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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26. 2022

문학소설과 통속소설을 가르는 치명적 한 가지

한국에서 홀대받는 장르소설의 현실

참으로 많이들 싸워왔다. 순수와 실용, 순문학과 장르문학, 주류와 비주류… 그 둘 사이의 다툼도 그러려니와, 양쪽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지난한 설왕설래가 있었다. 결국 작가, 평론가, 독자 모두 뚜렷한 해답이나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둘울 나눌 특별한 기준이 없는 탓에 경계의 모호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로맨스, 추리, 무협, 판타지, SF 등 특정한 경향과 유형에 입각한 것으로, 대중의 흥미와 기호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순수 문학이나 본격 문학과 상반되는 대중문학이다” (다음 사전 참조)




나는 아주 오랫동안 성실하고 충직한 활자 소비자였다. 한 가지 활동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나름의 정보가 쌓여 내적 통계가 잡힌다. 그래서 자타공인 루저 출신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처럼 3주 만에 장편 소설 하나를 뚝딱 완성하진 못하지만, 3일 만에(혹은 그 이전에) 완독하고 조목조목 뜯어보고 비판하고 장단점을 취사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것은 꼭 나뿐만 아니라 독서 깨나 했다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며 바로 이거구나 했던 순간이 있었다. 평론가가 아닌 평범한 독자로서, 순수 문학과 통속소설의 차이점을 느낀 순간이었다.




15년 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다. 장르와 종류를 가리지 않았었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모든 내용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했었다. 성경도 구약 신약 합친 전체를 총 10번 정독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독서량이 많았을지 짐작할 것이다.


한 번은 전민희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룬의 아이들>과 <윈터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품의 세계관도 넓고 등장인물도 다양했으며 무엇보다 스토리 진행이 박진감 있어 무척 즐기면서 읽었다. 그러나 다 읽은 후, ‘이거 뭐지?’ 하는 의아함이 들었다. 읽는 동안 작가의 철학이나 생각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가의 숨결이라도 느껴보고 싶었으나 작가는 독자와의 교감을 애써 외면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쉽다 못해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게 한국 장르소설의 한계인가?라고…….


그 후, 내가 발견한 순수 문학과 장르(통속) 문학의 차이는 아래와 같다.

                   

순수문학
인물 내적 변화에 중점
작가의 철학이 등장인물에 투영


장르문학
외적 스토리 전개에 중점
작가의 철학이 웬만하면 드러나지 않음




인물 내적 변화에 중점을 둔 순수 문학으로 지금 바로 떠오르는 현대 작가와 작품은, 파올로 코엘료 <순례자> <연금술사> 엠마누엘 카레르 <콧수염> 파트릭 쥐스킨트 <향수>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뮈라셀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정도가 떠오른다.


외적 스토리 전개에 중점을 둔 장르 문학으로는 웹 무협소설의 원조격인 이우혁의 <퇴마록> 앞서 언급한 판타지의 원조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 <윈터러> 최근 급 베스트셀러가 된,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백화점> 그리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웹소설을 들 수 있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다음에 자세히 다루어 보겠다.)


재미에만 그치고 마음에 새길만한 그 어떤 문장도, 철학도, 사고(思考)도 없는 장르 문학.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읽을 당시엔 엄청나게 재미있었으니까. 단지 읽고 나서 남는 게 하나도 없어서 찜찜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혹자는 그래서? 그게 어때서? 재미있으면 됐지! 라고 할 수도 있다. 당연하다. 작가의 철학 따위 없다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웹소설의 경우, 깃털처럼 가벼운 문체와 내용으로 써야 인기를 끈다고 하지 않나.


재미있게 쓰는 재능도 흔치 않은 재능이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장르 소설 풍조가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소심한 바람이 있다. 홀대받는 우리나라 장르소설의 입지를 바꾸려면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결론적으론,
이 모든 것은 다 작가가 선택할 문제이다.
자신이 문학에 남을지,
통속에 남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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