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눈치를 잘 보는 것도 실력이다,
하륜 (1)

조선 직장인 열전 - 조선 인물들을 통해 배우는 직장인 처세법

by 신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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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의 대가, 하륜

제1, 2차 왕자의 난부터 시작하여 태종의 치세 기간은 왕권에 위협이 되는 그 어떤 인물도 남겨 놓지 않았던 숙청의 피바람이 불던 시기다. 그럼에도 하륜은 70세를 일기로 천세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어떤 처세 비법이 있었기에 정리해고 한 번 당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륜은 1347년(충목왕 3년) 진주에서 문신 하윤린의 아들로 태어났다. 향리 집안으로 대단한 명망가 출신은 아니었다. 하륜은 1365년 과거에 급제했는데 당시 권문세족의 대표 권력가였던 이인임의 형 이인복이 과거 시험 감독관이었다. 하륜을 눈여겨본 이인복은 그의 동생 이인미의 딸과 결혼하도록 중매를 섰고, 하륜은 그렇게 권세가의 인척이 된다. 신진사대부 세력이 기득권 세력이었던 권문세족과 주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에 비해 하륜은 신진사대부와 권문세족의 중간에서 노련한 처세술을 보인다. 이인임과의 친분을 꾸준히 유지함과 동시에 스승 이인복과 이색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신진사대부 출신 정몽주, 정도전과도 좋은 관계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인임과 인척 관계를 맺은 덕분에 그의 관직 생활은 대체로 순탄해 보였으나 이인임이 정계에서 물러났고, 결정적으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이후 점차 중앙권력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정몽주와 함께 고려 사수파였으나 정몽주의 죽음에 이어 고려까지 멸망하면서 완전히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결국 그는 낙향을 선택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도전이 휘두른 숙청의 칼날을 피할 수는 있었다. 정도전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이색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인 동문 선후배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숙청을 진행했다. 이색뿐만 아니라 이숭인, 권근, 이종학, 그리고 우현보와 그의 세 아들이 모조리 유배형에 처해졌고, 대부분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때 가족처럼 지냈던 동료들을 무자비하게 죽음으로 내몬 정도전의 모습에 하륜은 경악했고, 이제 그들이 다시 손잡는 것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사사건건 견제하는 선배, 정도전

정도전은 자신의 정적들을 철저히 배제하며 잔혹한 숙청을 단행했지만 새로운 왕조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도와줄 단 한 명의 인재라도 더 필요한 아쉬운 상황이었다. 이성계는 정도전에 의해 밀려나 있던 하륜과 권근에게 조선 왕조를 위해 일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고 마침내 그들은 출사를 결심한다.

사실 비명 속에 죽어간 스승 이색, 선배 정몽주, 그리고 수많은 동문들과의 의리를 생각하면 갈 수 없는 길이다. 특히 부모 형제 같은 스승과 동문들을 사지로 내몬 정도전이 그 조선 조정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럼에도 하륜은 조선에 출사하기로 결심한다. 권력을 빼앗아 정도전에게 복수하겠다는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가난한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그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권력욕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조선이라는 새 직장에 먼저 입사한 애증의 선배 정도전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수도를 옮기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륜은 뛰어난 풍수지리 실력을 드러내며 두각을 나타낸다.


“수도를 계룡산에 만들고 싶은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소?”

“저는 반대입니다. 수도는 반드시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남쪽에 치우쳐 있어서 동쪽, 서쪽, 북쪽과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제가 일찍이 아버지를 장사 지내면서 풍수지리 공부를 조금 한 바 있으나, 계룡산은 ‘물이 장생(長生)을 파(破)하여 쇠패(衰敗)가 곧 닥치는 땅’이므로 수도로서 적당하지 못합니다.”


하륜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계룡산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은 중단되고 새로운 후보지를 물색하게 된다. 하륜은 지금의 신촌 일대인 무악을 추천 하지만 너무 좁다는 이유로 정도전의 반대에 부딪친다. 결과적으로 하륜이 주장한 무악 천도는 채택되지 않았고 정도전의 주장대로 한양이 수도로 선정된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하륜은 태조의 신임을 받게 되었고, 정도전의 경계심은 점차 커지게 된다.

