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꽃은 열매를 맺는 짧은 한 때를 위해 홀로 기약없는 세월을 땅 속에서 보내야 했다. 햇볕이 닿지 않는 땅 속에서의 고독과 침묵. 그것은 마치 가난이었다. 시간의 흐름, 그건 가난이 아닌 재생. 생태계 이치를 따르는 생물에게 피고 지는 문제는 당연한거야. 식당의 여주인이 말했다. 그녀는 한 손에 담배를 들고 희뿌연 연기를 소리내어 뱉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연기를 시선으로 좇았다. 재생. 생소한 단어였다. 상처 난 살이 아무는 것. 시든 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 헤아릴 수 없었다. 막 뱃속의 아이를 지우고 자살기도를 시도한 나에게 재생이란 큰 벽이었다.
”울 것 없어."
식당 여주인의 단호한 음성. 꼭 공감을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녀의 비릿한 버건디색 미소가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고통에 너무 집착하지마. 지금이라도 고치면 돼. 늦지 않았어."
내 텅빈 동공이 그녀의 담뱃불을 좇았다.
"물론 당장은 힘들겠지.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이니까 두렵기도 할 거야."
그녀의 뾰족한 구두가 발치에 떨어진 칼을 걷어내었다. 칼날이 마룻바닥을 쓸며 저멀리 날아가는 소리가 서슬퍼랬다.
"밤마다 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벌렁이는 심장. 누군가 널 농락하고 공격할 것 같지. 그래서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괴로워 미치겠지. 그런 건 다 망상이야."
여자가 짧아진 시가를 아무렇게나 바닥으로 던졌다.
"진정해. 감히 누가 널 욕한다고 그래? 누가 널 다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공포를 느끼고 자기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려 하는 양상. 거기에 이상한 집착까지···. 애야, 이건 병이야."
극심한 두통, 도를 넘은 흥분으로 호흡이 곤란하고 시야가 흐려진다. 오랜 세월 식당을 운영하며 본 많은 종업원들이 대부분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비극을 초래했다. 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아이야. 난 아니에요.
"지독하군. 그게 병이란 증거야."
공황. 아무것도 아닌 일을 무서워서 회피하고 시도때도 없이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로 뛰쳐간다······.
"무턱대고 부정해서 될 일이니? 얘야, 공황은 누구에게나 있어. 공황은 진동이야. 엘리베이터, 에어컨 냉각기···, 생활 속 모든 게 진동인걸.. 공황은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올 수 있어. 그 정도에 따라 심각성이 나뉘는 거지. 내가 볼 때 넌 심각해. 대체 뭐가 널 그렇게까지 몰아세우는거니?"
"끊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가난, 창녀로 사는 궁핍한 삶. 남들처럼 사랑도 하고 자식을 키우며 거기에서 오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데 모든 게 무너져내렸다. 내가 숨쉬고 있다는 증거, 사랑의 증표는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나의 모성애는 무참히 짓밟혔다.
"그 남자, 제이는 날 암 환자 취급했어요."
"미친 새끼."
"차라리 나도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 걸. 후회중이예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우울증도 중증이군. 면역력도 엉망인 것 같고. 하루하루가 숨막히는 고통의 연속. 이것 봐, 네가 아프다는 증거기 이렇게 많은데. 당장 의사를 찾아가. 약을 먹고 솜씨 좋은 심리치료사한테 가서 상담도 받아.남들처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도 해. 영화관도 가보고. 처음은 힘들겠지. 어색할거야. 당황할테고. 하지만 익숙해질거야. 네가 이 식당 일에 적응했던 것처럼···, 그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약국도 병원도 문을 닫았을 때 생리통 약을 주는 것 정도야······. 그런데 얘야, 몸 말고 다른 팔 건 없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