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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Jan 02. 2022

판테온을 보다 든 조직과 리더십 단상

feat. 알쓸신잡과 직업병

출처: http://asq.kr/YoPhVDv


몇 년 전 프로이지만 알쓸신잡 시리즈를 재밌게 시청했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꽤나 많지만 유현준 교수님을 좋아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나 관점이 특별해서. 문득 유현준 교수의 판테온 이야기가 떠올라 영상을 찾아봤다. 건축가로서 가장 최고라 생각하는 건축물이 뭐냐란 질문에 그는 로마의 판테온을 꼽았다. 그 이유는 아치나 돔형 중앙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가장 단단한 키스톤 없이' 구멍을 냈다는 혁신성.

나는 로마에 가보지 못했기에 그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느낀 적 없고, 건축가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없기에 그 혁신성에 탄복하기도 어렵지만..


알쓸신잡 이전에도 이 판테온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천장의 구멍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는 이유와 어떻게 기둥 하나 없이 벽의 두께만 6.2M, 돔 전체의 무게가 4,535t이란 거대한 공간을 지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 다소 억지스러울지 모르나 조직과 리더십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입장에서 이 건축물이 조직, 그리고 리더십과도 참으로 닮았단 생각이 드는 건.. 맞다, 직업병이다. �


※ TMI, 교육담당자들의 직업병 이야기 하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리더십 교육에 써야지, 예능을 보다가도 아이스브레이킹에 써야지 하며 그냥 넘어가질 못하고 쟁여두곤 편집하는 병.


그럼 대체 뭐가?




1. 기둥 대신 아치형


출처: 내 아이패드의 발그림

'신전'을 떠올릴 때 가장 익숙할 형태는 위와 같다. 넓고 판판한 지붕이 있고 그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 빼곡히 서있는 모습.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은 날아갔다지만 역시나 가장자리 직사각형의 큰 돌들을 기둥이 받치고 있다. 하지만 판테온은 돔형으로 43미터의 넓은 공간에도 중간에 지지하는 기둥이 없다. 이걸 가능케 하는 구조가 아치 형태. 이 아치형을 180도 회전시킨 것이 바로 돔형이다. 판테온은 이 돔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모든 건축물의 제1 원리가 '무너지지 않는 것=중력을 버티는 것'이라던데 아치형 구조는 중력을 좌우로 분산시켜 구조를 안정적으로 만든다 한다. 상기 이미지처럼 일자형, 평면형 구조는 위에서 중력 방향으로 아래쪽에 압력을 가하게 되는데 당연히 위가 무거울수록 아래쪽부터 금이 가게 된다. 그러나 아치형은 돌과 돌이 맞물려 위에서 아래로 힘을 받는다 해도 각 돌들로 힘이 분산된다. 때문에 하단에서 압력을 버티는 힘이 강할 수밖에 없기에 다리나 터널, 대형 건축물에 활용된다 한다. 재밌는 건 아치형 구조의 발명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에 석재가 부족해 진흙이나 벽돌로 신전을 짓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여하튼 덕분에 빽빽한 기둥 없이도 더 튼튼하고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기업의 임직원이 1만 명 정도 된다 치자. 회사마다 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대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의 수는 수십 명에서 200여 명 수준. 그 임원들 하에 실장, 팀장 등의 중간 리더들이 존재하는데 임원 조직당 그 수도 매우 소수이다. 그 중간 리더 밑에 다시 파트 리더 등으로 리더십, 책임과 권한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다시 결집하는 형태. 그런데 스타트업을 보다 보면 비교 안 될 만큼 작은 조직에서 위가 꽤 무거운 경우를 흔히 본다.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파운딩 멤버들이 모두 C-Level을 달고 있다거나, 20~30명 될 뿐인 조직에 C-Level만 몇 명, 기능당 2~3명 있어도 팀장이 존재하는 것 같은. 조직이 성장해 규모가 커질수록 그 비율의 절대 수치는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꽤 높은 비중이긴 하다. 그럼 리더층이 두꺼운 게 문제냐, 그 자체도 성장에 따라 전문가 영입이 증가할수록 문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건 리더십이 어떻게 분산되고 견제되어 있는가 하는 것. CEO가 전권을 가지고 일방향 리더십을 발휘하든, 극소수의 리더가 그렇든 중요한 건 팀원 하나하나가 서로 결속력 있게 그 역할과 책임이 맞물려 있냐는 거다. 그 방안을 모색하고 구조나 프로세스를 만들어 가며 조직의 성장과 성숙의 파이(=판테온의 공간)를 넓히고 있는지,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카리스마와는 다르다) 리더십으로 부담을 아래로 내리꽂고 있지는 않은지, 각각의 리더십이 제 몫을 하며 무게의 하중을 균형 있게 분산시키고 있는지.

