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직장인 열전 - 조선 인물들을 통해 배우는 직장인 처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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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에는 왕을 만든 신하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태조를 만든 정도전, 태종의 집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륜 등이 있고, 반정에 성공해 중종과 인조를 왕으로 옹립한 공신들도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정조를 왕으로 만든 홍국영이 있었다.
정조는 영조의 뒤를 이을 세손이었지만 그 지위는 매우 불안정했다. 아버지 영조와 노론에 척을 지다 뒤주 속에서 죽어간 사도세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사히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사도세자와 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던 할아버지 영조와, 노론이면서도 그의 편이 되어준 홍국영 두 사람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영조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 세손의 안정적인 권력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에 세손이 대신 정사를 볼 수 있도록 대리청정을 지시하지만 노론의 영수 홍인한의 강한 반대에 부딪친다. 세손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홍인한은 영조가 세상을 떠나면 세손을 대신해 다른 종친을 임금으로 추대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임금을 거역하다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영조의 의도와 달리 조정에서 세손을 지지해주는 신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때 홍국영이 목숨을 걸고 세손을 옹위하며 나선다. 노론의 반대파 소론 출신인 서명선을 끌어들여 홍인한의 의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게 한 것이다. 결국 영조는 서명선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홍국영이 주도한 결정적인 상소가 없었더라면 영조도 정조의 집권 기반을 만들기 위해 실시한 대리청정을 독단적으로 강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홍국영은 정조 즉위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홍국영이 하위 관리였던 때에 세손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는 일이 있었다. 하루는 영조가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온 세손에게 물었다.
“세손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네, 통감강목 넷째 권을 읽고 있습니다.”
세손은 대답과 동시에 자신이 실수했음을 바로 깨달았다. 거기에는 서자였던 영조가 싫어하는 구절인 ‘측실소생’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구절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보고 있었다는 말이더냐?”
영조는 화가 나서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이… 그 부분은 가려 놓고 읽지 않았습니다.”
세손은 엉겁결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래? 그럼 어디 확인해보도록 하자.”
영조는 바로 내시에게 지시하여 그 책을 가져오도록 했다. 세손의 거처에 들이닥치는 내시들을 본 홍국영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자신이 책을 찾아주겠다며 나섰고, 영조가 싫어하는 구절을 재빨리 종이로 가린 뒤 내주었다.
“그럼 그렇지. 과연 나의 손자로다.”
책을 본 영조는 흡족해했고 거짓말한 죄까지 더해 크게 혼날 뻔했던 세손은 홍국영의 기지로 위기를 무사히 넘긴다. 이 일을 계기로 정조는 홍국영을 매우 신임했고, 그의 최측근이 된 홍국영 또한 정조를 위해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게 된다.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홍국영의 세상이 열렸다. 정조는 그를 비서실장인 도승지와 경호실장인 금위대장에 동시 임명하였다. 암살의 위협을 받던 정조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신변보호를 맡긴 것이다. 이제 29세 에 불과한 그에게 대단한 실권을 손에 쥐어준 파격적인 대우였다.
정조는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홍국영의 목표는 정조와 같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권력이 강대해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그는 우선 당시 세력을 주름잡던 외척들을 축출했다. 그리고 사도세자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했던 소론을 차례로 제거해 나갔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속한 노론의 집권은 계속 이어가되, 그 수장은 자신이 되기 위한 속셈이었다.
그는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자신이 직접 외척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기로 마음먹고 여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인 것이다. 정조의 왕비인 효의왕후 김씨가 아직 아들을 낳지 못하고 있는 틈을 노려 자신의 여동생을 통해 세자를 갖고자 했으나 이 승부수는 실패하고 만다. 후궁이 된 여동생이 1년도 채 안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자 이성을 상실한 홍국영은 왕비가 여동생을 죽인 것 같다며 정조에게 모함을 하고 시녀들을 잡아들여 고문을 했다. 하지만 아무런 물증도 없이 왕비를 핍박한 것은 그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홍국영이 정조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 발생한다. 심복인 송덕상을 통해 아직 27세밖에 되지 않은 새파랗게 젊은 정조에게 양자를 들이라고 상소를 올린 것이다. 홍국영이 양자로 염두에 둔 인물은 사도세자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죽은 자기 여동생의 양자였다. 홍국영은 그렇게 해서라도 왕의 인척이 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이쯤 되면 대놓고 왕에 대한 권위를 무시한 것이다. 정조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홍국영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그를 관직에서 물러나도록 한다.
사실 홍국영은 조정을 떠나면서도 금방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의 세력을 조정 곳곳에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발판으로 정계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나 정조가 노론 중진인 김종수를 움직여 홍국영을 공격하자 대세가 바뀐 것을 알아차린 대신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말았다. 허망한 권력 앞에 홍국영은 버려졌고, 울분에 찬 그는 유배지 강릉에서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역사 속에는 하륜처럼 적당히 선을 잘 지켰던 처세의 달인이 있는 반면 홍국영처럼 잘 나가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바람에 인생이 꼬여버린 인물들도 많다. 홍국영은 정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되면서, 어느 순간 정조와 자신 사이에 놓여 있는 선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선’이라는 것은 내 생각대로 긋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는 거리를 잘 계산하고 그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순간 내 인식 속에서 그 선은 사라져 버리고, 상대방은 나에 대해 편안함이 아닌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하는 선이 있는데, 생판 모르는 남남이었다가 이해관계로 묶인 직장인간에 선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 다. 이 선을 지키기 위해 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사이가 바로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다.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하고 그를 평가할 권리가 있다. 일을 가르치고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상사는 취할 수 있는 합법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을 넘어갈 위험도 있다. 인격모독을 하거나 폭언을 하는 등 강압적인 방법이 동원된다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는 거리’를 넘어서는 것이다. 부하 직원은 상사의 꾸중을 들으며 반성하기보다는 상사의 행동이 선을 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반감만 커질 것이다. 부하 직원을 제대로 이끄는 것은 상사의 마땅한 책임이지만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그 책임을 수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상사의 인품과 실력에 달려있다.
마찬가지로 부하 직원도 상사와의 사이에 그어진 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리더는 고독한 자리다. 특히 중간관리자는 경영진과 직원 사이에 끼여서 양쪽의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그런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고 감정을 가진 직장인이라는 것을 인간적으로 이해해주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무엇보다 리더는 회사가 그 자리에 임명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 권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조선의 역대 왕들도 그들의 왕권이 갖는 권위만은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했다. 홍국영이 결국 쫓겨나게 된 것도 그 선을 넘어 왕의 권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상사가 곧 왕과 동일한 존재는 아니겠지만, 부하 직원도 상사의 권위가 상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를 흔히 ‘불가원불가근(不可遠不可近)’, 즉 멀 수도 가까울 수도 없는 관계라 한다. 서로 간에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서로를 얼마나 배려해야 할지, 또는 압박해야 할지 끊임없는 ‘밀당’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