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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Oct 24. 2018

낯설게 하기(이야기를 통해)

《공항에서 일주일을》《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이야기’ 때문이었구나.




삶에는 숨과 쉼이 필요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신선한 공기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숨을 쉬고 휴식하는 것은 늘 필요한 일인 동시에, 특별히 갑자기 급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꽉 막힌 상황이나 기분을 경험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사회에서 거짓말처럼 나는 매일 오늘을 건강하고 밝게 긍정적으로 살아가고자 마음먹는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고 사는 사회에서 갈등을 경험하는 건 쉬운 일이라서 역시 거짓말처럼 아침에 했던 다짐과 노력은 매일 일부분이라도 실패하고 무너진다. 

상사에게 야단맞고 기분이 울적해 펑펑 울고 싶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어 잠시 잠깐 화장실에서 울 시간도 없을 때, 몇 날 며칠 작성한 기획안이 대표의 거친 손짓 한 번에 엎어졌을 때, 잘 안 풀리는 글을 두고 몇 시간을 씨름하는데 씨름 끝에도 글을 마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아침부터 버스를 놓치고 점심을 거를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냈는데 저녁에 느낀 것은 보람 아닌 허탈함일 때가 있다. 숨과 쉼이 필요한 순간이다. 원치 않지만, 언제고 한번은 아니 두 번 세 번이고 반복해서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순간에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낯설게 하기’다. 나쁜 상황과 기분과 시야에 걸린 것들에 낯선 눈길을 주는 것.  

무너진 하루,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 자신이나 남의 탓으로 이미 저질러진 일을 마냥 앞에 두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런 일들을 어떻게든 걷어내고 치워내야 다음으로 넘어가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바라지 않았던 일, 원치 않던 상황, 기껍지 않은 기분을 앞에 두고 내가 택한 건 ‘낯설게 하기’였고, 이를 위해 취할 수 있는 건 ‘책’과 ‘여행’이었다. 내가 처한 나쁜 ‘곳’이나 ‘것’이 만든 ‘이야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로 쉽게 넘어가 ‘다른 이야기’를 생각하고 경험하며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 볼 수 있는 게 해결책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대하며 나는 앞서 적은 것과 같은 걸 기대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게 이 책을 통해 그가 일주일간 히드로 공항을 여행하는 것을 읽고, 때때로 내가 짧게 공항여행하는 것을 상기했다. 이 책은 저자가 히드로 공항 측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공항 내에서 머무르며 공항에 놓인 책상에 앉아 그 공간과 그곳을 지나고 머무르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사유한 바를 기록한 것이다. 

공항은 그곳에서 누구든 어느 방향으로든 줄곧 향하는 방향성과 목적성 때문인지, 어딘가로 향하는 데서 떠남이나 낯선 무엇이 기대되고 연상되는 까닭인지, 끝도 없는 설렘을 준다. 기차나 기찻길, 기차역처럼 비행기와 공항 역시 더 이상 생경하고 새로운 것이 아닌데, 근현대에 이들 신문물과 새로운 공간이 막 생겨나던 때를 경험한 사람도 아니면서 나는 기차나 기찻길과 역사 그리고 비행기와 공항에 매번 설레고 때마다 그것들이 낯설다. 그래서 앞서 적은 것처럼 ‘낯설게 하기’가 필요할 때면 이들을 찾는다.

어딘가로 갈 필요 없어도,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또는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동할 필요 없이도 기찻길과 기차역, 공항을 찾는다. 기찻길과 기차역의 경우 요즘은 일상의 공간으로까지 들어왔다. 쓰임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기찻길로 만든 공원이 내가 사는 서울에만도 곳곳에 있다. 연남동과 공릉동에 자리한 기찻길 공원에 자주 간다. 폐철로가 뚜렷하게 지나는 공원길을 걸으면 일상여행하는 기분이 제대로 난다. 달리던 기차를 굴러가게 했던 그 기찻길이 내 발아래 놓인 걸 보며 그걸 밟으면 기차의 생동과 활력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얼마나 쉽고 좋은 ‘낯설게 하기’인지. 