몇 명부터 수십 명 정도 되는 스타트업들을 보다 보면 강한 추진력과 카리스마의 소수가 팀 전체를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초기 조직에서 당연하고, 이건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의사결정, 책임감, 권한, 명확한 방향 제시와 '나를 따르라!'는 중요한 리더십 역량이고 생존이나 속도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쏠려 한 방향으로 내려가는 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은 조직(=건물)이 하중을 버텨내는 데에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아치형이 많은 기둥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면서도 구조를 넓게 확장시키듯 적절한 힘의 분산이 조직에도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동시에 밀어내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 말이다.




2. 위로 갈수록 얇고 가볍다. 그리고 서로 힘을 나눠가진다.


출처: http://asq.kr/z2plMWl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하고 무거운 구조물은 어떻게 이 지지대 없이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었다 한다. 그 원리 중 하나가 위로 올라갈수록 콘크리트 무게가 가볍게 설계되었다는 점. 돔의 중앙으로 갈수록 가벼운 돌이 쓰였고 두께가 얇아진다 한다. 이 방법을 쓰지 않고 하단부터 상단까지 동일하게 구조를 만들었다면 현재보다 천장의 무게가 80% 정도 더 무거워졌을 거라 하니 그럼 과연 지금과 같이 안정적일 수 있었을까 한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듯 격자무늬 디자인이 되어 있는데, 이 벌집 같은 격자무늬 자체도 하나의 아치가 되어 힘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위로 갈수록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이 디자인.


구성원이 중요하고, 구성원이 몰입하고 만족해야 조직이 영위되고, 그래서 조직문화가 어떻고 하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러면서도 CEO와 소수의 스타플레이어들의 역량이 결정적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그렇고 요즘 기업들이 절대평가에 대한 전환이나 접목을 많이들 시도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절대평가는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개인에게 목표나 기대 수준을 명확히 정해 평가한다 해도 조직 전체로 봤을 때엔 그 목표나 기대 수준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로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다만, 지금 비유에서 말하고 싶은 건 막중해지는 책임감이 아닌 권한과 권력에 대한 균형이다. 일반화할 수야 없겠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R&R은 Role과 Responsibility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일부 리더들에게서 Responsibility보다 Power나 Authority를 더 중시하는 것 같은 행태를 볼 때가 꽤 있다. 스타트업씬에서는 수평적(대체 그 실체는 뭐냐며..) 조직문화니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니 자율, 주도성 등의 워딩으로 퉁쳐지며 구성원들에게서 조차 책임보단 Responsibility <<<...<<< Role/Power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이때 Power라 표현하는 건 Proactive나 Autonomy보단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 같을 때도 많아 그렇다. 리더로 갈수록 책임은 버텨내야 하는 하중처럼 무거워지되, 본인 경험과 지식의 무게(=정답이라는 생각, 편협함, 통제감 등)는 최대한 가볍게 덜어내야 Top-down과 Bottom-up이 조화되며 조직의 구조를 탄탄히,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또한 구성원들 역시 그 하중의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개인과 속한 조직/기능 하나하나가 그 몫의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3. 키스톤 대신 구멍? 근데 왜?


출처: 구글+편집 (좌측 2개), tvN 미래수업(우측)


아치형, 돔형 구조물을 만들 때 가장 위쪽 가운데에 들어가는 돌을 키스톤이라 한다. 그림에서 보듯 아치형이라면 양쪽, 돔형이라면 사방으로부터 밀어내는 힘이 모이는 곳. 때문에 이 돌이 빠지면 무너지게 된다.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역할이기에 가장 크고 단단한 돌을 끼워 넣게 된다. 로마의 판테온은 돔형 구조물인데 이 중요한 키스톤 자리가 뻥 뚫려 있다. 이 구멍을 Oculus (눈; 라틴어로 오쿨루스)라 하는데 그 지름이 무려 9미터에 달한다. 유현준 교수는 애초에 키스톤이 없어도 된다는 당연했을 생각을 버리고 시도한 것만으로 건축사의 혁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파란 화살표처럼 사방에서 막대한 하중이 실리는 이 키스톤 자리에 구멍을 내고도 어떻게 판테온이 버틸 수 있다는 걸까?

건축가들은 상기 이미지상의 분홍색 원형 부분, 즉 Oculus를 둘러싼 원형의 구조가 그 비결이라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단단한 돌을 배치함으로써 평면도 상의 또 다른 아치구조를 형성해 지탱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 평면, 입체와 같은 형태부터 재료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동시에 밀어내고 있다. 앞에서도 말한 견제와 균형이 완벽히 맞물려.


또한 이 구멍의 역할이 무엇인가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제물을 바치고 그 기도가 신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시시각각 공간 내 벽면을 훑어가며 해시계 역할을 하기도, 그 자체가 신전의 디자인이기도, 신전 밖의 날씨 변화 같은 외부 상황을 비춰주기도 하는 역할이다.

