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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 나름 선생님 Oct 26. 2022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완벽한 분석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분석이 완벽하게 끝난 것은 2016년 1월이었다. 한 달 전인 2015년 12월에는 인간복제 기술이 완성됐었다. 완벽하다거나 완성됐다고 하는 것은, 그것으로 결과물까지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선악에 대한 논쟁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나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를 참고하는 게 낫다. 오히려 고민만 더 키우게 되겠지만.

 분석 결과는 인간이 외로움을 벗어나려면 쌍둥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자에게는 남자 쌍둥이가 필요하고, 남자에게는 여자 쌍둥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쌍둥이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야 했는데, 한쪽은 선한 매력이 있어야 했고 다른 한쪽은 악한 매력이 있어야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쪽은 철은 없으나 꿈은 많은 10대 같아야 하고, 다른 한쪽은 마음이 넓고 세상살이에 대한 원숙한 엄마 아빠 같아야 했다. 


내가 미희를 만난 것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완벽한 분석이 끝난 1년 뒤인, 2017년 1월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분명히 사랑했지만, 그 사랑 때문에 나는 오히려 인간의 불가피한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또한 미희는 가끔 나를 믿지 못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나를 왜 믿지 못하는지, 나는 매번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사회에 나와 번 돈을 모두 나를 복제하는데 쓰기로 결심했다. 법적으로 자신이 자신을 복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을 복제해달라고 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복제의 시대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순 없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신만 침해할 권리를 지녔다.  다만 복제 기술은 외모는 똑같게 만들 수 있지만 성격까지는 똑같이 만들지 못했다. 똑같은 성격을 만드는 것은 현재 기술로도 아니 미래에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얘기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과학자들의 그런 말은 믿지 않았다. 유사 이래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결국 모두 현실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복제된 나를 미희에게 선물로 주었다. 나는 내 외로움도 싫었지만, 나로 인해 그녀가 느낄 외로움이란 더더욱 싫었다.


처음에 몇 번 우리 셋은 함께 만났었다. 정확하게 말하며 나 두 명과 미희 한 명이 만난 것이다. 나는 또 다른 나를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그 녀석은 나보다 헤어와 패션 스타일이 좋았고, 농담도 잘 했다. 그리고 인간의 얼굴에서 눈빛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난 녀석을 보고 깨달았다. 우리의 눈은 똑같이 동그랗고 눈꼬리가 처진 편이었지만, 녀석의 눈은 나만큼 차갑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먼 별빛처럼 빛나는 데가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복제 인간들에 대해 원판 인간들이 간섭할 권리는 없었다. 다만 최소 1년 동안 생활비를 지원해야 하는 의무만 있었다. 복제 인간들은 도시마다 있는 시설에서 최대 3년 동안 지낼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시설에서 나와 스스로 살아가야 했다. 복제인간의 노숙자화에 대한 우려도 많았지만, 결국 그들도 인간이었다. 잘난 인간도 있었고 못난 인간도 있었다.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나의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을 처음부터 말렸었다. 가장 알쏭달쏭한 반응을 보인 것은 부모님이었다. 복제된 나를 어느 정도는 나의 스패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 가장 많이 반대를 한 것은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미희가 남자를 좋아하는 편이라, 아무리 잘 돼도 나에 대한 관심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나는 둘이 될 테니 말이다.

 미희를 보지 못한지가 한 달째가 돼갈 때, 나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들이 못 됐다고 한 그녀이지만, 난 그녀를 너무 사랑했다. 나는 실례인 줄 알면서도 홍은동에 있는 미희의 집 벨을 눌렀다. 보통 사람들이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미희의 어머니는 내가 온 것을 보고 무척 당황했다. 

어머님이 당황한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식탁에서 또 다른 나의 양 옆으로 두 명의 미희가 앉아있었다. 두 명 모두 똑같은 표정과 손동작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둘 줄에 누가 내가 알던 미희였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를 보고 당황한 쪽이 원판 미희였다. 

 헌데 나는 이상하게도 좀 더 차분해 보이는 복제인간 미희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과학기술원에서는 약 1만 개의 구조화된 기억 틀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의 틀이지 구체적인 기억은 아니었다. 그 정도 기억의 틀이면 충분했다. 똑같은 기억의 틀을 받은 복제인간들이라 해도, 하루만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면 금세 다른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미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누구도 내게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새로운 미희의 건너편에 앉았다. 미희는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말했다. 옵션으로 영어를 택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바다 같았고, 한쪽 눈엔 태양에 다른 쪽 눈엔 달이 떠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는 새로운 미희에게 첫눈에 반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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