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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언 Sep 13. 2021

길을 가며 구경한 꽃으로 화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열댓 살의 나는 문자를 눈으로 읊으며 기뻐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한가득 받아온 교과서를 꽂으려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간 기억이 있다. 그리곤 어 시간 중  느낄 그때마다의 재미를 위해 읽기 책의 글들을 읽지 않을지, 아니면 지금 모든 글을 눈에 담을지 고민했다. 지금보다 더 생각과 행동의 거리가 짧았던 어린 나는 마시멜로병에 든 마시멜로를 그 자리에서 다 꺼내 먹는 아이였다. 결국 높이 쌓인 교과서들은 책상 아래에 쭈그리고 앉은 나의 눈을 스치지 않으면 꽂힐 수 없었다. 모든 글을 다 눈에 담을 것이면서도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읽지 않고 책상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글을 읽은 것은 마시멜로를 한 번에 꺼내먹 달디 단 속을 자책하는 나름의 반성이었던 것 같다.



급한 성격 탓에 모든 행동이 빠르고, 특히 읽는 속도가 빨랐던 나는 무엇이든 많이 그리고 빨리 읽었다. 그것이 지극히 평범해 나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그러나 뛰어난 재능을 가져 비교대상이 되는 친구에 대한 작은 열등감을 가진 어린 나의 자랑이었고 기쁨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겁이 많고 감정 소모를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는 같은 책을 수십 번 읽었다. 이유는 꽤 다양했던 것 같다. 빨리 읽으니 놓치는 부분이 많아 다시 읽어도 새로이 읽혀지는 어구가 있어 그러했고, 이미 스스로에게 스포일러 한 수십 페이지 앞 내용을 감정 소모 없이 순수하게 텍스트를 읽고 눈 위로 굴리는 과정으로 즐길 수 있어 그러했다. 책을, 특히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두려움, 떨림, 기대감에 발맞추어 갈 수 없었다. 감정 몰입에 약했던 나는 언제나 책의 첫 회독을 스키밍으로 시작했다. 스키밍으로 줄거리만 빼 읽은 후 심장 뛰는 장면이 어디쯤인지, 어디 기쁨의 폭죽이 수 놓이는지 어림잡는 것은 진지한 독서를 위한 하나의 작은 의식이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원 없이 읽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활자에 파묻히면서 활자에 목말라했다. 바다 한복판에 표류한 돛단배에 홀로 탄 느낌이었다. 사방이 물이지만 내가 원하는 물이 없는 상황이 나와 고등학교 생활이 제공한 활자의 관계였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소설과 비문학 지문을 다루지만, 심지어 중요 내용만 스키밍으로 빼 읽는 것이 꽤나 중요한 스킬로 여겨지는 시간들이었지만, 원하는 것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눈을 그리고 무엇인가를 읽고 싶다는 (사실은 '무엇인가'라고 두루뭉술하게 정의될 수 없는 꽤나 정확한 범위를 가진 무엇인가지만) 열망이 나를 조금씩 바스러지게 했다. 그렇기에 야자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 읽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읽을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메마름을 충족시키기 위해 더 빨리 더 요점만 읽혀졌다. 나쁜 습관이 제대로 뿌리를 박은 것이 그때쯤인 것 같다. 무엇이든 간에 빨리 한 번 내용을 훑어 내린 후 다시 시간을 내서 즐길 만한 내용인지 판단하는 것. 그렇게 잃은 것이 많다. 독백이 읊어주는 상황의 긴박함과 누군가의 대화를 조용히 엿들으며 느낄 수 있는 그들 사이의 간질함이 대표적인 예이고.



스토리에 진입하여 전개를 쫓아가며 즐길 수 없는 나쁜 습관이 글을 읽어내리는 눈과 책장을 넘기는 손 끝에 꽤나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얼마 전부턴 무의식적으로 스토리 중심의 글보단 감정선 중심의 글을 찾아 읽었다. 감정선 중심의 글을 읽으며 앞서 파악할 이야기가 없으니, 해결해야 할 갈등이 미미하니 작가가 조합한 단어의 나열에 감탄하는 그리고 조금 더 지금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어제 읽기 시작한 글이 참 고맙다.



항상 결말이라는 정상만 향해 달려간 후 진이 다 빠진 채 타박타박 내려오며 걸어온 길을 대충 눈에 훑어보던 나였다. 본 것이 꽃인지 나무인지도 헷갈리는 나에게 정상을 향해 오르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의 기쁨을, 정상을 향해 오르며 만날 수 있는 수많은 풍경을 알려주는 글을 만나게 되어 고맙다. 다섯 페이지 남은 그 글의 마지막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할지 아직도 준비가 잘 되지 않는다. 정말 몇 년, 어쩌면, 아마도 십몇 년 만에 나는 길을 가며 구경한 꽃으로 화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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