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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Oct 28. 2019

7번 레인.

수영장과 비행기의 진급

       

가을은 수영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나에게 새로운 수영장이 생겼다.

수영 강습에 등록한  첫날이었다. 예전에 신촌에서 상급 과정까지 다 배웠는데, 서울숲에 있는 수영장에 가니 처음 온 사람들은 저쪽, 그리고 접영까지 배운 사람들은 이쪽으로 오란다. 난 이쪽이다. 줄을 쭉 세우더니 25m를 접영을 한 명씩 해보란다. 레벨테스트다. ’나 정도면 중상급 가겠네,‘ 난 자신 있는 나비가 되어 힘차게 팔을 휘젓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웨이브를 넣어 숨을 움파 움파. 발차기도 신이 나서 철썩대며 끝까지 완주했다.

’ 7번 레인으로!‘

그런가 보다 하고 7이라고 쓰여있는 레인으로 가니 배정을 받아 하나둘씩 모인 사람들이 물속에 모여 있었다. 물속이 어색한지 괜히 발을 동동거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물 위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소심한 점프 동작은 수영의 추임새였다. 신기한 물놀이를 하듯 스판덱스 한 조각으로 알몸을 가린 어른들이. 물속을 이불 삼아 마치 알몸이 아니라는 듯, 물속은 안전해라며 걸어 들어오는 이들을 아래서 쳐다보고 있었다. 수영복이 너무 붙어 저녁으로 뭘 먹고 왔는지 보일 것만 같았다.

’ 여기 무슨 반이죠?‘

’ 초급 일걸요 ‘

’네?? 그럼 6번이 중급인가요?‘

다시 한다고 할까? 내가 수영하는 걸 자세히 본 거 맞아? 처음 왔다고 초급으로 보낸 건가? 난 급이 다르다고. 잘 못 본 거 아닐까?

’헉! 뭐지... 내 상급인데 왜 초급으로 보내냐꼬! 내가 얼마나 수영을 잘하는데...‘ (이건 나 혼잣말이다.)


자칭 유쾌한 마린 숙녀는 수영장 간다고 들떠있던 마음이 뭔가 다운 그레이드가 된 기분이다. 내 입꼬리도 엉덩이 꼬리뼈도 같이 쳐진 거 같다. 그래도 어쩌겠나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못 했나 보지. 또 문제의 화살을 나에게 돌린다. 나만 잘한다고 생각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실력보다는 보이는 결과가 중요한 것을 슬프지만, 알아버렸다.


운동하는 셈 치자며 제일 선두로 서버렸다. 뱀의 머리라도 되는게 낫겠다 싶어서. 강사가 뭘 시키면 실력으로 본때로 보여주겠다는 심보로 있는 힘을 다해 빠르고 강하게 출발했다. 그냥 차라리 나 중급으로 가고 싶다고 말을 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이런 시큰둥한 마음으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쓸데없는 감정 낭비로 이 시원하고 푸른 물속에서 왜 나는 속을 끓이고 있을까? 시스템이나 누군가의 결정에 아무 이견을 내지 못하고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가.

이곳에 와서도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레벨을 정하는구나. 자꾸 경쟁을 강요하고 계급을 나누려는 모든 것에 노이로제가 생길 것만 같다.

물속에서 자유로운 범고래가 수족관에 갇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나는 범고래요~ 하는 꼴이었다. 나보다 수영을 못하는 것 같은 사람들과 폭이 2.5m, 세로 25m인 고작 두 팔 넓이의 테두리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숨통이 막혔다. 수영을 계속하려면 이 수영장을 떠나던가 아니면 경험상 오기로 더 열심히 해서 빨리 중급으로 가야만 직성에 풀릴 거 같았다.


두 번째 방법의 부작용은 물먹듯이 계속 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누군가 날 알아봐 줄 때까지 하는 거다. 자유로움이나 신나는 마음은 오기와 보이기 위한 운동으로 변색되겠지만. 수영하는 동안 줄줄이 소시지처럼 생긴 플라스틱 장난감 모양으로 레인 구분을 지어 놓은 옆에 반 사람들을 쳐다보곤 했다. 나와는 다른 것을 배우는 그들을 속으로 엄청 신경 쓰면서 심지어 강습 내용까지 엿들으려고 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온 건지, 누구랑 싸우려고 온 건지 혼자 경쟁의식에 불타고 있었다. 내 마음은 다음 높은 단계로 넘어갈 때까지 자유롭지 못할 거다. 그래서 점 수영장에 가기 싫어졌다.


