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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강릉에서 연말 모임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친정식구, 시댁식구 모두 모였지요. 부모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상견례, 결혼식 이후 세 번째였습니다. 경조사를 제외하고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으면 이런 기회는 만들어지지 않는데, 시아버님의 초대로 성사된 모임이었습니다. 초대 소식을 전달하니 엄마, 아빠는 감사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한 듯했습니다.
" 아이고, 너무 감사하다. 근데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니? 하하하"
MBTI만 봐도 친정식구들은 앞자리가 모두 I형이고, 시댁식구들 모두 E형입니다. 상견례 때와 다르게 어떤 주제로 어떻게 이야기할지, 저와 남편도 긴장이 많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저희가 괜한 걱정을 한 거 였습니다. 저녁 5시 30분부터 장장 6시간 동안 함께 웃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와 제 남편이 제일 신나서 과음을 해버려서 다음날, 아니 지금까지 힘들고 멍하지만, 기분만은 좋습니다. E와 I의 합이 꽤 잘 맞았습니다. 대화주제는 시댁식구들이 이끌어주셨고, 친정식구들을 잘 따라가면서, 저와 남편이 깔깔이 역할을 해가면서 화기애애했습니다.
표현을 서로 잘 안하시는 부모님들이라 "서로 사랑한다 하세요~ 하트 그리면서, 하뚜~사랑해~이렇게요" 코치하면서 영상 하나씩 남겼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겨울축제를 하고 있는 안목항에서 단체사진도 여러개 찍었지요. 벌써 그 순간이 그립네요. 사랑이, 행복이 넘치는 6시간 이었습니다.
겉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서로의 역사와 가치관을 나누는 자리여서 참 좋았습니다. 저와 제 남편이 며느리로서, 사위로서 얼마나 사랑받고 신뢰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저도 몰랐던 엄마, 아빠의 생각과 모습, 엄마, 아빠도 몰랐던 나의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저한테는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임이 끝난 후 엄마가 남편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 내용입니다.
" 사위, 내딸이 너무 사랑받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고맙고 부모님께도 감사하고 사위에게도 고마워"
결혼은 당사자인 저희한테도 큰 변화이지만, 부모님들에게도 큰 변화입니다. 저의 세계의 확장뿐 아니라 엄마, 아빠의 세계도 확장하는 것이지요. 신기하게도 두 부모님들이 닮은 점이 많습니다. 각자 살아온 지역은 다르지만, 그 시대상이 있어서 그런지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58년 개띠, 동년배인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호탕한 아버님들과 어려운 시절에도 희망을 가지고, 견뎌오신 맘 따뜻하고 유쾌한 어머님들, 수많은 갈등 속에도 가족을 지키려 노력하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며 인생의 동반자로 같이 하고 있는 부분까지 말입니다.
완벽히,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세계에 조금씩 스며들려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여서 감사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세계가 견고해지는 분들도 많이 봤는데, 그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저와 남편도 이렇게 나이 들어가야지, 다짐해 봅니다.
내 남편만 이해하기도 시간이 없는데, 부모까지 알고 이해해야 되나?라고 싶을 수도 있지만 부모도 그 사람의 일부이기에, 받아들여야 되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들, 경험들은 아주 오랜 시간 자기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저희 부부도 각자의 부모님을 이야기하고, 실제로 만나보고 대화해 보면서, 서로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정했지요. 우리는 참 부모님과 닮은 부분이 있구나, 그게 좋은 부분이든, 안 좋은 부분이든, 그렇게 우린 부모와 닮아있구나,라고 말이죠.
안 좋은 부분은 정말 인정하기 싫습니다. 그 부분으로 인해서 내가 아빠를, 엄마를 한 때는 싫어하고 미워했으니까 말이죠. 혼자였으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나를 가까이서 지켜봐 주는 나의 세계를 궁금하고 진심으로 이해하려 하는 누군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이 오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연인이 되고, 결혼하는 게 엄청난 결정이라는 거지요. 나의 세계와 그의 세계가 만나서 더 큰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는 중입니다. 너무나 좋은 분들을 만나서, 주말 내내 꿈꾸다 온 거 같습니다. 살짝 이 '카운트 다운'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대로도 너무 행복하고 좋았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떠나야 한다고 마음을 다시 다 잡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만큼, 지켜야 할 사람들이 더 많아진 만큼 더 큰 사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