내게는 알랭 드 보통처럼 공항에서 일주일이나 지내볼 수 있는 시간이 쉬이 주어지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나대로 공항여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공항에서 일주일을》 앞부분에서 저자도 밝혔듯이 나 역시 공항에 되도록 많이 일찍 도착하게 노력한다. 나 같은 심각한 길치·방향치는 아무리 많이 갔던 곳이라도 드넓은 공항에서는 여러 게이트 사이에서 허둥대다 간신히 항공사 카운터를 찾고 체크인하고 짐 부치고 나면 시간이 휘리릭 가버리는 경험을 자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래서 서둘기도 하지만 서두는 게 안전하게 항공편에 탑승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길치이자 방향치인 주제에 낭만은 챙긴다고 공항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다. 공항에 가면 밥을 먹고 갔어도 가볍게 또 먹는다. 커피나 차를 마셨음에도 다시 마시고 이미 많이 보았음에도 공항 사진을 담는다. 그곳에서라면 같은 밥과 커피와 풍경도 낯설고 물설게 느껴진다. 이런 낯선 환기가 좋아 일부러 찾기도 한다. 공항에서 어딘가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닌 그곳 자체를 즐기기 위해 인천행 리무진에 종종 몸을 맡긴다. 

인천국제공항 청사의 비스듬하게 둥그런 곡선이 햇빛을 반짝 반사하는 모습이 맘을 흔든다. 청사로 들어가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을 즐거이 그들이 불쾌하지 않을 만큼 살피고, 안으로 들어가 빈 벤치에 여유롭게 앉는다. 비행을 앞두고 있다면 취하기 힘든 여유다. 체크 인 할 일도 짐을 부칠 것도 없으니 모닝커피를 천천히 즐기며 낯선 느낌을 만끽한다. 공항에서 만드는 나의 시간, 나의 이야기다. 이미 익숙한 나 자신이지만 공항에서라면 조금 다른 시간과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일 수 있다. 조금 다른 나일 수 있다.  


급한 성격에 산만하고 호기심은 많던 어린 나는 어딘가에 눈을 두고 발을 재게 놀리다 보면 무릎이 성한 날이 별로 없었다. 피가 보이고 쓰라림이 느껴져 요란한 울음을 터뜨리면, 엄만 그런 나를 안고 위로하며 내 귀에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엔 내 아픔을 눈앞에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엄마가 좀 원망스러웠는데 점점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여졌다. 아이란 정신을 금세 딴 데로 돌릴 수 있는 단순한 생물인지라, 내 주의는 다치고 아픈 나의 이야기가 아닌 즐겁고 재미있는 ‘다른 이야기’로 쉽게 넘어갔다. 피 나고 아프던 상처에 머물던 주의가 점점 흩어지고 아픔도 한 걸음 늦춰지는 듯했다.    

내 주관이 생기고 내 눈으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자, 나를 달래는 건 내 몫이 되었다. 맘이 아플 때나 몸이 아플 때나 분명한 것은 책을 읽으면 보다 나아진다는 거였다. 언제부터였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른에 비해 쉽게 아픔을 느꼈던 참을성 없는 몸과 맘은 책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쉬웠다. 이번에는 너무 아파서, 지금은 너무 슬퍼서 안 될 거야, 생각했지만 그런 부정적 생각을 앞세우고도 책 속으로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었다.     

책에는 내가 심각하게 느끼던 ‘이야기’가 없었다. 전혀 다른 상황이 보였고, ‘다른 사람’의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아프고 슬프고 유쾌하지 않던 이야기를 잊을 수 있었다. 다른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면 나 역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도 했다. ‘다른 것’을 듣고 겪으며 책을 읽고 나면, 이른 낮에 영화관에 들어가 저녁 어스름 무렵 나오며 느끼는 생경하고 말끔하고 말간 기분이 들었다.    

