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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Jul 20. 2019

차창 밖은 아름다워

아이슬란드 명당은 조수석

1. 

  사실 '차창 밖은 아름다워'라는 문장 자체는 스톡홀름에서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이 났다. 아무도 알아들은 사람은 없겠지만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했던 말이다. 너무 예쁜 노르셰핑 호숫가를 지날 때 정말 당장이라도 기차에서 내리고 싶은 풍경들이 지나갔었다. 그리고 밤이 짙어졌을 땐 정차역이 있는 마을마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켜 두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으니 들렀다 쉬어가라는 듯이, 마을마다 큰 트리를 만드는 게 어쩌면 또 애당초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차창 밖은 아름다워'라는 문장에 꽂혀 버렸는데, 그래서 꼭 한번 이 문장을 제목으로 글을 써야지 생각해오고 있었다. 이제껏 여행을 돌이켜 보니 꽤나 차창이라는 테마로 묶을 수 있는 여행이 여럿 보였고 저 문장을 제목으로 한다면 가장 잘 어울릴 여행은 단연코 아이슬란드 여행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핀란드의 기차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너무나 절경을 보여주어서 같은 제목으로 여럿 글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2.

 처음 아이슬란드를 생각했을 땐 운전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해, 50인승 버스로 진행하는 투어나 아이슬란드의 열악한 대중교통에 의지해 볼까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미국에서 운전을 했던 누나를 덴마크에서 알게 되었고 그렇게 다섯 명을 꾸려 아이슬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투어나 대중교통으로 아이슬란드를 여행하지 않은 것이 정말 나에겐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하룻밤 참여해 본 투어에서는 이리저리 버스 전조등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다녀 원했던 사진을 건질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정작 투어에서는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3년 안에 다시 가야 한다.) 그리고 애처롭게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만큼 내렸다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의미로 혹시나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하며 구글 지도로 이동시간을 예상하려는 여행자가 있다면 무조건 여유시간을 넉넉히 넣으라 이야기하고 싶다. 길이 험난한 것보다 길이 너무 아름다운 게 시간을 지체시키는 가장 큰 이유일 테니.

 우리가 다녀온 루트는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출발해 첫날 바로 블루라군을 찍고, 레이캬비크에 숙소를 잡은 뒤 골든 서클과 디르홀레이 해변으로 가는 길의 폭포들을 보는 것이었다, 다음번엔 꼭 링로드 완주를 기약하면서. 첫날 공항에서 작고 귀여운 리오를 렌트해서 블루라군을 가는 길부터 저기 멀리 온천 연기가 보일 때 길가에 흐르는 물 색이 블루라군에서 기대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온몸이 들썩였던 건 실수로 커브를 돌다 갓길에 현무암을 밟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셀렘 때문이었을 것이다. 싱벨리르 국립공원으로 가면서 레이캬비크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길 옆으로 절벽이 깎여있고 저 멀리 보이는 설산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우리끼리는 저 산에 덮인 게 눈일까 구름일까 오히려 구름이라 믿고 싶었다. 정말 사람이 밟은 자국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그 푸른 산들을 보면서 꼭 매 번 새로 눈이 쌓일 때마다 먼저 올라가 발도장을 찍고 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굴포스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난리가 났었는데, 오로라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얘기를 하면서 가고 있을 때 하늘색이 심상치 않았다. 사실 기대도 못했던 게 구름도 워낙 많았고 구름에 비친 도시 색 때문에 평소에도 밤하늘이 불그스름한 색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일단 달리는 차 안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 30초 동안 장노출 사진을 찍고 뭔가 오로라 색 같은 낌새가 보이면 내리기로 하였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잔뜩 흔들려 아무것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뚜렷한 녹색 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보이는 갓길 쉼터에 차를 대어 두고 사진을 찍었다. 아주아주 선명하진 않았지만 분명 오로라였다. 핀란드에서처럼 희끄무레한 오로라가 하늘을 가르고 있었고 무엇보다 사실 별이 그렇게 많은 풍경이 너무 좋았다. 조금 더 길을 가면서 더 선명한 오로라를 기대해 보기로 했고 우리는 이미 차 몇 대가 연달아 주차되어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이내 구름도 더 걷히고 핸드폰으로도 사진이 찍힐 정도로 녹색 오로라가 보였다. 오로라가 뜨니깐 지나가던 차들도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우리가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왔고, 심지어는 지나쳤다가 저 멀리서 유턴을 해서까지 돌아오는 차도 있었다. 교환학생을 다니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는 아마 오로라를 두 번씩이나 볼 수 있었던 점이 아닐까. 


3.

 진짜 차창밖이 아름답다는 걸 실감하려면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수 있는 기차만 한 게 없다. 눈 앞에 나무들이 한창 지나갈 때 잠들기 시작했는데, 아침 여덟 시 알람을 맞추고 푹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같은 풍경이었다. 아마 오울루쯤을 지날 때였던 것 같은데, 울창한 자작나무 숲이 빼곡하다 못해 어두웠다. 이 열차의 기점부터 종정까지인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 구간을 달리고 있었고, 이 층 침대가 한 칸이었지만 마침 윗 칸 사람도 없었고 한 번쯤 온다던 검표원도 오질 않아서 아주 아늑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방마다 있는 따뜻한 샤워실도 혼자 쓸 수 있었고 미리 열차를 타기 전에 사 온 샌드위치와 바나나 그리고 음료까지 차려뒀겠다 비행기 일등석이 부럽지 않았다. 창가 쪽에 딱 하나 있는 (아마도 원래는 이층 사람이 앉아 쉴 때 쓰라고 둔) 의자도 내 몫이었다. 

 그 의자에 참 오래도록 앉아있었는데, 가끔 정차역이 나올 때만 빼고서는 숲과 강과 눈뿐이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정차역이 나올 때 마을이 있을 법한 낌새가 있었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개 다른 열차들은 기차가 서기 저 멀리서부터 불빛이며 건물들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했었는데 이 열차는 내내 숲길을 달라는 통에 멀찌감치 있는 풍경을 보긴 쉽지 않았고 그래서 문득 갑자기 사람들이 보이고 기차가 서고 역명이 보이고 안내방송이 나오곤 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역들은 내가 자는 도중에 지나쳤을 테니. 그래도 번번이 사진으로 남기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가끔씩 나오는 자작나무 숲 속의 강이 매우 예뻤다. 한동안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그 평야 끝에 붉은색 나무로 지어진 단층짜리 집들이 있었고, 호수를 여럿 지나기도 했다. 핀란드 항공을 타본 친구가 핀란드 상공을 지날 때 비행기 창밖을 봤더니 빨간 지붕 집들만 숲 속에 듬성듬성 있더라고 이야기했었는데 내가 그런 숲 속을 지나고 있었다. 점심때쯤 로바니에미에 도착해 배고파하며 기차에서 내렸을 땐 이미 옆칸들은 다 빈방이었고 처음 기차를 탔을 때 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사람들 덕에 퍽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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