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강백안(3)

by 상재

18.


사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왜구를 경계하였지, 김중광 목사를 경계하지는 않았다.


그는 탐관이 아니었고, 나는 정말 김중광 목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불타버린 목관아를 재건하며 날카로워졌을 김중광의 예민함에 공감했다.


그간 우리에 의해 목이 잘려 나간 여러 목사를 떠올리며 김중광의 두려움을 받아들였다.


김중광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라던 강백안 아저씨의 신중함도 이해하였고,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어쩌면 김중광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몰랐다.


최근 왜구의 동태는 정말 심상치 않았고, 김중광은 그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예전 이용장 목사는 왜구가 침구하든 말든 그저 탐라 백성의 고혈을 뽑아먹는 데에만 혈안이었다.


그랬기에 아버지가 왜구를 잘 타일러 돌려보낸 일을 트집 잡은 것이다.


김중광 목사는 적어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만들진 않을 것 같았다.


강백안 아저씨는 탐라 기병을 위해 말 삼백 필을 내놓았다. 삼백 필이면 기마병 일 인당 세 필의 말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그럭저럭 기마병을 운용할 수 있는 숫자였기에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때문에 강 아저씨의 살림은 조금 팍팍해졌다.


강 아저씨는 최근 나주로 배를 띄우기 시작했으며, 강남 무역을 재개하기 위해 항로를 수색하고 조역꾼을 모집했다.


탐라 기병에 돈을 대느라 본 손해를 메꾸기 위해서였다.


나는 강 아저씨의 부탁을 받고 새로 모집한 조역꾼들에게 간단한 씨름과 창술을 알려주었다. 선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간단한 기술을 가르쳤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김중광이 그 사실을 알고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강 아저씨는 김중광 목사에게 잡혀가 한동안 고초를 겪었다. 성주 어른의 중재가 아니었으면 풀려나지 못했을 것이었다.


나는 강 아저씨가 신경이 쓰였지만, 애써 모른척하였다. 지금은 왜구에게 집중할 때였다.


어느 날 성주 어른이 급히 부르기에 갔더니 강 아저씨가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강남 항로 정찰을 나갔다가 왜구와 한바탕 붙은 모양이었다.


강 아저씨는 제법 많은 왜구가 있다고 전했다. 이제까지 만났던 해적무리와 어딘가 다르다고도 했다.


갑옷을 차려입고 투구를 썼으며, 기다란 장궁을 소지했다.


소선(小船)만 해도 오십여 척이나 되었다. 왜국의 소선엔 병사 스물이 탈 수 있었다. 적게 잡아도 일천 명이나 되는 숫자였다.


성주 어른과 강백안 아저씨, 차쿠르 아저씨는 다양한 의견을 내었다.


해안 경계는 걱정되지 않았다. 탐라는 연대에 불을 피워서 침략 소식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병력이었다. 우리가 키우는 기병 일백으로 수천에 달하는 왜구와 싸우기는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차쿠르 아저씨는 병력을 징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그건 우리의 권한이 아니었다.


김중광이 과연 그것을 허락할까? 고개가 저어졌다.


나는 문득, 차현유 아저씨가 이끌었던 마을 삼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저마다 농기구로 무장하여 목관아로 쳐들어갔었다.


굳이 징집하여 훈련하지 않더라도, 각기 무장하여 대응한다면 충분히 싸워볼 법도 하였다.


군민들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겠다는데 김중광 목사가 막을 명분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었다. 많은 숫자가 부딪힐 때 가장 효율적인 무기, 배우지 않아도 사용하기 쉬운 무기가 떠올랐다.


“창을 준비해요!”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자신있게 설명했다.


창날이 있으면, 창대는 아무거나 써도 된다, 대나무를 잘라 써도 되고, 장낫에 붙여도 되고, 빗자루 끝에 묶어도 된다.


그걸 나누어주고 준비시키자. 왜구가 침략했을 때 그들을 동원할 수만 있다면 수적으로도 대응할 수 있었다.


성주 어른은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당장 그 많은 창날을 어디서 구하냐 되물었다.


강백안 아저씨가 나섰다. 배를 띄우겠소, 나주에서 사 오면 됩니다.


강 아저씨는 탐라를 위해 또다시 가산을 내놓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렇게 일이 성사되어 강 아저씨는 나주엘 다녀왔다.


