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ktx를 타고 강릉에 간다. 내륙에서 나고 자란 터라 바다는 언제 봐도 신나고 바닷가 동네에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했던 즐거운 기억들이 가득하다. 내 머릿속에는 바다를 보기만 해도 들뜨고 마는 스위치 같은 것이 생긴 게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고된 날들이 찾아올 때도 나는 정신을 차려보면 강릉역 대합실에 내리고 있다.
어떤 땅에는 어떤 힘이 있어서 발을 딛는 때 유난히도 그런 것들이 솟아올라 정수리까지 치민다.
강릉 앞바다 어느 해변의 모래사장을 밟을 때면 그렇게 정수리까지 올라온 힘이 내 몸 안에 가득 찬 고된 일, 모진 말, 비뚤어진 마음들을 사악 가지고서 파도처럼 다시 발바닥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내가 밟고 섰던 땅들을 떠올린다. 어떤 산, 어떤 들판, 어떤 해변, 어떤 보도블록 위까지.
그렇게 또 찾은 강릉에서 좋아하는 모래색 배낭에 옷가지 몇 개만 달랑 챙겨 들고 안목해변이 보이는 방에 묵었다. 원래는 더 먼 곳으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생긴 사정으로 강릉에 머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짧아진 일정에 필요 없어진 짐은 골라내 집에 택배로 부쳤다. 아마 내 짐이 나보다 먼저 도착할 것이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창문을 열어놓고서. 검은 파도 소리와 희고 푹신한 이불에 감겨 잠들었다.
홀로 떠나온 날에는 종종 침대 옆의 벽에 꼭 붙어 모서리에 붙박이듯이 누워 잠든다. 코와 눈만 겨우 내놓고서. 낯선 방에서 혼자 잠드는 일에는 설렘과 약간의 허전함이 공존한다. 잠자리에 들 때에야 비로소 홀로 뚝 떨어진 느낌. 그러나 오늘은 외롭지는 않다.
혼자서도 조금 강해진 힘은 몽골 초원의 땅에서 얻었다. 몽골에 여행을 다녀오고서는 한참 뒤에야 깨달은 게 있다. 나는 거기서 그 땅의 기세에 눌려 기가 죽어 있었다.
유목민 집 아이는 한 사람분의 제 몫을 하는 나보다 어른 같았고 양과 염소, 소나 말들은 나보다 멋지게 제 삶을 살아가는 생명들이었다.
그래서 말 한마디 못 붙여 본 유목민 아이에게 가지고 온 과자를 나눠준 후에야 손 인사를 나눈 것이나 다가와 부비는 아기염소를 번쩍 안아 들어보지 못하고 조심스레 정수리와 뿔만 쓰다듬어 본 것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거긴 그런 땅이었다.
때로는 나를 압도하고 때로는 나를 품어주는 어떤 땅들. 그리고 고요히 있다 가라고 맞아주는 이 땅. 이불에 감긴 채로 잠들었다 눈 뜬 안목해변의 아침엔 파란 바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들고 길로 나섰어.‘
그런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느란 비가 안개처럼 가라앉느라 사람 하나 없는 모래사장을 걷는다. 여전히 조금 쌀쌀해서 손에는 아이스크림 대신 편의점에서 산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었다. 이른 아침의 커피 한 모금. 목적지 없는 걸음엔 두려울 것이 없다. 또 걸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