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평생 읽어갈 책 한 권을 고를 나이가 되었다. 광화문 서점에는 나에 대한 책이 없었다. 나를 기술해놓은 책은 전라남도 해남에서도 100km쯤 떨어진 섬에 있었다. 한때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골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능하면 먼 곳에 자신의 책을 비치해두는 것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책이 해남의 섬에 있는 것은 그보다는 낭만적인 이유에서였다.
20대 초반에 혼자 완행열차를 타고 남쪽 지방을 유랑한 적이 있었다. 밤, 흔히 인간이 잠을 잘 시간에는 기차를 타곤 했다. 밤은 바닥부터 오고 아침은 하늘에서부터 왔다. 빛은 위에서부터 뿌려지고 거두어지기 때문이다. 빛의 법칙 때문에 아침이면 늘 피곤했다.
나는 그날 아침에도 기차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표는 늘 가장 먼 곳을 끊어두었다. 기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은데, 고작 표에 적힌 종착역 이름 때문에 내려야 하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박스를 들고 기차에 오르는 것이 보였다. 박스에는 생선들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소녀의 얼굴은 조금 피곤해 보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은 소녀를 위해 온통 측은해졌다. 소녀의 얼굴과 내 얼굴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온 얼굴로 마주섰다. 그 순간만큼 나는 누구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아주 막연하게 기억나는 꿈 같은 느낌으로, 섬에 사는 여자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유는 없지만, 나는 소녀가 섬에서 산다고 마음 속에서 결론을 내버렸던 것이다.
서점에 사람들은 많았다. 오랫동안 조금씩 내린 비 때문인지 사람들 한 손에는 모두 우산이 들려 있었다. 신간들은 그 사이에 쏟아져 나와있었다. 나는 애초의 생각대로 신간들을 모두 무시하고 ‘인물’ 코너로 갔다. 인물 코너는 종이책들이 쌓여있는 다른 코너들과 달리 일종의 컴퓨터실이었다. 늘 그렇듯 나는 한 시간 정도 줄을 서 기다린 끝에 입장할 수 있었다. 삼천 대의 컴퓨터 앞의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빨려 들어갈 듯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는데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 나이 서른넷이 된 요즘에는 외로움의 기복이 부쩍 심해졌다. 외로운 날은 아주 외롭다가도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은 날엔 왜 평생 읽을 오직 한 권의 책을 골라야 하는지 이해 불가할 때도 있었다. 광화문 서점에는 가장 많은 인물 책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2백만 명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주민등록번호로 로그인을 하자 책 표지들이 흘러 지나갔다. 책 표지에는 사람 얼굴만이 있었고 나이를 비롯한 책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었다. 클릭을 해 다음 책으로 빨리 넘어갈 수는 있지만, 한 권의 책 표지를 1분을 초과해 볼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소개된 사람들은 아직 평생의 책 한 권을 고르지 않았거나 못한 자들이었다. 19세를 넘은 소녀도 있었고 환갑에 가까운 할머니도 모니터 화면을 지나다녔다.
제한시간 30분이 끝나갈 때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아차 하며 입으로 손을 막았다. 십 년 전의, 남해 기차에서의 그 소녀가 모니터에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일 분이 채 남지 않은 시간에 쫓기며 그 책을 골랐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나는 그 책만 볼 수 있었다. 물론 문학이나 정치니 하는 다른 분야의 책들은 돈만 있다면 사볼 수 있었지만, 인물에 대한 책은 최대 한 달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그 사람에게 “내가 당신의 책을 평생 봐도 좋겠습니까?”라고 요청을 하고 허락을 받으면 그 사람에 대한 책을 평생 동안 볼 수 있었다. 보통의 경우 이것은 청혼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기록된 책을 결혼할 사람이 아니더라도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손바닥 크기의 전자책 기기를 펼쳤다. 정부에서 한 권씩 배포하는 그 기기는 다이어리처럼 접는 식으로 돼있었다. 소녀에 대한 책은 예상대로 두께가 얇았다. 전자책으로 보는 것이지만 두께가 두껍다, 얇다란 표현은 계속 쓰였다. 인물에 대한 책은 그 인생을 사는 본인이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아는 다른 누군가가 썼다. 어떤 내용과 길이와 문체로 하든 쓰는 사람 뜻대로였지만,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는 것도 한 달에 한 번만 가능했다. 그 글들은 데이터센터에 모여져 인물 책은 자동으로 업데이트되었다. 단, 누가 썼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책을 자신은 볼 수 없었다.
나는 소녀의 이름을 알고 싶었지만 희한하게도 소녀의 이름은 페이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소녀는 계속 내게서 미끄러져 어디론가 도망가는 기분이었다. 책은 121페이지의 두께였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38페이지부터 57페이지까지였다. 책 중에서 유일하게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맞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새끼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왜 하필 새끼손톱을 물어뜯냐고 물었을 때, 다른 손가락을 물어뜯으면 너무 티 나서 그렇다고 답했다. 난 다시 그러면 왜 손톱을 물어뜯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 별 고민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에 왜 물어뜯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아직 엄마가 살아있을 때 내게 말하길, 넌 다 커서도 손톱을 물어뜯니 라고 말한 적이 있어. 그래서 난 다시 손톱을 물어뜯는 거야.
그녀는 뒷목을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럴 때면 그녀의 눈은 고양이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나른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고양이면서도 생선을 싫어했다.
그녀는 이상하게 일요일 아침이면 꼭 대중목욕탕을 갔다. 그리고 나는 같이 가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나는 그녀가 나올 때쯤 꼭 목욕탕 앞에서 빨대 꽂은 요구르트를 들고 기다려야 했다. 그것 말고 그녀가 내게 바라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맞춰졌다. 마치 그녀는 내 머릿속 상상의 세계 속에 사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바를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모두 맞춰줬다. 마치 나를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녀는 머리를 비누로 감았다. 알로에 비누 아니면 오이 비누였는데, 나는 그 냄새를 그 어떤 것보다 사랑했다.
38페이지부터 57페이지까지의 글은 모두 위와 같은 식이었다. 나는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 자꾸만 홈 버튼을 눌러 그녀의 얼굴이 있는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내가 한 번 봤던 그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녀에 대한 글을 더 읽고 싶었지만, 한 시간 반 만에 아쉽게도 난 모두 읽고 말았다. 그녀에 대해서는 2008년 7월까지 기록돼 있었는데, 그 후로는 그녀에 대해 누구도 글을 쓰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기막힌 우연이 아니고서야 그녀를 만날 방법은 없었다. 만약 그녀가 “제가 당신을 기록하고 추억한 책을 평생 동안 읽어도 되냐”라고 물어 설마 승낙을 받는다 해도, 그녀와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은 연인이나 결혼할 사람들끼리, 현실의 관계를 맺은 다음에 평생의 책을 서로에게 허락했다.
며칠 고민한 끝에 나는 그녀의 책에 내 글을 쓰기로 했다. 20대 초반에 있었던 방황에 대해서였다. 나는 장 그르니에가 『섬』에서 말한 이 말을 잊지 않으며 글을 쓸 작정이었다.
이처럼 박학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든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라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다……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의 대상을 정하여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 르낭은 아침마다 히브리어 사전을 열심히 읽곤 함으로써 삶의 위안을 얻었다.
아마 난 이름 모를 그녀에게 평생의 책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그것은 그녀와 상관없는, 내 어린 시절에 대한 보잘것없는 나만의 추억에 불과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