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강백안(1)

by 상재
1376년 5월, 탐라만호 김중광이 카치 강백안 등 역적 13인을 잡아 죽였다. 그 처자식을 광주(光州), 나주(羅州)에 나누어 유배시켰다.

<<고려사>> 권133, 우왕(禑王) 2년.



16.


어머니는 좀처럼 기운을 회복하지 못하시더니, 겨울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장례 치를 돈이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곡식을 조금씩 보태었고 강백안 아저씨가 종이와 땔나무를 보내주었기에 어찌어찌 치를 수 있었다.


성주 어른이 수정사(水精寺) 승려를 보내주어서 사십구재도 지냈다. 어머니는 거대하고 성스러운 불길 속에 타올라 영원한 윤회의 길로 떠나셨다.


나는 열세 살이 되었다. 들판이 봄꽃으로 물들었다.


새로 온 고려의 왕관(王官)은 김중광이란 사람으로, 목사와 만호를 겸하여 왔다.


그가 만호의 직임을 가진 것은 고려가 여전히 탐라를 힘으로 눌러 다스리기를 원한단 뜻이었다.


김중광은 탐라 군민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반역이라는 죄목을 빙자하여 카치를 색출하여 죽이고, 그 가족을 육지로 흩어놓았다.


졸지에 가장을 잃고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이웃 삼촌들을 보고 있자니 내 처지와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그의 시퍼런 서슬에 강백안 아저씨는 분위기를 살피느라 잠시 강남 무역을 미루게 되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삼촌들도, 차 아저씨와 예 아저씨도 이제는 곁에 없었다. 나의 악착같은 운명은 무슨 수로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성주 어른이 모처럼 나서서 군민을 감쌌지만 그렇다고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나를 비롯한 원나라의 후손들은 여전히 핍박받는 처지였다.


그래도 성주 어른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걸 보니, 차 아저씨와 예 아저씨의 의기가 헛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위안이 되었다.


그나마 김중광은 박윤청처럼 재물에 욕심을 부리며 수탈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최영 장군의 토벌과 박윤청의 횡포를 목격한 나로서는 여전히 불안하였다.


간헐적으로 탐라를 기웃거리는 왜구들은 불안감을 부추겼다. 아버지가 있을 적엔 협상의 여지라도 있었는데, 김중광은 강경했다.


왜구는 날이 갈수록 교활하게 침구 해왔다.


나는 혼자였다. 중산간과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고, 가슴이 답답할 때면 오름을 뛰어다녔다.


부양할 사람이 없어 몸은 편하였지만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삼촌들에게 배운 재주로 창을 깎고 활을 만들어 들짐승에게 화풀이하던 어느 날, 성주 어른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나는 성주 어른과의 대화가 영 불편했다.


“탐노야, 도움이 필요하다. 최근 왜구의 동태가 심상치 않구나.”


“그런데요?”


“만호 김공은 이곳 사정을 잘 모른다. 방어에 힘써야 한다고 누차 말하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겨우 사병 일백을 허락받았다. 그런데 지금 탐라 땅에서 그들을 훈련할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기마를 가르치고 씨름을 알려주어야 한단다. 탐노야, 부디 사병을 맡아 주렴.”


“그런가요…….”


나는 성의 없이 듣고 있었다.


솔직히 그런 생각도 들었다. 탐라가 왜구의 손아귀에 넘어가더라도 그건 그럴 운명이었다.


내 운명도 어쩌지 못하는데 탐라가 어찌 되든 나와 상관없게 느껴졌다.


성주 어른이 내 손을 지긋이 잡았다. 그 손길이 불편해서 인상을 찌푸렸다.


짜증을 내고 보니 성주 어른의 손이 따듯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따듯함이 더욱 짜증이 났다.


성주 어른은 정말 간절해 보였다.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어르신, 어째서 우릴 미워했어요? 전대 성주 어른들은 그러지 않으셨잖아요.”


성주 어른이 눈빛이 일순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의 입술이 열릴 듯 말 듯 작게 떨렸다.


