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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Oct 28. 2019

산전수전공방전

Resign or Design?

               

  

   

보름달 빵 같았던 나의 비행들. 밝고 달아서 잡는 순간 입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달과 태양이 서로 지구의 반대쪽에 위치할 때 달 전체를 태양이 비추어 보름달이 떴다. 금성이 가장 밝을 때의 1,500배나 더 밝은 빛이 내가 있는 지구와 가까웠을 때 나는 달빛 아래서 기도하고 있었다. 다시 비행하게 해 달라고.

관성이 나를 원래 자리고 끌었고, 중력은 나를 당겼다. 기회가 떴을 때 잡아야 한다. 온 우주가 나를 도와 경쟁률이 높은 항공사를 3번이나 입사했다. 누군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에서 기적을 외치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도 노력 없는 달콤한 말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했을 때 기도해서 이룬 나의 입사와 같다.

그렇게 기뻐하며 눈물을 흘릴 때는 언제고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횟수는 셀 수도 없다. 힘들게 들어왔는데 놓자 하니 아깝다. 승무원을 그만두면 어떨지 나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때문에 이별 연습을 했다. 두바이 집의 일부 짐을 조금씩 한국으로 날랐다. 이미 이런 시도들을 한다는 것은 떠나는 방향으로 맘이 기운 것이다. 자기 팔자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벗어나기 싫은 복지 혜택과 100% 해외 출장 업무인 신나는 일임에도 퇴사했다. 힘들었던 기억은 점차 미화되어 행복한 고통, 서글픈 자유로 남았다.

자유와 안정을 다 가질 순 없는 걸까?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원하면서도 가정을 이루어 안정된 삶을 꿈꾸기도 한다. 헤어져도 다시 그리워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들처럼. 비행과 사랑이 그랬다.

원하던 대로 중동의 항공사를 퇴사하고 한국에 오니 얼마간은 자유가 좋았다. 무엇보다 승무원에겐 알람시계는 고문 도구였다. 잠은 참 좋은 건데, 그걸 얻으려면 꼭 가져야겠다는 강박을 버리라고 들은 적이 있다. 낮 비행이면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된다. 그런데 밤 비행을 위해 잠도 오지 않는 오후에 억지로 자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으면 날밤을 까야했다. 심지어 목적지가 오전에 도착하면 또 깨어 있어야 한다. 수면 계획도 승무원에게 중요하다.

겨우 잠들만하면 어둠 속에서 알람 시계를 째려보며 눈치를 봤다. 너무 안심하고 푹 잠이 들까 불안하다. 시간이 안 될 것 같으면 불안해서 잠을 포기한다. 비행을 그만두니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일어나야 할 고문이 없어진 것이다. 시계가 필요 없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일상을 살고 싶었다.

그것도 잠시,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곧 불안해졌다. 한국 생활이 지루해지니 비행이 얼마나 감사하고 힘들어도 견딜만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이란 녀석이 기어코 오시고 말겠다며 갈등 마님을 마중 나오게 한다. 고심 끝에 결정해 놓고 과거를 번복한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 에이 그만두었는데 어떻게 다시 들어가냐고’ 마음대로 집을 드나드는 고양이처럼 기분이 들락 달락이다.

한번 집 나간 고양이는 미안해서 집에 못 돌아온다고 한다. 이별한 남녀가 어찌 자존심 상하게 모든 걸 다시 뒤집고 재결합을 하겠나. 자존심이 문제다. 그러면 새로운 인연을 찾는 건 쉬운가?

몇 년이 흘러도 비행했던 추억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여행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글을 쓰다 보니 차라리 비행하며 여행 다니는 것이 더 쉬울 거 같았다. 전에 다녔던 항공사에 재입사를 희망하는 이메일을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재입사를 받아 주는 일은 거의 없지만, 다시 받아 주기를 바랐다. 소중함을 깨달은 자는 간절했다. 고심 끝에 옛 연인에게 그렇게 해본 적이 있는가?

 처음 승무원이 되려고 준비했을 때 보다 절실함이 생겼다. 마음에 강한 감동이 왔을 때, 후회 없이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기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완전히 잊혀 포기하기 전이다. 회사에서 반응이 오면 정말 감사하고 거절해도 어쩔 수 없다. 항공사를 떠난 지 6년이 지났으니까. 그동안 다른 항공사도 다녔었는데.

 그런데 답장이 왔다. 떠난 나를 다시 받아 주었다. 중동으로 가게 된 두 번째 기회에 달덩이만큼 기뻤다.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만나면 같은 이유로 헤어진다고 하더니, 나는 다른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번엔 도예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 졌다. 진정한 소울 메이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가짜가 된다. 온전한 깨달음을 위해서 경험이 필요하다. 이상형의 절대적인 기준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과거 연인과 헤어지겠다는 용기와 확신이 생긴다. 어떤 결정을 하던 다 옳다. 나는 무조건 내 편이다. 또 퇴사를 준비했다.     




공방전      


비행을 그만두고 도자 디자인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어쩌면 나에겐 착륙 일지 모르는 한국행 삶을 선택하면서 다시 흙을 만지는 일로 돌아가기로 했다. 희망을 빚어다가 몇 년 동안 마음을 먹었다. 퇴사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막상 내려오려니 고공 점프의 공포감을 느꼈다.

지친 날개를 쉴 수 있는 정류장이 필요했다. 이번엔 좁고 추운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아니다. 흙을 빚는 도자기 공방이다. 잘빠진 유니폼이 아닌 흙 묻은 앞치마, 음식 냄새가 아닌 흙냄새, 매일이 여행 같은 비행이 아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씨름을 하고 있다.