출처: https://youtu.be/KaY8zqYfQI0


기도가 신에 닿는다는 건 예전엔 신전 내에서 늘 불을 피웠고 제물을 태울 때 그 연기가 유일한 출구인 오큘러스를 통해 빠져나가 하늘로 향한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늘 불을 피우고 사람들로 가득하다 보니 그 열기로 인해 내부에서 밀어내는 온도와 압력이 발생하여 어지간한 비는 안으로 들이치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폭우가 내릴 때엔 내부로 빗물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를 대비해 신전 바닥엔 디자인 위화감 없는 배수구멍이 곳곳에 나있다.

출처: https://hangamja.tistory.com/867



나는 오큘러스가 CEO와 조직문화 같다란 생각을 했다.


스타트업에서 조직의 업력이 늘고 성장할수록 일종의 세대교체, 속된 말로는 물갈이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규모가  회사보다는 들고나는 인력의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고. 20~30 규모로만 성장해도 슬슬 외부에서 전문가 혹은 경력자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괜찮은 리더나 실무자 모두 시급하지만 이때 흔히 듣는 이야기가 리더급(시니어란 말도 많이 쓰더라는), 경력직에 대한 . 어떤 회사는 CEO 경력직을 무시한다더라, 어떤 회사는 경력직의 무덤이라더라, 어떤 회사는 리더들이 리더십이 뭔지, 매니지먼트에서 본인들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조직적으로도 정립이  되어 있다더라 같은. 물론 대기업보다는 규모가 작은 중견, 중소, 스타트업에 이를 수록 CEO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지만 2번에서 말했듯 CEO 리더십과 조직 운영에 대한 방식이 어떤가에 따라 조직이 경력직과 리더십을  활용하고 구조와 체계를   원활히 만들어나갈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기도. 크고 단단한 키스톤이 되기보다 리더십을  배치하고 위임하며 함께 지탱하면서 조직을 이끌어 가는가. 애초에 채용을 잘하는  가장 중요하겠지만 기대하며 채용했다면 일단이들을 최대한 신뢰하고  활용하는 것도 CEO 역량이고 조직의 깜냥이다. (참고: 스타트업이 시니어를  활용하려면) 아무리 CEO만큼 조직을 생각하고 탁월한 사람이 없을지는 모른다 해도 말이다.


이쯤 되면 CEO의 역할은 마이크로 매니징에서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리더십이 오큘러스와 같지 않을까 한다. 외부의 변화를 햇빛의 움직임처럼 조직 내에 잘 전달해내는 것, 보여주고 싶은 비전이나 메시지를 구성원 모두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 시시각각 이동하고 변하는 빛의 위치나 모습처럼 상부의 생각이나 의사결정의 변화를 모두가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것, 내부의 열기와 열망을 모아 한 방향을 향하게 하는 것 등등. 더 크고 더 단단한 키스톤이 되어 그 자리를 막고 있기보다는 이전의 역할에서 한켠을 비워 주변의 리더십으로 조직을 더 공고히 하고 역할을 전환하는 것으로. Bottom-up을 강조하지만 연기가 구멍이 있기에 위로 향하듯 공간이 있어야만 내부에서 폭발하지 않고 원활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신전 내의 온도와 열망, 그리고 그 모습은 곧 조직문화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폭우는 기업을, 또는 조직을 향하는 시련이나 갈등으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조직의 열기가 뜨겁고 강할수록, 강한 조직문화를 가질수록 빗줄기를 밀어내듯 조직을 우리 스스로 지켜내고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 단단해지는 것과도 같지 않겠나.


그럼에도 폭우가 들이칠 때를 대비해 바닥 곳곳에 있는 배수구처럼 조직엔 리더십뿐만 아니라 구성원단에서도, 구조 차원에서도 갈등과 문제해결의 방안과 채널이 마련되어 있어야 할 거다. 그리고 그 채널이나 방식이 위화감을 발생시키는 부자연스러운 것이어서는 안 되고 우리 조직 고유의 색깔을 드러낸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담겨 있어야 하고. 이때 중요한 역할이 HR일 수도 있겠다. 빛의 형태와 색을 좀 더 선명히 해주는 것, 그 의미를 정제하고 또렷이 해 잘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 미리 배수구를 뚫어 두는 것, 내부의 온도와 기운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 등을 리더십은 물론 구성원들과 함께 잘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설계하고 지원하는 것 말이다.




"그래, CEO의 리더십에도 룸이 필요하지"..로 시작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무슨 영상보다 말고 이렇게까지 의미를 갖다 붙여대는가 하며 자신에게 혀를 차고 있다. 하지만 조직을, 리더십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와 연결시켰을 때 재밌지 않나,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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