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게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거라고 그리게 되는 후배가 있다. 후배라는 말보다는 동생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10살이나 아래지만 언제나 말이 잘 통하고 아무에게도 섣부르게 말 못 하는 고민을 터놓는 사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야..'라는 표현으로 많은 상황을 간단히 서로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 닮아 있다.
그런 후배가 올해는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혹시 지금 통화할 수 있냐고 어느 날 밤 연락이 온 뒤로 상황은 좀처럼 좋아지고 있지 않다. 내가 오래전 겪었던 일과도 비슷해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런 건 몰라도 좋은 일인데..' 후배가 경험하게 된 불운 앞에서 나도 모르는 한탄이 나왔다. 그 뒤로 쉽사리 해결될 일도 아니었지만 그동안 연락이 없어서 마음 불편한 일이 더 생기지는 않고 있구나 했었다.
복직을 앞둔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해야 되는 사람들인데 원인도 결과도 과정도 분명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더라도 마음이 납득이 안 되는 그런 상황.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져 가슴이 뻐근해졌다. 연락하지 그랬냐는 말에 말해봐도 우울할 거라서 연락을 안 했다고 했다. 내가 아는 후배의 성격으로 봐서는 나한테까지 더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분명했다.
상황이 좋아졌으면 하고 바라던 마음과 달리 후배 앞의 문제들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후배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니라 여러 상황과 사람들이 얽혀서 어느 매듭부터 풀어내야 하는지 나 역시 판단이 안 됐다. 상황이 내가 겪었던 상황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다소 현실적인 조언도 하게 되지만 무조건 나는 후배가 마음이 편해지기만을 바랬다. 이런저런 걱정을 이야기하고 허기진 배가 채워지자 후배가 내게 물었다.
"언니는 어떻게 그 시절을 버텼어요?"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잖아. 아들 잘 키워야지."
"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게 진짜 대단해요."
후배의 처진 어깨와 근심 어린 순한 눈빛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만남이었지만 섣부르게 위로는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섣부른 처방이나 조언보다는 터놓고 말할 수 있고 마음의 허기를 달래줄 식사 한 끼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후배였는데 답답한 상황이 수개월째 길어지면서 나름 단단해지고 있었다. 책으로 도피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면서 책 읽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고 새벽같이 일어나 동네 산책과 달리기도 하고 있다고 했다. 후배는 어떻게 그 시절을 견디었냐 물었지만 후배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차를 한잔 마시니 후배가 물었던 질문이 다시 생각나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진짜 너 어떻게 버텼니?'
어떻게 버티려고 한 방법은 사실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받아들였고,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이와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유달리 웃음이 많은 아이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만 애썼다. 함께 책을 읽고 잠들기, 아이와 놀이터 산책하기, 편의점 데이트 하기, 맛있는 간식 만들기와 같은 소소한 일상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꽤 오래된 그 시절을 돌이켜보니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나를 살린 것 일지도 모른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사람들의 생명력은 악착같은 면이 있지 않은가.
다시 힘들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이유로 똑같이 힘들 것을 잘 알지만 적어도 이제는 모든 일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보통사람이기에 불운 속에서 춤을 출수는 없더라도 그래도 비에 젖지 않으려고 나 스스로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빗길에 넘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매일이 쌓여 가다 보면 힘든 일들도 조용히 가라앉게 될 거라는 '끝'이라는 희망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