손가락 관절이 전보다는 둔해진 느낌이다. 9년 동안 한 달에 100시간 비행을 하는 동안 몇백만 명의 식사를 챙겼으며, 몇만 개의 납으로 된 카트를 끌었을까? 다부진 손끝의 내공으로 부드러운 손바닥 안에 들어있는 노하우를 손으로 펼쳐 보여주며 도예 수업을 하느라 얼마 전 공방에서 마흔 살을 맞이했다. 내가 현직 싱글이라 하면 답답할 것 같지만 전직 승무원일 때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끔 설레며 공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 차분하게 자신으로 돌아온다. 내게도 드디어 기대치 못한 일을 만드는 발랄하게 우울한 공간이 생겼다.

도자기는 850도의 초벌구이와 1250도의 재벌구이를 거쳐 작품이 완성된다. 피할 수 없는 불의 연단과 심판을 통해 창작과 인내의 과정을 경험한다. 손과 도구로 흙을 다루고 형태를 다듬듯 내 삶은 작업 중이다. 부디 이번에는 즐겁게 매여보자. 세상이 부르면 언젠가 또 나가야 하니까. 비행 항로를 닮은 자글자글한 손금을 인생 지도 삼아서.              

  

공방에 문을 열면 고요한 공기 속에 흙냄새와 비릿한 석고 냄새가 났다. 공방 오픈 기념으로 공기 정화에 좋은 해피트리를 꽃 시장에 가서 데려왔다. 공간에 잘 어울렸다. 모노톤 도자기들 속에서도 건장하게 나를 지켜보는 푸르른 생명이 생겼다. 이파리 위에 흙먼지가 내려앉아도 시퍼렇게 살아 숨 쉰다. 그는 쌔근대던 아이에서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는 청년 나무로 하루가 다르게 몸뚱이 곳곳의 연두색 뾰루지가 터뜨리며 성장 에너지를 감출 수가 없는 그런 나무였다.

 무서울 정도로 강한 생명력에 경이로워 두 팔을 벌려 나무를 안아 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가 젊음의 전성기를 이룰 때 공방 운영도 활력을 더해갔다. 1250도의 온도로 가마를 떼면 온몸으로 진통 같은 사우나를 버티면서도 푸름을 유지했다. 과연 나무가 이겨 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넘치도록 물을 주고 나는 공방을 빠져나왔다. 문까지 걸어두고.


승무원 역마살이 자주 도져서 여행으로 자주 공방을 비웠다. 그는 목말라 갔고, 초록의 기운보다는 회색 먼지 기운이 공방에 도는 듯했다. 해피트리(Happy Tree)는 물을 자주 주는 나무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미안함에 나무는 썩어가고 있었다. 

 나무 곁에서 함께 작업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계속 청춘일 것만 같은 풍성하던 머리숱의 나뭇잎은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듯 건들기만 해도 징그럽게 툭툭 떨어졌다. 나무의 상태가 어느 순간 변하는 걸 느끼니 무섭고 부담이 되기까지 했다. 나무는 어느 순간 뿌리가 흔들흔들했다. 내 정체성도 흔들렸다.


결국, 공방 운영이 힘이 들어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무는 죽어가는 모습이었다. 잎이 노랗게 변하고 냄새가 났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귀를 대어봤다. 나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나무 눈치를 봤다. 더는 공방에 생명과 활기를 주지 못했고 처치 곤란으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버리기도 아니 묻어야 하는지 곤란했다. 결국, 죽어가는 나무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밤중에 그것을 공방 문밖에 내놓고 화를 낼까 두려울 정도로 미안해서 눈길을 외면했다. 다음날 보니 쓰레기봉투가 벗겨져 나무만 쓰레기 장소에 놓여있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예뻐할 땐 언제고 버려진 것이 너 나무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떠났던 것들에 그리움이 생겼다.


사랑도 직업도 마찬가지다. 좋아할 때는 언제고, 간절히 원했지만 견디지 못하고 금방 끝나버린다. 한때는 여자들의 로망이고 뭐고 해외여행에 화려한 생활도 그 뒷면은 허무하고 소소한 일상이 존재한다. 특별한 인생이 없다. 장소와 나라만 달라졌을 뿐 나란 존재는 변함이 없었다.

‘안 한다.’라는 것은 내 맘대로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없어 끝내버리겠다는 것이다. 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간절히 원해서 노력으로 얻었으면서, 입사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내 길이 아닌 걸 알았을 때. 포기가 아닌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감당이 안 되던 증폭이 심한 설렘, 크고 넓은 세상에 눈을 떠버린 부담감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가져야만 끝이 날 것 같은 네버 엔딩 스토리였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귀향 본능이 뿌리를 생각하게 한다. 새처럼 세상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살던 익숙한 습관을 떠나게 한다.


불평불만 대신 그만두는 선택을 해도 된다. 선택은 버리는 과정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기적이고 아름다운 선회가 될 수 있다. 내가 공방 앞에 버려둔 해피 트리에 눈길을 피하듯, 하늘의 비행기를 보면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싶지만, 눈을 바로 마주하기가 껄끄럽다. 추억이 미화되어 상처가 무뎌진 건지. 그만 미안해도 될 일들에 대해 이제야 주어졌던 것에 대해 소중하고 지키지 못해 손을 놓아버린 나의 런어웨이 브라이드. 남들의 시선과 선입견에 자유로워지기까지 세월이 걸렸다. 내게 주어진 기회와 환경을 똑바로 응시하기. 내 편이 되어주는 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편은 절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작품들
Flowery Mountains  나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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