책은 어리다는 단순한 이유로 무엇 하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할 수 없던 게 많던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손쉬운 해결책이었다. 돈 없는 어린아이가 기분 나쁠 때마다 맛있는 주전부리를 사 먹거나 쇼핑으로 기분 전환하거나 놀이공원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해서 풀릴 기분이나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책은 얼마나 편한지. 책을 들고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면 하면 되었다. 나는 책 안의 이야기에서 크게 숨을 쉬고 쉼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과 기분에서 눈 돌리고, 그 상황과 기분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책에 이어 나를 ‘다른 이야기’로 이끈 것은 여행이었다. 어려서 가족여행은 아빠가 이끌곤 했다. 아이들이야 어디든 돌아다니고 놀러 가는 걸 워낙 좋아하기 마련이지만, 특히나 나는 여행이 주는 ‘낯선’ 느낌이 좋았다. 여행 중에 보고 경험할 새로운 것들이 기대되었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익숙하던 집과 내 방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게 좋았다. 그러는 한편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골목을 달리해 가보거나 창밖에 문득 바뀐 계절을 감지하곤 낯설게 느끼기도 했다. 뚜렷하고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낯설다’는 공통점을 지닌 ‘여행일상’과 ‘일상여행’의 매력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내가 내 계획을 세우고 내 맘에 드는 곳을 골라서 내 돈 들여 여행하게 됐다. 사학을 전공한 덕에 정기 답사를 겸한 국내 여행도 할 수 있었고, 학부 이후에는 혼자 여행하는 매력에 푹 빠져 유럽과 동남아, 중화권 등을 여행하기도 했다. 회사 국내외 출장이나 워크숍 등을 통해 여행을 경험하기도 했다. 머릿속이 온통 여행인 것 같아, 유쾌하게 내게 말하던 친구들. 그 반복된 말을 듣고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나 궁금하곤 했다. 

당연하게도 책과 책 읽기는 여전히 좋았다. 책 안의 이야기, 책이라는 물상, 책을 읽는 행위를 모두 즐기고 좋아했다. 여행을 좋아하던 이유와 그 시작처럼 책을 좋아하는 이유와 시작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고, 그 둘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역시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이야기’ 때문이었구나. 나는 독자로서 책 안의 이야기에서, 여행자로는 여행 중의 이야기를 통해 숨이 트이고 쉼이 있는 시간을 누리며 즐기고 있었다. 숨과 쉼을 주는 이야기 덕분에 책처럼 여행이 좋았던 거다. 그리고 내가 책과 여행을 통해 구했던 것은 나와 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의 ‘다른 이야기’가 주는 ‘낯섦’이었다. 지금, 이 순간과 이 공간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의 이동과 경험이었다.

책과 여행과 함께라면 익숙한 습관과 관점을 버리고 다른 걸 기대할 수 있었다. 익숙했기에 꽉 채워진 공간과 시간을 보다 낯설고 다양한 잠재적인 가능성으로 환기할 수 있었다. 이런 환기를 통해 더욱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과 자유로운 사유를 경험할 수도 있었다. 이는 관심과 취향을 새로이 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삶은 재규정되고 재구성되고, 사유는 재배치 될 수 있었다. 보다 예민하고 섬세하게 미시적으로 삶을 즐길 수 있었다. 생각에 빈 공간(빈틈과 숨 쉴 구멍)을 줄 수 있었고, 그렇게 생긴 빈 공간에 다른 사유와 감상, 감정, 같은 일에도 시각을 달리할 여지를 들어서게 할 수 있었다.


