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년을 몰래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했는데 싱겁게 여자는 ‘나의 접근’을 승낙했다. 그 과정이 너무 쉬워서 오히려 나는 풀이 죽어버렸다. 그렇게 사랑을 쟁취한 다음날이었다. 나는 두 정거장 전에 내려 집에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양화대교로 넘어가기 직전에는 모텔이 있었다. 들어가는 사람도 나오는 사람도 본 적 없지만, 십 년째 굳건한 것을 보면 모텔 안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있음이 분명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모텔 앞을 지나칠 때, 거리의 고양이 한 마리가 사람의 허리보다 조금 높은 화단 위로 뛰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내 몸은 자연스럽게 속도 계산을 하며, 내 걸음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지 않으면서 고양이를 피하려 했다. 헌데 아뿔싸, 고양이와 나는 부딪히고 말았다. 고양이는 좁은 화단으로의 점프를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고양이라면 으레 그 정도 높이의 점프에는 성공할 줄 내 머리 아닌 몸마저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벅지에 고양이가 닿는 느낌은 썩 나쁘지 않았다. 불과 한 시간 전 사랑하는 여자와 입맞춤을 한 뒤라 내 마음은 퍽 너그러워져 있었고 스킨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달관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계속 앞쪽으로 걸어가며 뒤돌아보니 고양이는 그보다 한 계단 낮은 화단의 담벼락을 향해 점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방금 전보다 더 낮은 담벼락을 향해 점프했다. 그것이 가장 낮은 담벼락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고, 고양이는 부끄러움에서 도망치듯 모텔 입구로 뛰어갔다. 그리고 360도로 주위를 살피며 자신이 방금 한 짓을 누가 본 것은 아닌지, 허공을 감시했다. 그때 고양이와 나는 눈이 딱 마주쳤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고양이가 점프 연습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혼자 살지만 방이 네 개 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방 하나를 빼곤 다른 모든 방엔 책상이 있었는데, 그 책상들마다 고양이 발톱 자국이 나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높은 문지방에 올라가기도 하고, 냉장고 위에서도 갑자기 점프해 내려오기 일쑤라고 하던데, 그런 건 정말 먼 나라 고양이 얘기였다. 고양이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싫어했다. 분명 무서워하는 듯 했지만, 나는 고양이를 위해 싫어한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녀석은 내 앞에서는 절대 어떤 식으로든 점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녀석은 처음엔 애교 전략을 펼쳤다. 마치 개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발등에 뺨을 비비고 문득 배를 보이며 등으로 헤엄을 치기도 했다. 어디서 본 것은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무심한 반응은 녀석에게 난공불락, 속수무책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나는 녀석의 뒷덜미와 목과 가슴 사이의 보드라운 털을 만져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고양이의 눈빛을 통해, 녀석이 얼마나 내 눈치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나는 녀석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시크하게 나를 신경 쓰지 말고, 제 살고 싶은 대로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출근하기 전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늘 창문을 조금 열고 나갔다. 도둑이 들어오는 것은 싫었지만 녀석이 언제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설령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존재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게 가장 좋았다. 내가 녀석을 언제든 떠나 보낼 준비를 하는 것도, 그래서 아직까지 이름을 붙여주지도 않고 녀석과 고양이란 대명사로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존심이 있는 고양이라면 거지 같은 놈이 함부로 이름을 붙이는 것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를 합정의 모텔 앞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녀석의 실패를 봤고 그것을 녀석도 알았다. 고양이는 내가 자신과 함께 사는 이유를 어쩌면 털이 부드러워서 아니면 검은 색과 흰 색이 어우러진 몸의 빛깔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자기 스스로 다른 고양이에 비해 ‘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겁도 많고 점프력도 없는 녀석은 분명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열등한 것은 맞으나, 내 볼 때는 삶에 있어서 그런 차이는 거의 무의미했다. 헌데도 녀석은 거기에 끊임없이 신경을 썼고, 녀석의 인생은 그 콤플렉스의 리듬들 타고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일찍 출근해 자정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고, 매 주말에는 여자친구 집 근처로 갔다. 내 사는 곳은 인천 남동구이고 여자친구 집은 남양주의 별내였다. 결국 난 죽을 때까지 운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자가용까지 구입해 여자친구를 늘 태우고 다녔다. 지금보다 젊을 적에 교통사고로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친구 하나가 죽었었다. 그때 운전은 내가 했었다. 그럼에도 내가 자동차를 산 것은, 여자친구를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밖에 없었다.
가을이 한창이 되었을 때, 나는 고양이를 처음으로 끌어안았다. 녀석은 나를 안아주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래도 누가 보면 내가 녀석을 안고 있는 줄 알았지만, 실은 녀석이 날 안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누구에게라도 안기고 싶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았다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란 말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고양이를 끌어안고 울어보지 않았으면 사랑을 논하지 말라’라고 하고 싶다. 알고 보니 여자친구, 아니 그 여자는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다. 나와 너무 연애가 잘 돼가자 겁이 났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결혼해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짝사랑하던 그 남자에게 고백을 했는데, 그 남자는 받아주었다고 한다.
고양이를 끌어안은 다음날, 나는 연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쯤에야 나는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힘 없이 여기저기를 찾기 시작하다가 계속 보이지 않자 나는 점점 빠른 속도로 고양이를 부르며 찾기 시작했다. 집 안 어디에서도 ‘야옹’ 하는 고양이의 울음이 들리지 않았다. 항상 열어놓던 창가에 전에 없던 ‘움켜쥠’의 흔적이 보였다. 창틀에 깊이 패인 저 세 개의 틈인, 고양이가 발톱이 꾹 누른 자국이 분명했다.
녀석은 이곳에 앉아 무슨 갈등을 그리 많이 한 것일까. 가능한 결론은 녀석이 마침내 이곳을 떠났다는 것이다. 언제 떠난 것일까, 내가 녀석을 처음으로 끌어안았던 목요일에 아니면 이튿날인 금요일에, 아니면 토요일에.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해도 다쳤을 리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1층이었고 바깥은 바로 푹신한 풀이 깔린 화단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말에 지상 주차장에서 몇 사람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거나 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중년의 사내들은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고 엄마들은 잔인한 영화를 보는 듯 회피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느 차는 주차를 잠시 중단하고 어쩌 보면 별 것도 아닌 그 광경의 결말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관리인 아저씨는 분리 수거할 때 쓰는 기다란 집게를 들고 우리 집 바로 바깥의 화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을 처음 발견한 아이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손가락으로 화단 수풀 아래 어딘가를 계속 가리키고 있었다. 늙수그레한 관리인 아저씨는 수풀 속으로 기다란 집게를 넣었다. 집게는 몇 번 수풀을 뒤적였고 곧 집게 사이에는 죽은 고양이가 들어올려졌다. 허공까지 고양이가 떠올랐을 때, 그의 입에서 리본 모양의 머리핀이 툭 떨어졌다. 나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그 머리핀을 했을 때 너무 예뻐서 거의 뺏다시피 해 내 것으로 만들었었다. 계속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던 아이가 말했다.
“저 검은 고양이, 며칠 전부터 계속 여기에 앉아서 저 창문 쳐다보고 있었어.”
사람들은 죽은 고양이를 깃발처럼 앞세우고 한 무리로 뒤따라갔다. 고양이는 그 무엇인가를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