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없는 집 - TV 대신 빔프로젝터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요즘은 '취향을 살린 거실'이라며 TV 장 대신 책꽂이와 책상을 두고 거실을 서재처럼 꾸미는 집도 심심찮게 보인다.
하지만 내가 TV 없는 집을 택한 건, 그런 고상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추구하는 깔끔한 인테리어 한가운데 '까만 사각형'을 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날이 성능도 디자인도 발전하는 TV라지만,
그럼에도 나는 'TV가 집 한가운데를 장악'하는 인테리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성능이 고급화된 초단초점 빔프로젝터가 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을 비싼 가격에 놀라기도 했지만, 마침 가전 쇼룸에 전시된 신제품을 보며 'TV 없이도 대형 화면을 즐길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사실 우리 집에는 초단초점일 필요는 없었다.
'빔프로젝터'라는 대안을 알고 나니 예산 내에서도 충분히 좋은 제품이 있었다.
TV 없는 집은 처음부터 합의된 결론은 아니었다.
남편은 대형 TV 화면으로 게임을 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거실 한가운데 TV를 둘지 말지는 나의 로망에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인테리어를 준비하는 내내 남편을 가전 쇼룸에 데려가고, 빔프로젝터 만족 후기들을 잔뜩 보여주며 'TV 없는 집의 장점'을 끊임없이 설파했다.
결국, 나의 열정에 남편도 두 손 들었다.
마음씨 고운 우리 남편은 밝은 환경에서도 어느 정도 잘 보이고 우리 예산에도 적당한 빔프로젝터를 직접 비교해 골라주었다. 그리고 난 '이제 빔을 띄울 스크린만 남았다!'며 신나게 구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TV'가 싫다고 했지, 'TV 보는 것'이 싫다는 건 아니었다.
거실에서도, 침실에서도 자유롭게 영상 시청이 가능했으면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거실과 침실 모두에 빔프로젝터를 설치했다.
가장 먼저 거실.
애초에 거실의 한 면을 깨끗하게 비우고 싶었기 때문에
거실 시계와 인터폰, 스위치가 위치할 부분과 화면의 영역을 구분하였다.
벽 깊이에 단차를 두고, 벽지 톤을 미묘하게 나눠서 저기가 스크린 영역이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도록 했다.
그렇게 낮에는 비워진 벽이 주는 여백미가, 밤에는 커다란 화면이 채워지는 거실이 완성되었다.
요즘도 저녁마다 퇴근하여 남편과 OTT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하는데, 매일 집에서 우리만의 영화관을 즐기는 기분이다.
침실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다.
침대 맞은편에 붙박이장을 두었기 때문에 영상을 쏠 수 있는 벽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스크린 설치로 방향을 잡았다.
우리집 천장이 워낙 낮아서 완전한 매립형은 불가능했지만, 목공 반장님의 센스로 반매립의 형태로 붙박이 장에 걸리지 않을 높이로 잘 설치 되었다.
덕분에 평소에는 스크린이 천장에 숨겨져 있다가, 가끔 잠들기 전에 가볍게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날엔 스크린을 내려서 빔프로젝터를 실행한다.
앞서 말했듯이 고상한 취향이 있어 TV 없는 집을 구상한 것은 아니지만,
항상 켤 수 있는 화면이 없으니, 집 안에서의 시간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날 밝은 시간대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베이킹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글도 써본다.
사실 가끔은 좋아하는 야구 중계를 낮 시간대에는 큰 영상으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잠시일 뿐,
비워진 벽이 주는 정돈된 평온함과 조용한 거실 분위기가 만족스럽다.
그리고 밤마다 펼쳐지는 우리만의 홈시어터 덕분에 하루의 마무리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