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차현유(1)

by 상재
1375년 11월, 탐라 사람 차현유, 예성지 등이 관아를 불살랐다. 또 안무사 임완, 목사 박윤청, 마축사 김계생 등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사>> 권133, 우왕(禑王) 원년.



13.


어머니는 좀처럼 기운을 못 차렸다.


몸보신을 시켜드리고 싶어 어느 날은 추위를 무릅쓰고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캐왔다. 그걸 본 마을 사람들이 갖가지 나물을 나누어주었다.


관심 없는 척 슬그머니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성주 어른이 나를 신경 써달라고 여기저기 부탁한 모양이었다.


차현유 아저씨는 유독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차 아저씨는 본래 고려 사람이지만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탐라총관부에 파견된 후로 탐라 토박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대원의 후손인 나를 각별하게 아꼈다.


차 아저씨와 친한 예성지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예 아저씨의 집안은 금나라 시절부터 원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절로 활약한 고귀한 역관의 가문이라 들었다.


강백안 아저씨는 원나라 강남지역에서 꽤 잘나가는 상인 집안이었다고 했다.


차, 예 아저씨와 친하게 지내다가 의형제를 맺고 탐라에 아주 정착하였는데, 일 년에 몇 차례나 강남과 나주에 배를 띄워 무역하였다.


하여튼 차, 예 아저씨는 가끔 나를 불러서 글을 가르쳐주었다.


글공부를 마치면 강 아저씨가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쌀과 메밀을 몇 되나 챙겨주셨기에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이제는 글도 제법 알아서 혼자 읽다가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물어보는 식으로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시켜 놓고 아저씨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

“이보게 성지, 지난밤 일을 들었는가?”


“들었네. 박 목사가 군민들이 말려놓은 전복을 싹 가져갔다지?”


“연유를 아는가?”


“그자의 사치가 하루 이틀 일이던가? 기생 노름 상차림이겠지.”


“아닐세. 혹시 심만삼(沈萬三)을 아나?”


“백안이가 탐라와 연줄을 놓은 강남 명주(明州) 일대의 거부 아닌가?”


“그래. 주장(周庄)에서 농사로 가업을 일으키고, 명주와 항주(杭州) 일대에서 크게 교역하는 대상(大商)이네.”


“현유, 갑자기 심만삼 이야기가 왜 나오나?”


“조만간 탐라에 들른다더군. 그것 때문일세.”


“쯧쯧, 박윤청 이 자식, 교역으로 한몫 챙길 속셈이었군. 백안이가 골치 아프게 됐어.”


“어쩌겠나. 그놈이 하루빨리 개경으로 돌아가길 바랄 수밖에.”


하지만 일은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마축사 김계생은 박윤청의 위세를 등에 업고 마을을 헤집어 놓기 일쑤였다.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우리 집까지 찾아올 정도였으니까.


잊을만하면 와서 집구석에 아무것도 없다고 타박했다.


큰 소리가 나면 행여나 아프신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신경 쓰실까 걱정되어 제발 소리를 낮춰달라고 무릎을 꿇고 부탁드렸다.


김계생은 악독하기가 정말 이를 데 없었으나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애써 참았다.


아버지는 말했다. 이제 고려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매를 맞고 빼앗기는 게 고려 백성이라면 그래, 까짓거 따라주노라 다짐했다.


이런 고충을 차현유 아저씨는 몰랐다.


나는 삼촌들이 죽음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탐라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차현유 아저씨나 예성지 아저씨는 의기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탐라의 군민을 걱정하였고, 다스리는 자들을 경계했다.


그래서 내가 당하는 꼴을 알고 나면 또 사달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먹을 걸 빼앗기고 매를 맞아도 차현유 아저씨 앞에서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저씨들에게 나는 열심히 글공부하고 곡식을 받아 가는 착실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비밀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계생은 나를 무릎 꿇리고 괴롭혔다. 게으른 녀석! 구쟁기(뿔소라)라도 준비해 놓았어야지! 이 어르신이 예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구나!


뺨이 돌아갔다. 옆구리에 발이 날아와 박혔다.


나는 바짝 엎드려 빌었다. 김계생의 앙상한 팔다리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김계생 따위는 한주먹거리였다.


그래도 참았다. 참아야 하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나는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김공! 무슨 짓이오!”


차 아저씨는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김계생을 붙잡았다.


김계생은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글쎄 이 녀석이 세공을 무시하고 있소!


차 아저씨는 말했다. 이 집엔 정(丁)이 없소. 그러니 세공도 없소.


김계생이 코웃음을 쳤다. 탐노 이 자식의 덩치를 보시오. 어딜 보아서 열두 살이오? 아무리 보아도 열다섯이 넘었소. 호적을 조작한 게 틀림없소.


차 아저씨는 별안간 호통을 쳤다.


“김공!”


그 소리에 김계생은 자라목을 하고 움츠렸다. 뒤이어 얼굴이 벌게지더니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이보시오, 차공. 나는 주상의 명을 수행하고 있소! 무슨 행패요?”

차 아저씨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예전 이용장 목사가 아버지를 잡아갔을 때, 그때 삼촌들의 얼굴과 똑같아서 기겁하였다.


나는 엎드린 상태로 기어가 차 아저씨의 바지춤을 잡았다. 아저씨, 고정하세요! 몇 대만 맞으면 끝날 일입니다.


차 아저씨는 나를 내려다보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차 아저씨의 다리를 꽉 안고 매달렸다. 그러자 차 아저씨가 김계생을 향해 꾸짖었다.


“김공,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할 겁니다!”


김계생은 콧방귀를 뀌면서 돌아갔다.


이후로도 그의 행패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해산물이며 가축, 곡식, 마포(麻布) 등 닥치는 대로 집어 갔다.


그래도 나는 괜찮았지만, 마을 삼촌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언젠가부터 삼촌들이 모여서 수군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나에게도 와서 참여하라고 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무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차현유 아저씨와 예성지 아저씨가 찾아왔다. 두 아저씨는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차 아저씨가 와서 앉아 보거라 할 때, 그 분위기가 너무도 닮아서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듯했다.


아버지가 관아로 스스로 가시던 날, 고려에 목을 바치던 날, 그날, 그날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말을 건넬 때, 그때의 얼굴과 똑같았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나는 차 아저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안 돼요!”


“무슨 얘긴 줄 알고?”


“마축사를 혼내려고요? 저는 다 알아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이대로도 괜찮아요. 그냥 이대로요. 이대로, 아시겠죠?”


나는 울컥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두 아저씨의 눈이 커졌다. 아저씨들과 나 사이에 침묵이 내려왔다.


나는 안다. 의기는 참지 못하게 만든다. 의기는 분노한다. 의기는 사람을 죽인다.


다들 그랬다. 석 삼촌도, 초 삼촌도, 관 삼촌도 그랬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저지른 죄도 아닌데, 아버지의 의기는 스스로를 죽였다.


의기는 귀를 막아버려서 옆 사람의 말도 듣지 못하게 만든다. 의기는 사람을 불구덩이 속으로 내몬다.


나는 김계생 그 작자에게 매일 맞아도 상관없었다. 이제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아저씨는 매정하게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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