하륜이 정도전과 제대로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표전문(表箋文) 사건*이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이 조선의 외교문서가 불손하다며 심각한 외교 갈등을 야기한 것이다. 표문은 정탁과 정도전이 쓰고 교정했기에 명나라에서는 이 문제의 발단을 정도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그의 압송과 해명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명나라의 요구를 무작정 거스르기 어려웠던 태조는 대신 다른 신하들을 보냈지만 그중 일부는 돌아오지 못한 일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정도전은 움직이지 않는다. 도의적으로라도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전혀 관련도 없는 하륜을 사신으로 보내버리고 만다. 정도전을 제거할 기회로 본 하륜이 당사자인 정도전이 직접 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에게 오히려 보복을 당한 셈이었지만 하륜은 명나라 황제를 훌륭히 설득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이 사건으로 하륜의 명성은 올라간 반면 정도전에 대한 비난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도전은 공을 세우고 돌아온 하륜을 다시 지방으로 보내 버린다. 심지어 하륜과 전혀 상관없는 사건에 무리하게 엮어서 탄핵하려다 무고에 그친 일도 있었다. 정도전은 상사의 강력한 신임을 등에 업고 인사권까지 마음대로 휘두르던 창업공신 직장 선배였다. 하륜에 대한 선배 정도전의 견제와 괴롭힘은 집요하고 끈질겼다. 단순히 개인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권력투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륜은 섣불리 동요하거나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하륜의 못된 선배 대처법

직장 생활의 멘토가 될 만한 좋은 선배를 만났다면 그는 정말 행운아다. 마음씨 좋고 실력도 뛰어난 데다 후배에게 상냥하게 잘 가르쳐 주기까지 하는 선배를 만난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실상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사사건건 나를 괴롭히고 더 크지 못하도록 싹부터 밟아버리려는 못된 선배를 만날 수도 있다. 혹시라도 그런 선배를 만났는가? 안타깝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살아 있는 회사 내에서 함부로 대들고 덤벼드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다. 더구나 상사의 신임을 받고 있는 선배라면 더욱 그렇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어딜 가나 나와 안 맞는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정도전이라는 못된 선배를 둔 하륜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처음에는 정도전에 맞서 투쟁하는 방식을 택했다. 수도를 천도하는 과정에서 정도전과 다른 의견을 정면으로 내세웠고, 표전문 사건에서는 정도전에게 직접 문제를 해결하라며 몰아붙였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정도전으로부터 돌려받은 건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견제였다. 이후 하륜은 이방원과 손잡고 왕자의 난을 성공시킬 때까지 계속 지방으로만 떠돌아야 했다.

사실 견제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반증이다. 그 선배는 실력 있는 내가 자신을 앞서갈까 두려운 것이다. 일단 그 사실에서 위안을 얻자. 그리고 선배에 맞서 투쟁하기보다는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자. 분명히 기회는 올 것이다. 내가 상사의 눈에 더 띌 수도 있고, 또는 상사가 바뀌고 그가 나의 실력을 인정해줄 수도 있다. 마치 하륜이 새로운 상사 이방원을 만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정도전에게 미움받던 하륜을 보라. 그는 전략을 바꾸었다. 표전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잔뜩 화가 난 명나라 황제에게 가야 하는 사신이 되어 억울한 발걸음을 옮겨야 했을 때, 그는 순순히 받아들이고 떠난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그 길을 말이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멋지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다. 다시 지방직 관리로 떠나야 했지만 그는 화를 내거나 반발하지 않았다. 정도전을 앞서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륜을 집요하게 견제하는 정도전의 얼굴에서 초조함이 읽히기 시작했다. 하륜은 시간을 본인 편으로 삼고, 때가 올 것을 기다리며 인내했다. (계속)


* 표전문은 제후국이 황제국에 보내는 일종의 외교문서로, 황제에게 바치는 표문과 황태자에게 바치는 전문이 있었다. 당시 문제가 된 표전문의 문구가 지금은 전해지지 않아 어떤 표현이 불경했다고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명나라 황제 주원장은 사소한 문구 하나를 트집 잡아 자신의 신하를 처형한 전력도 있었던 만큼 억지 주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원장이 조선의 표전문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조선의 실력자인 정도전을 견제하고 조선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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