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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Aug 03. 2024

삶의 무의미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산 책_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한 여자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우주는 혼돈이고 인간은 엔트로피 법칙¹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죠. 그래서 삶은 무의미한 것이고 너도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저자인 룰루 밀러는 아버지의 입버릇 같은 말 때문이었는지 성장하면서 점점 수렁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남자애들은 밀러를 7이라 부르죠. 럭키 7이 아니라,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에게 붙이는 숫자의 의미는 잔인하게도 저 애와 자기 위해 마셔야 할 맥주 캔의 수였습니다.


   인간관계도 학교 생활도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저자는 대학에 진학하고 구원자처럼 좋은 남자친구를 만납니다. 안식처와 같은 그 남자친구와 함께 대학을 졸업하고 밀러는 방송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 한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이 안식처와 같았던 사람을 7년만에 잃게 되죠. 저자는 다시 깊은 우울과 자살 충동에 시달립니다. 그러면서도 엔트로피에서 벗어날 수 없다던 아빠의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끈질기게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찾아낸 이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생물학자였죠.


나의 희망을 꺾는 침묵이 점점 더 강력하게 내 귓가를 울려대는 동안, 열역학 제2법칙은 그 가늠할 수 없는 꼬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내 주의를 끌었던 이유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가 우연히 어떤 비법을, 무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처방을 발견한 게 아닐까 궁금했다.


   저자는 과학 전문 기자로서, 삶의 무의미를 극복하고 싶은 한 인간으로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추적해 갑니다. 그가 분류학자였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눈에 분류학자는 무질서해 보이는 생물의 계통을 연구하고 분류하여 이름을 붙이는, 즉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토록 끈질지게 연구할 수 있도록 밀고 나가는 힘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죠.


   그를 취재하면서 저자는 데이비드에게 때로 경탄하고 공감하지만, 점차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 그에게 실망하거나 그를 혐오하게 되기도 하죠. 이 과정이 마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절망에 빠진 기자와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생물학자, 두 사람의 삶은 다른 듯 닮아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취재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 철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생각을 전개해 갑니다. 그 결과 밀러는 과연 삶의 무의미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이틀 동안 책의 70% 정도를 읽었는데 정말 흡인력이 강한 책이어서 일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였습니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문득 문득 회의가 드는 분, 우울감을 느끼는 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 분 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책 정보: 룰루 밀러 글, 정지인 번역, 곰출판, 2021년 12월 17일 출간, 정가 17,000원


[예스리커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예스24 (yes24.com)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알라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aladin.co.kr)


미주

¹ 엔트로피 법칙: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바뀌며, 질서화한 것에서 무질서화한 것으로 변화한다는 열역학 제이 법칙. 이는 곧 우주 전체의 에너지양은 일정한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 가능한 에너지양은 점차 줄어드는 지구의 물리적 한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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