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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잘난 맛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

나도 잘났다고 하며 사는 건가?

by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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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옳은 소리만 하며 마치 자기가 가장 올바르고 제대로 살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부당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바른 생활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동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내가 이 동네를 10년이 넘도록 떠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도서관은 오래되었지만,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2층 어학문학실3층 인문사회과학실이 있으며, 4층은 독서실처럼 칸막이로 일반열람실이 있다. 나는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는 3층 인문사회과학실을 이용하고, 집중하여 사업 제안서를 작성하거나, 보고서를 작성할 경우에는 일반열람실을 이용한다. 일반열람실은 학생부터 수험생, 취업준비생, 어르신들까지 이용층이 다양하다.


모처럼 주말을 맞이하여 3층 인문사회과학실을 찾았다. 그동안 못 읽은 책도 읽고 새로 쓰려고 하는 책을 구상하기 위해서다. 3층 서고는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책을 마음대로 빼서 읽을 수 있는 서고가 있어, 내가 너무 편하게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읽은 책을 통해 사색하고 내 것으로 소화하여 실천하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는 노트북을 열어두고 틈틈이 정리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데 작은 사단이 생겼다. 오늘 읽을 책을 골라 읽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마스크를 쓴 채 내 앞으로 앉더니, 신문을 읽기 시작한다. 왜 하필 신문을 서고에 와서 읽을까? 밖에 신문 읽는 곳이 따로 있는데, 그리고 신문을 넘기며 접을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 소리가 신경쓰이지만, 아무 소리 안하고 책을 읽다가, 메모할 것이 있어 노트북에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앞에 앉은 아저씨가 힐끗 힐끗 처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마스크를 썼으니 알 수 없지만, 혹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대뜸, "아저씨, 이곳에서는 노트북을 쓰면 안되는 거 아닌가요?" 하는 것이다. 순간, 아.. 아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거슬렸던 모양이구나, 그래서 난 "여긴 노트북도 쓸 수 있는 곳인데요. 소리가 거슬리면 자판소리를 조심스럽게 치겠습니다."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조심스레 치는데, 또 한 소리 들을까봐,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떨리기 까지 한다. 서고에서 노트북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없고, 다만 ‘키보드/마우스 등 소음을 자제해주세요’는 있는데, 그리고 일부러 방해될까봐 문 열기전부터 대기하고 있다가, 맨 구석퇴기로 자리 잡았는데, 굳이 예민한 놈이 그곳까지 찾아와 나를 뭐라하니 살짝 기분이 나빴다. 자리도 많은데, 소리가 거슬리면 다른 곳에 가서 읽으면 될 껄, 그동안 숱하게 노트북으로 글을 써왔는데 뭐라하는 사람은 없었고, 소리가 거슬리면, 조용히 다른 곳으로 옮기는 사람은 있었다.


그래서 나도 참다 못해, "아저씨, 이 곳에서 신문 읽는 것은 맞나요?. 나도 아저씨 신문읽을 때 넘기는 소리가 거슬렸는데, 참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기분나쁘다는 투로 "내가 기분나빠서가 아니라, 여기 노트북 쓸 수 있는 곳 아닌데 쓰니까 그렇죠. 제가 옯기죠." 하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더니, 다른 곳으로 간다.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본인이 기분 나쁜 것이다. 공중도덕 운운하며 자신의 이기적인 기분을 챙기는 것이다. 내가 도서관에 와서 조용히 신문읽는데 왜 방해하냐는 것이다. 신문을 읽을 것이면, 편하게 집에서 읽을 것이지. 왜 도서관까지 들고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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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잘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살다보면 상대가 거슬릴 수도 있고, 내가 예민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은 불편하지만 양보하며 산다. 정 불편하면 내가 더 좋은 환경으로 옮기면 그만이다. 그걸 굳이 표현하여 서로 기분나쁘고, 자신은 마치 바른 생활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너무 싫은 것이다.


고등학교 선배 중에 그런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매우 예의 바르고, 부당하거나, 사소한 불편함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루는 선배가 근무하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종업원이 물 잔을 갔다 내려 놓으며, 조금은 투박하게 내려놓는 바람에 식탁에서 ‘탁’하며 소리가 났다. 기분이 나빠진 선배는 그 종업원을 불러 한 참을 훈계하더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사장까지 불러 종업원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야단까지 쳤다. 벌써 20년이 넘은 이야기지만, 그 이후로 그 선배하고는 띄엄띄엄보다가 지금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몇 번의 동창모임에서 상대방의 배려없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배려심이 부족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 척하며 사는 사람 중에는 이처럼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다. 완벽하거나, 정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이 더 피곤하다. 옛 말에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너무 깨끗하고,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려고 하면 주변에 사람이 없을 수 있다. 나는 종종 내가 신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완벽하지 않다고 위로하며 산다. 오늘 아침 작은 헤프닝으로 마음이 불편하였지만, 이렇게 글로 풀며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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