2주나 빼먹고 복귀하니 나와 함께 7번 레인에 있던 사람들이 중급 6번 레인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나만 여전히 제자리다. 더 속상하고 끔찍했다. 수영장에서 내 맘이 지옥이었다. 나만 손해였다. 다들 신나게 수영에만 집중하는데 내 실력을 몰라준다고 혼자 끙끙대는 사람은 나 혼자일 거다. 범고래는 다른 물고기들과 바다에 같이 있을 때 나 같은 자존심을 부리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어쩌다 비교 경쟁의식 속에 살고 있을까?


예전에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비교 의식과 배신감이 시간이 지나서 다른 일로 변장을 하여 내게 찾아왔다. 어려서부터 넌 뭐든 잘한다고 칭찬을 계속해서 받으면 에고(Ego)가 강해져서 자존심도 같이 강해진다. 늘 잘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라는 덫에 걸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경험이 있다. 운동하러 온 곳에서 자꾸 과거 승무원 시절 진급이 늦어졌던 힘들게 극복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34살, 항공사에 재입사했다. 모든 지원자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면접을 같이 보고 또 합격했다. 아무리 경력직이라도 신입 승무원들과 이코노미클래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그래도 금방 비즈니스 클래스 훈련을 받고 진급을 하겠지 싶었다. 30대 중반에 취업을 해서 다시 비행 할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며 비행을 했다. 재입사 한지 1년이 지나 안전교육( SEP 시험) 테스트가 있고, 바로 뒤에 진급 트레이닝 일정이 잡혔다.  그런데 보안(SECURITY)과정에서 컴퓨터베이스 시험 10문제 중 8개를 맞추면 통과인데 7개를 맞추어 떨어지고 말았다. 패일(Fail)이다.

다음날 시험을 다시 봐서 합격했으나 문제는 진급 트레이닝 일정이 무기한 뒤로 밀렸다는 것이다. 결국 진급을 코앞에 두고 취소되었다. 나에겐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발전없이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아 속상했다. 남들과 비교했을때 누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느냐 비교하면서 경력직이라는 시선에 혼자 신경쓰였다. 나 또한 비행기라는 작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계급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뒤쳐졌다는 생각에 이젠 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조급해졌다. 


사무장이 될 수도 있는 나이와 경력임에도 난 삼등석 승무원이다.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을수록 비행을 갈때마다 감정이 상했다. 마주치는 동료들과 신입 승무원들 사이에서 얼마나 자존심을 눌러야 했는지. 열 마디 설명을 붙여가며 진급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내내 내 속은 편치 않았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행복했다면 넓은 세상에 더 큰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줬다. 나는 프리미엄 클래스로 진급을 했고 부사무장도 해냈다. 무엇을 기준으로 뒤처진다는 생각에 갇혀 맘고생을 했었던 걸까? 그래봤자 비행기 안에서 몇 발자국 앞으로 가서 일하는 것인데. 

0.3mm 앞으로 진입. 비행기에서는 좌석 클래스가 커튼 한 장의 두께다. 그걸로 이코노미,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가 커튼 한 장과 칸막이로 나누어졌다. 티켓의 가격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앞에 있는 사람은 우월의식을 가지도록 분류되어 있다. 탑승 시 이코노미 좌석까지 지날 때, 퍼스트와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우선 짐이 거의 없다. 보따리에 보따리를 얹고 오는 일반석 승객보다 짐 정리도 빨라 여유롭게 포도주를 마시며 기내용 슬리퍼를 이미 갈아 신었다.


비행기는 인구 밀도가 높아 시끌벅적하다. 특히 비행기로 탑승(보딩)을 할 때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쳐다보지 말라는 듯 신문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때부터 자동으로 계층이 상중하로 갈린다.


진정한 업그레이드가 무엇일까? 각자의 속도에 맞춰 인생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 

2. 앞서가는 사람 부러워하지 말기. 

3. 남이 하는 거 말고 내가 잘하는 좋아하는 일 더 잘하기. 

무한대인 바다를 흉내 낸 그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수영장을 생각해 본다. 갈까말까 또 망설여진다. 그럴땐 가는거다. 수영 하는 기분이 좋아서 하는 거다. 잘한다고 칭찬받아서 7번레인을 나오려고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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