나의 어린 시절은 별일 없이 잔잔하였다. 이용장 목사가 행패를 부리기 전까지만 하여도 아버지가 없는 삶을 상상하지 않았다.


성주 어른은 아버지를 잡아갔고, 최영 장군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지 않았다. 차현유 아저씨와 예성지 아저씨를 냉정하게 벌주었다.


성주 어른은 우릴 미워하고 있었다. 그래 놓고서 도와달라니, 참으로 뻔뻔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런데 지금 성주 어른의 눈빛은 너무나 서글프게 느껴졌다.


나는 그간 성주 어른의 행동과 지금의 서글픈 눈빛 사이에서 생겨난 괴리감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성주 어른의 입이 열렸다.


“탐노야, 복자 수자 되시는 내 증조부는 초쿠투부카, 석데리비스 두 카치와 어울렸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주 어른은 떨리는 목소리로 운을 떼고는 침음에 잠겼다.


고복수! 아버지도 차 아저씨도 그 이름을 언급했었다. 하지만 고복수 어른이 돌아가신 사건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 이름이 지금 성주 어른의 입에서 꺼내어진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뚱딴지처럼 느껴졌다.


“탐라는 고려와 원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하였다. 당시 탐라만호였던 박도손은 네가 아는 이용장이나 박윤청보다 더한 작자였다. 증조부는 박도손의 패악질을 견디지 못하고 카치들의 지도자였던 초쿠투부카, 석데리비스 두 사내와 함께 원에 예속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어이 박도손의 목을 베어낸 것이지.”


잠깐 들은 것만으로도 결말이 뻔하게 그려졌다. 이미 몇 차례나 겪은 일이었다.


탐관(貪官)을 죽이고, 누군가는 책임을 진다. 그 책임이란 것은 결국 목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건은 끝이 나고, 남은 사람은 그 목숨값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변방의 땅이라 주상의 감시가 닿질 않으니 과거로부터 이런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전대에도, 전전대에도 마찬가지였지.


고복수 어른은 차라리 대원(大元)의 속국이 되고자 하였다. 네 아버지인 문 만호는 그 때문에 탐라로 부임한 것이다.


이후 원이 무너지고 탐라는 고려에 예속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잘 지내었어. 고려의 횡포가 우릴 뭉치게 만들었거든.


문 만호는 말했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 아이들과 탐라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하지만, 이 지긋지긋한 반복은 끝날 기미가 없었어.


박도손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후임으로 성준덕 목사가 오자 증조부께서는 스스로 목을 베어 고려 조정에 사죄하였다.


문 만호는 마필과 가축을 진상하여 어떻게든 무마하였지.


문 만호가 있는 동안은 그래도 원의 위세가 살아 있어서 성준덕이는 그나마 조용히 물러갔다.


그러나 탐라 군민의 가슴 속 울분이 그리 쉽게 사라지겠느냐?


후에 부임한 이용장 목사의 목을 잘라낸 것은 그자의 개인적인 일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간 쌓여온 탐라 군민의 불만이 폭발한 탓이다.


그 와중에도 문 만호는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고자 내 증조부와 같은 결정을 내리고 만 것이다…….”


도대체 몇이나 죽은 걸까? 그렇게 죽고 죽여도 어째서 같은 일이 반복될까?


세상일이 참으로 복잡하여서 이제는 누굴 원망하고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앞서간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성주 어른은 매번 우리 집에 곡식을 가져오셨고, 함부로 굴어도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돌아가셨다는 고복수 어른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처럼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분이었겠지.


복수 어른이 돌아가실 때, 신걸 어른도 내가 그러했듯이 우리 삼촌들을 원망하였을까.


불현듯 성주 어른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다들 가슴 속에, 나처럼 울분을 담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탐노야, 왜적선의 숫자가 심상치 않다. 왜구는 두고 볼 일이 아니다. 탐라가 온 힘을 합쳐 물리쳐야 한다.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 아니, 평생 나를 미워해다오. 너에게 평생 속죄하면서 살아가겠다. 그러니, 네 아버지의 뜻을 생각해서라도, 그래도 탐라를 버리진 말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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