2018년 봄, 나는 가벼운 여행을 즐겼다. 여행은 책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어서, 연초면 내가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나 손꼽아보곤 했다. 되도록 느긋하고 넉넉한 맘으로 내 안팎을 비우고 비운 그곳을 새로이 채우고 싶은 맘이 컸다. 그런데 올해만큼은 여행하는 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건강이 이유였다. 작년 봄부터였나, 몸이 영 좋질 않았다. 그걸 그냥 두고 일과 여행을 이어갔고, 꼬박 1년이 지나 올 봄에 몸은 이전보다 세 배쯤 안 좋아진 듯했다. 몸이 안 좋으니 마음도 피곤해졌다. 여행에 드는 시간과 거리를 이겨낼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마음도 막혀 있었던 것 같다. 체해서 속이 꽉 막히듯이. 두뇌와 마음의 소화불량 상태였다. 괜한 피로와 염려가 스쳐 지나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여행을 영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거리와 시간을 짧게 잡아 여행하기 시작했다. 하루여행 등 짧은 일상여행을 즐기며 내 몸에 여유와 시간을 줄 필요가 있었다. 봄철 가벼운 여행으로는 꽃놀이만 한 게 없다. 3월에는 창덕궁 홍매화, 4월엔 진해 군항제 벚꽃과 대구 하중도 유채꽃을 보러 갔다. 굳이 몸이 안 좋아져서 만이 아니라 봄마다 하는 여행이기도 했지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여행이 그 방식뿐이었으니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졌다. 

꽃을 남보다 유달리 좋아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봄에 태어나서 봄꽃을 좋아하나 봐요.’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 걸 보면 그렇긴 한가 보다. 몸이 아픈데도 꽃을 찾아다닌 걸 보면 봄꽃에는 약간 미친 증상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제 봄꽃은 다 본 건가 봐,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뿌듯했다. 크게 피로를 느끼지 않아 불편함이 없었고, 몸 상태가 안 좋은데도 좋아하는 걸 즐겼다는 소박한 기쁨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가벼운 여행은 몸과 마음을 환기하는 독서나 다름없었다. 머리의 여백을 넓혀주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고, 앞선 문장과 일부 역설적이게도 머리를 채우는 데도 도움을 줬다. 실용을 염두에 두고 한 여행이 아니었는데도, 실제로 효용이 크기도 했다. 내가 작가로서 그리고 에디터로서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까. 


《독서의 취향》도 이와 같은 숨과 쉼 사이에서 시작됐다. 진해 벚꽃 여행 이후 숨통이 트인 심신이 4월 중순 새 책 기획으로 이끌었고, 같은 달에 했던 대구 유채꽃 여행 이후 샘플 원고를 완성했다. 샘플 원고 보낸 당일로 출판사와 계약하기로 했다. 3주 만이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구체적 구상 단계가 아니었던 기획, 몇 년 후를 내다보았던 계획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글을 쓰는 이로서 당장의 할 일 (글)도 있지만, 시일을 두고 하는 일(글)도 있다. 쓰는 이로서 나의 목표는 언제나 꼭 적량의 제 역할을 다하는 말과 글을 제자리에 놓는 것이다. 사유와 감성, 어휘와 문장을 골라 제 위치에 잘 놓으려 한다. 그와 함께 놓인 말과 글이 어떤 시간에 놓일지도 고른다. 맞춤한 듯 꼭 맞는 제자리를 잘 찾도록.

책에 관한 책은 언제고 다루고 싶던 것이지만, 내게 책이 소중한 만큼 책을 다룬다는 것은 귀한 일이기에 그 시간은 언제나 지금 아닌 언젠가로 멀리 미뤄지고 있었다. 소중한 것에 오히려 선뜻 맘 열거나 손 내밀지 못하던 터였다. 그 맘을 열고 그 손을 내어주게 한 것은 이야기의 힘이었다. 책과 여행이 가져다준 이야기의 힘 덕분이다. 최근 들어 맘이 가장 여유롭지 못했던 때, 또다시 쉼과 숨이 들어서도록 해준 책과 여행의 이야기가 지금껏 내가 겪어온 이야기의 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여유)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여전히 숨과 쉼이 필요할 때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책과 여행을 통한‘ 낯설게 하기’를 택한다. 어쨌든 책과 여행 안에는 다른 길이 있다. 내 눈에 보이는 길(이야기), 나를 둘러싼 길 아닌 다른 이야기와 길이 있고, 그 이야기를 따라 죽 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삶은 신선하고 낯설게 새로이 환기된다. 환기된 삶에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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