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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병아리와 손목

어릴 적 이층 양옥집에 살 때였다. 내게는 병아리 한 마리가 있었다. 이상하게 털이 많아 눈은 대개 덮여 있었다. 아버지는 눈 보이지 않는 동물이 무섭고 재수 없다며 갖다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런 냉대를 꿋꿋이 버티어냈다. 

 병아리는 무척이나 나를 사랑했다. 밤에 이불을 덮은 채로 괜한 생각에 빠져들어 있을 때면, 병아리는 이불 속으로 들어와 목까지 슬금슬금 다가왔다. 병아리가 무게감 없는 머리를 목울대 근처에 누이면 봄바람이 숨을 쉬는 듯 했다. 나는 그것을 노란 감촉이라 불렀다. 나는 늘 병아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병아리의 이름은 병아리였다. 나는 달리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하나의 개체로 보지도 않은 전체 종을 규정해버리는 이 못된 버릇은 평생을 갔다. 나는 나중에 평생 동안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병에 시달렸다. 


1층 주인집 마당의 작은 화단의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서 이주쯤이 지난 뒤였다. 이상한 느낌에 새벽에 깨었을 때 병아리가 보이지 않았다. 늘 아침에 눈을 뜨면, 병아리는 늘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자는 내내 나를 훔쳐보던 새끼 태양 같았다. 병아리가 내게 온 뒤로 아침에 제 모습을 감춘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애간장이 타기 시작했다. 설마 몸을 뒤척이다 병아리를 깔아뭉갠 것은 아닐까? 나는 불안하면서도 뭔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불 모서리 끝을 잡고 천천히 들어보았지만, 병아리는 없었다. 배가 고파 먼저 밥이라도 먹으러 간 것일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일어났으니, 그럴 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실에도 아직 꿈 속에 빠져있는 부모님의 침실에도 병아리는 없었다. 평소에 금기시 돼있는 죽은 여동생의 방문도 열어보았지만, 새파란 새벽의 어둠뿐 병아리의 귀여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샅샅이 뒤져보고, 집 주변의 고양이들에게도 물어보았다. 물론 그들은 인간인 내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찬란하게 밝아오는 아침 해를 배경으로 전봇대를 짚고 울었다. 어린 내 키보다 몇 배나 높은 전봇대만큼의 긴 울음이었다. 병아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부터 나는 노란색만 보면 슬퍼졌다. 해만 봐도 슬펐다. 가장 슬픈 때는 환한 봄에 개나리들이 무더기 무더기 피어있는 것을 볼 때였다.


내 운명의 사랑,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였다. 노란 스웨터를 입고 그녀는 나타났다. 우리의 마음은 서로 통했던 것인지 우리는 교정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와 카페라떼를 마시며 ‘그녀’에 대해 얘기했다. 마침 석양이 질 때였다. 그녀는 약속이 있다며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벌써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며 나무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작별을 고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마지막 웃음일지도 몰랐다. 나도 모르게 따라 일어나, 뒤돌아서기 직전의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어릴 적 병아리 생각이 나며 눈물이 흘렀다. 그때였다. 내 손목에서 병아리가 솟아나오더니 그녀의 팔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병아리는 여전히 귀여운 몸을 문득 돌리더니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자라고 싶지 않았어. 왜냐하면 너는 병아리인 나를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숨어야 했고, 이왕이면 네가 가장 사랑하는 곳에 숨어있고 싶었어. 그리고 이제 네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 저곳이 됐으니, 난 저곳에 있게 될 거야.”


병아리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가슴 쪽을 흘끗하더니 그녀의 손목까지 걸어가, 그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다시 내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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