나는 애월포로 마중을 나가 화물 내리는 작업을 도왔다.


선박에는 일천 정이나 되는 창날이 무더기로 실려 있었다. 일천 자루의 창을 쥔 탐라 군민을 상상하니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탐라에는 창자루로 쓸만한 대나무가 천지에 널려 있었고, 대나무로 죽창까지 만들면 몇천 자루의 창을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창날을 모두 하역하고 수레에 옮겨 실었다.


나는 부지런히 짐을 나르며 창날이 탐라 군민의 손에서 왜구를 막는 결사의 방패가 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 희망찬 순간에, 김중광은 들이닥쳤다.


이것들이!


김중광은 화를 내었다. 그는 직접 나서서 수레에 실은 창날을 끌어내리고 바닥으로 엎어 놓았다.


김 목사를 따라온 관병들이 일제히 동참하여 수레를 쓰러뜨리고 창날을 담은 나무상자를 부수었다.


강백안 아저씨의 눈빛엔 두려움이 떠올랐고, 성주 어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김중광 목사의 앞에 엎드려 빌었다. 왜구를 방비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뜻은 전혀 없습니다!


김중광은 그런 나를 마구 차고 손바닥으로 때렸다.


매 맞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의 바람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김중광 목사가 부디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백안 아저씨도 내 옆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김공! 이 창날은 성주 어른의 부탁을 받은 것뿐이오. 부디 노여움을 푸시오!


성주 어른이 달려와 김중광 목사의 옷자락을 잡았다. 김공, 김공, 내가 부탁했소. 왜구를 막으려고 그랬소!


그 무엇도 김중광의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김중광의 눈동자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김중광에게서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오해를 어떻게 해야 풀 수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김중광은 포악한 자가 아니다, 김중광은 탐관이 아니다. 김중광은 그저 예민할 뿐이었다.


목이 잘린 옛 목사들처럼 자기도 그리될까 봐, 그래서 카치의 난리가 두려운 것이다.


김중광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빌고 또 빌면 마음을 돌리리라 믿었다.


목사님! 목사 어른! 왜구가 곧 쳐들어온답니다! 수천이나 된다고 합니다!


나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포박되어 목관아로 끌려갔다.


성주 어른은 본인이 한 일이라며 스스로 죄를 주장하였지만, 김중광은 성주 어른을 무시하였다.


성주 어른은 말했다. 탐노만이라도 풀어주시오. 아직 열셋에 불과한 어린아입니다.


김중광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열다섯은 넘어 보이는데?


성주 어른이 말했다. 호적을 살펴보시오! 예전 탐라성주였던 문아단부카의 아들입니다. 호적에 틀림없이 기재되어 있소!


김중광은 불신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고집스럽운 성주 어른의 부탁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나를 풀어주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김중광은 서늘한 한마디를 남겼다.


기병을 넘겨라, 명심하라, 약간의 낌새라도 보인다면 문탐노를 역모의 죄로 단죄할 것이다!


다음날 강 아저씨는 역모의 수괴로 지목되어 목이 잘렸다. 관아에 강 아저씨와 차쿠르 아저씨의 목이 함께 효수되었다.


성주 어른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나는 김중광을 이해한다. 탐라에 큰 사건들이 있었으니 까짓거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가슴에 피어올라 요동치는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으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다행스럽게도 강 아저씨의 처자식은 목숨을 건졌다. 성주 어른의 끈질기고도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김중광은 그들을 나주와 광주로 쫓아내 흩어 놓았다.


역모의 죄는 응당 삼족을 멸하는 법인데, 처자식이 살아났으니 강 아저씨는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김중광도 그들이 반역 죄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뜻일까.


나는 다시금 아버지를 떠올렸다.


처자식마저 버리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아버지의 마음속에도 뜨거운 불꽃이 요동쳤겠지.


그것을 힘겹게 꺼뜨리면서 소원했던 것은, 우습게도 아버지가 버린 어머니와 나의 평안이었다.


나는 김중광을 원망하지 않았다.


지금 나의 관심사는 온통 왜구에게 있었고, 그들을 처단하는 것만이 차현유, 예성지 아저씨와 강백안 아저씨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잇는 방법이었다.


이제 평화로운 시절은 끝나고, 탐라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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