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_ 제임스 홀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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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이 바뀌다.
_ 앞에서 말했듯, 주술적 사고는 유년기의 특징이다. 아이의 자아는 아직 격한 시험을 거치지 않았으며, 분명한 경계도 없다. 외부세계와 내면세계, 그리고 자신이 소망하는 세계의 목적은 종종 헷갈린다. 소망은 가능성으로, 때로는 확률로도 보인다. 이는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아이의 자기애를 나타낸다. 이런 사고는 과장이고 망상이지만 아이에게는 건전하고 경이롭다. '크면 하얀 외딩 드레스를 입고 왕자님이랑 결혼할 거야.' '우주비행사가 될 거야.' '유명한 록 스타가 될 거야.'(당신이 어렸을 때 가졌던 주술적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 보라. 그리고 삶이 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한번 돌이켜보라.)
나의 주술적 소망...
나의 어릴 적, 나는 소망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꿈이 없던 시절에 나는 꿈을 적어보라는 학교에서의 과제가 제일 어려웠다. 꿈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저 살기만 했다. 살아내기만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중요했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더 외로웠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꿈이 있기를 바랐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기를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딱 한번 '연기'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 뿐이었다. 예술의 전당을 마당처럼 쓰는 곳에 살았던 좋은 환경 덕분에 내가 초등학교 중학년쯤, 동네에 연기학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심했던 내 마음속의 용기를 모두 짜내어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연기학원에 보내주세요..." 아주 조그만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별로 반응이 없으셨고, 지나 가는 말로 '니가 무슨 연기를 한다고 그러냐.' (아주 솔직하고, 현명 대답이었을 수 있다)라고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감히 다시 묻지 못했다. 아주 작게 최대한 용기를 내어 외쳤던 나의 소망은 그날 이후 블랙홀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외쳐도 답이 없이 빨려 들어만 가는 블랙홀...
나는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았고, 연기는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스스로 나의 꿈을 포기했다. 이후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나는 하고싶은 것 즉 소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자고, 먹고, 놀았다. 그러다 나의 첫 소망은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아니 지워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꿈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잊혀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다시 용기를 내서 연극부에 지원을 했던 것(결국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무대미술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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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사춘기의 고통과 혼란을 거치는 동안 아이의 주술적 사고는 거센 역풍을 맞는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자아는 여전히 남아 '영웅적 사고'를 보여준다. 영웅적 사고는 주술적 사고에 비해 현실적이나 여전히 희망하는 수준이 높으며, 우리는 거창한 미지의 목표를 성취할 것이라 상상하고 추정한다.
어렸을 적 나는 장영실을 동경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 책을 끼고 다녔는지 그 책을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져 오는지 알지 못했다. 천민의 몸으로 인정을 받고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기술을 머릿속에 펼쳐진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었던 장영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어떤 일을 하든 그 안에서 빛을 내뿜으며,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었고, 인정받아 유명해 지고 싶었던 것 같다. 오직 나의 실력으로만.
하지만 소망이 사라진 나는 내 안의 빛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고, 누군가 아니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나 대신 빛을 모아주기를 바랬다. 특히 부모님이 나를 유심히 보아주기를 나에게 있는 어떤 재능을 발견해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천재로 불리던 오빠와 그림을 잘그리고 노력을 엄청나게 하는 언니를 챙기면서 일을 하시는 부모님은 공부도 못하고 별다른 재능을 보이지 않는 막내딸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어린시절 나는 부모님의 인정이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았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나의 잘못된 생각은 결국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못생겼고, 뚱뚱하고, 인기 없는 그저 그런 아무런 색깔도 없는 무채색의 나. 텅 비어버린 마음에 자리 잡은 그 감정은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결국 한창 제일 빛나야 할 10대를 나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 보내고 말았다. 나의 자신감은 사라졌고, 내가 바라던 빛나는 삶을 이룰 수 없었다. 내 안에 빛을 잃은 아니 누군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던 나는 그 빛을 다른 친구들에게서 찾으려 노력했다. 나는 고등학교 즈음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 떼로 몰려다니던 아이들. 야한 농담을 하고, 연애를 하고, 화장을 찐하게 하고 카페이가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나이트 클럽에 가는 그 아이들이 나의 우상이 되었고 나는 잘 노는 10대 방황하는 10대 말썽꾸러기 10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일진이 되었냐고?
아니. 나는 그마저도 바라만 볼 뿐, 흉내만 낼뿐, 결국 그들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사실 어울릴 깜냥이 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몇 번 친한 친구가 나를 끌어들였지만 나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내가 그들 안에서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때 그 친구들에게 담배를 배웠다. 다음날 친구가 또 갈 거지?라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을 치기에 내 마음은 그렇게 넉넉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그것도 못하는 소심하고 용기 없는 나를 비난했다.
그렇게 기회를 잃었지만 그런 삶을 동경했던 나는 혼자 담배를 사서 집 베란다에서 몰래 연습했다. 그 이후로 아주 가끔 내가 세 보여야 할 때 담배를 피웠다. 다니던 학교가 바뀌고 친구들과 떨어져 그 중학교에서는 몇 안가는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은 나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런 나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 것은 소위 말하는 고등학교 날날이 들.(진짜 일진은 따로 있었다. 꼭 그렇다.) 그 애들은 내가 만만했는지 나를 놀렸고, 내 돈을 훔치기까지 했다. 나는 알면서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로 인해 나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더 커져만 갔고, 종국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인기 없는 아이로 내 마음속에 나를 정의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를 빛나게 만들어 주던, 나의 마음속 어둠을 몰아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중학교 쯤 그림을 잘그리는 것 같아 미술을 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지만, 이미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영재 언니를 가진 동생은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언제나처럼 그 말에 잘 따랐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가면 언니와 비교되었고, 언니는 그때도 지금도 여러 면에서 너무나 뛰어나다. 나는 또 내 소망을 한번에 접었다.
결국 청소년기 나의 영웅적 사고는 최고가 되고 싶다는 것, 유명해지고 싶다는 것,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숨겨진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것으로 귀결했다. 나를 발굴해 줄 사람. 내 안의 보석을 발견해 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은 없었고, 어울리지 못할 친구들을 바라보며 외로워했다. 그때 내 안에 무언가 있다고,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을 수 있을 어떤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사는 내내 아쉬웠다. 그리고 그 아쉬움과 두려움 불안함들이 나를 점점 어둠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