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료 상태의 감정들
내 삶의 주인으로써 지휘권을 찾아왔다면 희망의 스테이지에 올라선 것이다. 설레어도 좋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으니까.. 그럼, 이제부터 할 일은 자신의 내면을 하나씩 탐색해보는 것이다. 태양을 가린 먹구름처럼 잠재된 내면의 힘을 가로막는 기억과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이다.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 무의식 속에 흘러가지 못하고 명치를 막고 멈춰서 있는 감정들을 밖으로 끄집어내 대면해보자. 깊이 억눌러 놓은 채 잊고 살았지만 질기게 발목을 잡고 있는 감정에는 언제, 어떤 마음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정화해가는 것이다.
낡은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 갈 때를 생각해보자. 매번 불필요한 것들을 얼마나 가득 쌓아두고 있었는지 깜짝 놀라곤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을 쌓아온 온갖 기억과 감정들을 무의식은 쌓아두고 있다. 그 안에는 흐뭇하고 미소 짓게 하는 기억들이 있는가 하면 아프고 슬프고 어둠으로 물든 기억과 감정도 있다. 어두운 감정은 누구나 다시 마주하기 싫은 회피의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 의식은 애써 외면하며 억누르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들이 무색하게도 무의식은 자동시스템이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 불쑥불쑥 “나 여기 있어!” 하고 존재를 드러낸다. 회피하고 억누르는 건 그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을 정화한다’ ‘마음을 치유한다 ‘는 것은 무조건 지워버린다 는 의미가 아니다.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내 마음 안에 부정적인 결말로 끝맺은 채 어둠속을 지키는 짐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풀어놓고 바람도 햇볕도 느껴보도록 다시 정리해보자는 것이다. 물이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 있으면 썩게 마련이다. 마음도 그때그때 물 흐르듯 감정이 흘러갈 때가 가장 맑고 건강하다. 버릴 건 버리고 새로운 의미로 옷을 바꿔입고 과거가 아닌 오늘을 살기로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오늘이라는 새 집에서 자유롭고 건강한 지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계속 과거의 어두운 감정과 만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바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자이가르닉 효과 (Zeigarnik effect)' 즉 '미완성 효과'라고 한다.
자이가르닉 효과란? 마치지 못한 일들을 쉽게 마음에서 지우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원없이 사랑한 후 헤어진 사람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잊을 수 없다거나, 애매모호한 관계에 (희망고문) 집착하게 되는 것 등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러시아 심리학자였던 ‘블루마 자이가르닉 (Bluma Zeigarnik)’에 의해 발견되었다. 자이가르닉은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빈의 한 카페에 들렀다. 웨이터들을 지켜보다 보니 어떻게 그 많은 주문을 헷갈리지 않고 기억하는지 신기했다. 궁금했던 그녀는 계산을 마친 뒤 웨이터에게 자신이 주문한 메뉴가 뭐였는지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웨이터는 당황해하며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주문이 완료되고 나면 기억의 필요성이 사라지면서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더욱 궁금해진 ‘자이가르닉’은 164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A, B 두 그룹으로 나눈 후 과제를 주었다.
•A 그룹은 과제 수행 중 아무 방해가 없도록 했다.
•B 그룹은 과제 수행 중 다른 과제를 주거나, 중단시켰다.
실험 결과, A 집단에 비해 B집단이 과제를 2배 이상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B집단이 기억해 낸 과제 비율은 중단했던 과제가 68%에 달했고, 완수한 과제는 32%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여러 실험을 거치며 ‘자이가르닉 효과’는 결국 다음과 같은 원칙에 도달했다. 우리 기억은 완료된 일은 기억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반면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기억 회로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되뇌며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마무리된 일들보다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에 더 마음을 쓰게 되고 승리보다 패배를 더 오래 기억하는 것도 이런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드라마에선 엔딩 장면에 중요하고 결정적인 장면을 결론 없이 끝맺어 버리곤 한다.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상상을 잔뜩 부풀려놓고 계속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요즘 예능 프로에서는 프로그램 도중 광고를 집어넣어 더욱 집중도를 높이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기억은 미완성의 잔상을 오래 간직한다. 미완성에 대해 마무리하고자 하는 본능은 우리가 살면서 마주친 많은 문제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잔상을 남겨놓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잔상은 바로 아픔, 상처, 사고 등으로 인한 ’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어떤 식으로든 누구나 문제를 겪는다. 이때 심리적으로 충격이 큰 사건이나 경험일수록 기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반복될 수도 있다. 마음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마무리 짓지 않는 이상 그 일은 결코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번 아웃’이나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이런 미해결 된 기억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이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대부분은 학교에서나 사회적 합의 즉 법적으로 학생의 처벌이 이루어져 끝이 난다. 그런데 가해학생이 만약 정식으로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피해학생의 입장에선 끝난 일이 아니다. 미완료인 채로 평생 품고 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때문에 용서로 끝맺지 못해 평생을 고통받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신체적 폭력에는 감정적 폭력이 더 크게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친구라는 관계에서의 폭력은 수치심과 상처가 더욱 크고 깊다.
이러한 원망은 타인이나 세상을 향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문제 안에 갇혀버린다. 그 기억은 무의식 속에서 멈춘 시계처럼 녹슬어간다. 우리가 상처라고 인식하는 것들은 대부분 이렇게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이다.
컴퓨터의 화면에 닫히지 않은 창이 무수히 열려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상태에서 화면을 무시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게 가능할까? 그 상태로는 원하는 작업도 제대로 하기 힘들 뿐더러 과열로 곧 멈춰버릴 것이다. 창을 다시 제대로 닫고 완료하지 않는 이상 컴퓨터는 원래의 정상적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이렇게 우리 마음에도 묵은 감정들이 무분별하게 남아있으면 늘 무기력하고 버티듯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대단한 재주가 있다해도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 잠재력을 그냥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불필요한 것들의 스위치를 뽑자.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을 어쩔 수는 없지만 그것을 붙잡고 흘러보내고의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나 세상에 대한 원망은 무의미한 외침일 뿐이다. 문제와 함께 갈 것인지 끝맺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 매듭짓지 못한 기억과 감정은 뭐가 있는지 돌아보고 잘 흘러보내도록 하자. 그리고 이것은 다른 누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임을 이해하면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것이다. 그때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이젠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