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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10. 2022

너는 이런 아이다

13살 지구인 이야기(13)

의도한 적은 없으나 나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나 일에 빠져있을 때는 머리카락을 빙빙 꼬거나, 긁적이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 거울을 보면 긴 머리는 어딘가 뜨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별생각 없이 쓰윽쓰윽 손으로 쓸어내고는 다.

 

어젯밤, 급하게 해야 될 있어 오랜만에 집에서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200페이지 두꺼운 출력물을 앞에 두고 이틀짜리 행사 진행 계획을 세워야 했기에 오래간만에 미간마저 찌푸려진다.

"엄마, 머리빗 어디 있어?

"어디 있을걸? 찾아볼래?"

"없어."

'아... 머리빗아!' 일의 흐름이 끊길까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럴 때는 그냥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게 답이라는 걸 경험으로 안다. 

"여기 있다!" 아이에게 건네주고 자리에 급히 앉았다.

그런데 아이가 내 뒤로 오더니 내 머리카락을 갑자기 빗기 시작했다.

'내 머리카락을 빗어주려고 던 거야?' 너무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웃기만 한다.

"머리 여기가 삐죽삐죽 됐어."

"엄마 며칠 전에 파마했어. 풀리면 안 되니까 위에만 해!" 겸연쩍어 괜히 큰소리만 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알았어. 여기 위에만 할게!"

한참을 빗질하던 아이가 '아!' 외마디 외침을 한다.

"왜!"

"머리가 더 이상해졌어. 히히"

그렇게 아이는 몇 차례 내 머리를 머리빗으로 쓸어내리더니 멈추고는 일하라며 조용히 아이 방으로 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사랑과 관심이 어느 정도 일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흔히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으로 많이 이야기 하지만 내 경험치에서는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사랑이야 말로 그 깊이와 무게가 무겁다고 생각한다.

부족함 많은 엄마가 일에 빠져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아이가 보여준 오늘의 사랑과 관심이 얼마의 깊이와 무게 일지 헤아리니 코끝이 갑자기 시큰해졌다.

지친 하루의 끝. 아이의 사랑으로 나는 그 밤 가장 행복한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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