 나머지 130여 개 개발도상국 연합 G77은 테이블 끝에서 결과를 기다린다. 총회장에서 수적으로 다수를 차지해도, 안보·예산·무역 같은 핵심 영역에서는 권한이 손에 닿지 않는다.


그날 회의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발도상국들이 요구한 건 단순했다.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P5 대표가 의자에 기댄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연성을 고려하겠습니다.”


그 부드러운 말투 속에 숨은 뜻은 명확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집행하겠다.’ 순간 방 안은 정적에 잠겼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메뉴가 이렇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흐름을 바꾸는 손길이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두 차례 목격했다.


2011년, 남수단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다. 국경 분쟁과 내부 갈등이 겹쳐 신생 국가는 위태로웠다. 하지만 유엔 평화유지군 배치, 정치 합의, 인도적 지원이 동시에 작동하며, 최소한 나라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 주었다. 불안정한 주방이었지만, 제대로 돌아갈 때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 순간이었다.


2011.7월 남수단은 수단으로부터 독립하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로 탄생했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진 내전의 종식과 2005년 포괄적 평화협정(Comprehensive Peace Agreement, CPA)의 결과였다. CPA는 제2차 수단 내전을 마무리하며, 2011년 남부 지역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보장했다. 그해 1월, 남수단 주민들은 99%에 가까운 압도적 찬성으로 분리 독립을 선택했고, 이에 따라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불과 며칠 뒤 남수단은 유엔의 19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3년 민족과 정치적 갈등이 폭발해 새로운 내전으로 번졌고, 2018년 권력 분점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수백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국경 분쟁, 시민권 문제, 석유 수익 분배와 같은 수단과의 미해결 과제도 독립 이후 남수단의 길을 더욱 험난하게 만들었다. 남수단의 독립은 자기결정권의 역사적 성취였지만, 동시에 독립만으로는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2014년 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군과 정부군의 무력 충돌이 계속되던 시기, 유엔은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와 프랑스와 함께 휴전 합의를 이끌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폭력의 확산을 멈추고 정치적 대화를 열어둘 수 있었다. 연회가 올바르게 작동할 때, 작은 접시라도 사람들을 살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4년 말리 분쟁은 국제사회가 다층적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유엔과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는 군사적 개입에 이어 외교와 평화유지 활동을 통해 정세 안정화를 시도했다. 같은 해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2164호를 채택해 말리 다차원통합안정화임무단(MINUSMA)의 임기를 연장하고 민간인 보호, 정치 대화 지원, 국토 전역의 국가 권위 회복, 안보 부문 재건 등을 임무에 포함시켰다. MINUSMA는 알제에서 열린 평화협상을 지원하며 물자·통신·감시 역량을 제공했고, 휴전 이행을 감독했다. ECOWAS 역시 아프리카연합과 알제리와 함께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고, 2012년 쿠데타 이후 무너진 헌정질서 복원을 압박하는 외교적 노력을 이어갔다. 그러나 합의제(consensus) 중심의 구조와 이해관계 충돌, 부족한 자금 지원으로 임무는 종종 제약을 받았다. 특히 프랑스가 ‘세르발 작전’을 지역 차원의 대테러 작전 ‘바르카네 작전’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테러 위협과 인도적 위기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그럼에도 2014.9월 알제 협상에서 정부와 주요 무장단체가 평화 로드맵과 적대행위 중지를 합의하면서, 이듬해 알제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틀이 마련되었다. 말리의 경험은 군사적 개입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지역 기구와 유엔, 그리고 국제사회의 꾸준한 외교적 압력과 자원 투입이 결합되어야만 평화로 가는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연회의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기후변화 협상장에서 태평양 섬나라 대표들이 “우리나라가 곧 바다에 잠긴다”는 절박한 목소리를 냈지만, 결정권은 세계 최대 오염국들의 손에 있었다. 그들은 국익을 이유로 행동을 미루었고, 그 말은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국가들에겐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이 문제는 국가 사이의 힘의 불균형에만 머물지 않는다. NGO, 기업, 시민사회단체도 중요한 자원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공식 협상 테이블에선 늘 뒷자리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더 많은 목소리는 더 많은 복잡성을 의미하고, 권력은 복잡성을 싫어한다.


그러나 시스템이 더 오래 버티려면 바로 그 복잡성이 필요하다. 연회의 메뉴를 정하는 손길이 다양해질수록, 테이블은 더 튼튼해진다.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이들이 계속 배제된다면, 언젠가 그들은 새로운 주방을 세울 것이다. 그때 기존 연회의 주인들이 놀란다 해도, 그것은 필연의 귀결일 뿐이다.


나는 협상장에서 종종 이런 문장을 떠올린다.

“식탁에 앉지 못한 자는 결국 메뉴가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변화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다음 세대가 더 포용적이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이다. 연회의 주방 문은 닫힌 채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국제법의 미래이자, 약육강식 속에서도 균형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다.


Takeaways

유엔은 포틀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소수가 메뉴를 결정하는 연회다.

포용성과 투명성은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시스템을 지탱하는 생존 전략이다.

배제된 이들이 목소리를 얻지 못하면, 언젠가 새로운 테이블을 세울 것이다.


11 <정점까지 다녀오거라>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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