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상적인 일상과 일상적인 비일상
학교에 가든, 학원에 가든, 결국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 좀 웃긴 이야기를 하면 같이 웃고, 내게 칭찬을 해주면 감사 인사를 하고, 나를 격려하면 씩씩한 척이라도 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남은 에너지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학교보다는 학원에 먼저 복귀했다. 주말에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했다. 그때 당시에도 내 행동이 참 답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 돌아봐도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학원 선생님이 뭐라고 말을 거셔도 텅 빈 눈으로 고개만 끄덕이거나 저었다.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웃을 기운조차 없었다.
나흘 간의 휴식을 마치고 학교에 복귀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등교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학교에 가는 건 여전히 숨이 턱 막히는 일이었지만 더는 학교를 빠질 수 없었다. 모범생 이미지에 대한 내 집착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는 안 좋은 쪽으로 새로웠다. 밀린 수행평가와 발표, 그리고 선생님의 질문 탓에 당장이라도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학교를 며칠 쉬었더니 그새 학교 밖의 비일상에 적응한 모양이었다. 학교로 복귀한 이후에도 계속 교문 밖으로 시선이 향했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시선만 자꾸 교문 밖으로 도망쳤다. 모범생 이미지에 집착할 때는 언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쉬고만 싶었다. 일과가 끝나자마자 야자를 빼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가서 하는 거라고는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하는 것뿐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었고,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학교가 싫었다. 학교에는 학원에서보다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아서 더욱 싫었다. 나흘이나 학교를 빠진 데에 대한 업보인 것인지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게 온갖 것들을 질문하셨고 나는 그 모든 것들에 대답해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그 질문들이 전부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아서 더욱 힘들었다. 나를 위한 질문들을 싫어하는 나를 보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올라왔다.
학교만 싫어진 게 아니라 정신과 진료에도 점점 싫증이 났다. 대기하는 시간은 지긋지긋했고 의사 선생님의 늘 똑같은 응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나를 위해 이렇게나 애쓰고 계시는데 왜 나는 점점 엇나가려고 하는 건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마음대로 단약을 하거나 병원에 가기를 거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젠가 저지를지도 모르는 행동들이 두려웠다.
낮에는 우울감에 눌려 잠만 잤고 밤에는 뭐든 잘될 것 같다는 기분 탓에 자기가 싫었다. 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안 잘 수는 없었기에 너무 고통스러웠다. ADHD 약을 먹지 않고 1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몸부림쳤다. 몸부림이라도 치지 않으면 답답해서 쓰러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