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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면 May 19. 2024

05. 전원(Transfer) (1)

2022/11/00


“엄마가 다니던 대학 병원으로 옮기고 싶어요.”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2주간 있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면담에서 만난 의사는 신장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워낙 엄마가 앓는 기저질환이 많아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하는 말이란 걸 몰랐던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소란한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이대로 엄마를 보내야 한다고? 아냐,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야.

내가 떠올린 건 상급 병원으로의 전원이었다. 왜 이제야 그 생각이 들었을까. 2주간 대체 뭘 믿고 여기에 엄마를 내버려 뒀던 걸까.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겠단 생각에 다시 의사를 만나 내 의견을 말했다. 다행인 것은 엄마가 피부질환으로 다니던 가까운 대학 병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환자가 매우 약화된 상태라 병원을 옮기는 도중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면 진작 먼저 전원 얘기를 했어야 옳지 않나. 충격받은 나는 혼란한 마음으로 외삼촌, 이모, 아빠에게 연락해 의견을 물었다. 나 혼자 정할 수도, 정하기도 싫은 문제였다. 선택 한 번으로 엄마를 보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모두 조심스럽게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나도 그쪽이 맞는 것 같았다. 적어도 도로 위에서 눈감는 엄마를 보고 싶진 않았다.

가족의 결정을 전하려고 찾은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의사가 소리쳤다.

“○○ 대학 병원에서 받아 준답니다! 얼른 갈 준비하세요!”

“네? 그렇지만 좀 전에 이송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자리가 날지 알 수 없어요!”

긴박하고 어딘지 간절한 의사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 무력하게 현상을 유지하느니 뭐라도 해 보는 게 낫겠지.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의사의 안내대로 전원을 준비했다.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정산하고 진료 기록을 받았다. 일반 구급차로는 의료 장치를 실을 수 없어 사설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간호사는 따뜻한 말로 배웅해 줬다.

“거기 가셔서 꼭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그 말을 들으니 그렇게 될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희망이 피어났다. 엄마를 태운 베드를 구급대원과 함께 이끌고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그 희망은 금방 절망으로 변했다. 의료 장치에서 빨간불이 나며 계속 삑삑거린 것이다. 구급대원이 장치를 만져도 그대로였다. 뭔가 이상이 있는 건가요, 왜 이러는 건가요, 엄마가 괜찮은 걸까요 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도 겉으로 절대 내뱉지 않았다. 부정한 말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얼굴만 바라보며 최대한 차분함을 가장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티가 난 모양이었다. 구급차에 타고 대학 병원으로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구급대원이 말을 건넸다.

“장치에서 소리가 나도 괜찮아요. 어머니 상태 체크 계속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이에요. 어머니한테 말 많이 걸어 주세요.”

엄마 손을 붙잡고 상황을 이야기하고 얼마만큼 왔으니 조금만 견뎌 주라고 주문처럼 되뇌었다. 엄마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고,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오히려 나를 응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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