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_재회
7월 18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에드먼턴 공항에서 제부를 만났다. 편하게 말을 놓아야 하나, 아니면 선을 긋고 존댓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고민은 소용도 없이 두말이 섞여 나왔다. 사실상 제부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카톡이 아닌 대면하여 말하는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의아하겠지만 그런 관계도 있다는 걸 나도 동생 덕분에 알았다.
동생의 졸업식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학교 졸업식 날 우리 가족은 모두 학교로 향했다. 먼저 가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던 동생을 발견하고 부르려던 찰나 멀리서 세명의 아이들이 동생에게 걸어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수줍게 인사하던 키 큰 사람. 그 친구가 제부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부는 동생과 연애 중 큰댁이 있는 캐나다로 갔고, 그 후에 동생이 캐나다로 떠났다. 그렇게 된 연유였다. 동생이 캐나다로 떠나고 초반에는 종종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당시에도 존댓말을 했다 말을 놓았다 아리송한 이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고민했었는데 만남의 순간에 또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멀리서 걸어오는 제부를 한눈에 알아본 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날 보지 못했는지 잠시 앉은 제부 앞으로 걸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제 몸만 한 캐리어 하나와 그보다 작은 캐리어 하나, 두 개를 힘겹게 그러나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마시겠냐는 물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필요하다 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어 더블더블을 주문했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캐나다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커피는 더블더블이라고 한다. 믹스커피와 비슷한 맛이라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둘둘 - 더블더블
주차돼 있는 구역으로 걸어가서 차를 탔다. 침묵의 눈치게임이 시작되는 순간, 제부가 큰어머니께서 부탁하신 일이 있다고 코스트코를 들려야 한다고 했다. 좋다고 했다. 공항 근처 코스트코에 도착한 뒤 내가 따라가도 되겠는지 물었다. 마트는 언제나 재밌는 곳이니까.
카트를 끌고 물건을 찾는 제부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코스트코 폐점시간에 가까워질 무렵 나와 다시 짐을 싣고 움직였다.
최종 목적지를 향한 마지막 이동.
여전히 해가 떠있었고 밝았으며 이는 충분한 대화의 소재였다. 아직도 날이 밝은 것이 신기하다고 여러 번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러다 잠시 침묵하기도 하고, 침묵이 찾아오면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찍었다. 제부는 그런 날 배려하려는 듯 집중해서 운전해야 될 상황이 아닐 때에는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제부가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 동생이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의 이야기,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 한국인 가구가 몇 가구인지, 그 마을의 인구가 얼마인지. 캐나다의 여름과 달리 겨울의 해가 얼마나 짧은지. 창밖으로 보이는 노란 대지가 유채꽃이란 사실. 아빠가 되어 드는 걱정들.
제부가 캐나다에 왔을 때는 부탁으로 소금을 들고 왔었는데 곤경 한 상황에 놓였었다고 하기에 건어물에 대해 말했고 꽤 길게 대화를 했다. 동생이 캐나다에 왔을 때 차 뒷자리에 앉아 울었다는 이야기에는 창밖을 보며 찡해진 코 끝과 차오르는 눈물을 감춰야 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눈물이 많다고 얘기하기에 우리 집에서 잘 우는 건 나라고 말하며 언제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울어?"라고 되묻던 아이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침묵이 찾아오는 것이 반복되었다. 광활한 대지는 끝없이 이어졌고 자칫하면 졸음 운전 하기 십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대화도 나눴다. 그러던 중 조금 급하게 우회전을 하는 모습에 운전이 거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마치 탐색전을 펼치는 기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침묵도 어색한 수다, 중간중간 불안하게 느껴지는 운전 실력은 문제가 아니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매우 갑작스럽게 급해졌다. 어색함에 커피를 쭉쭉 들이켠 탓이었을까. 분명 공항에서 화장실을 들렸는데 두 시간 참는 건 일도 아닌 나인데 참기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인지 제부도 말이 없어지고 있었다. 아직 한 시간을 더 가야 했다.
길어진 침묵 사이로 제부가 말해왔다. 다니던 길이 아니라 초행길이라고 네비가 다른 길을 알려줬다고. 그 얘길 들으니 화장실도 화장실이지만 이 길이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실 길을 잘못 들어 긴장이 된다는 말을 하기 전에 제부도 나처럼 화장실이 급해졌다고 오해했었다. 그 정도의 긴장감이었다.
길은 덜컹거렸고 각자의 사정으로 침묵하고, 도착 20분 전이 되었을 무렵 제부가 안도하는 듯 이제 아는 길이라고 말했다. 나는 전혀 안도할 수 없었지만 다행이라고 여유 있는 모습을 유지했다. 점점 마을에 가까워질 무렵 옆으로 기차 한 대가 나타났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제부가 난감한 듯 말해왔다. 저 기차보다 빨라야 한다고 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기찻길이 있고 저 기차가 먼저 그 길을 지나면 그 앞에서 오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속으로 외쳤다. 달려!!!
나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로 한 시간을 왔다. 제부가 기차를 이겨야 했다. 다행히 간발의 차로 기찻길을 지났고 우리가 지나가자 안전바가 내려왔다. 도착 5분 전, 제부는 집으로 가지 않고 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과 나, 너무 오래 보지 못한 두 사람을 위한 배려였다.
사실 난 너무 급하기도 했지만 도착하니 해가 져버린 데다 병원 면회 시간이 끝났을 거라 생각했다. 아쉽지만 동생은 내일 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제부는 병원 면회 시간이 따로 없다고 했고 그렇게 병원에 내린 난 울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병실로 발을 옮겼다.
황달 치료를 위한 푸른 광선이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티브이는 사랑을 싣고의 음악을 부르며 땅콩이를 안은 채 병원 침대에 동생이 기대어 누워있었다. 돌아보니 생각보다 격한 재회의 장면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치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난 사람들 같은 느낌. 언제나 옆에 있었던 것 같은 감정. 울지 않았고 벅차오르기보다,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짧은 재회를 마치고 동생네 집으로 왔다. 문 앞에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난 혹시 키우는 고양이일까 봐 어머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네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행히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었고, 되려 너무 까매서 무섭다는 말을 해오는 제부 덕에 안심했다. 고양이는 느릿느릿 떠났다. 제부는 병실에서 잔다고 했고 짐을 옮겨 준 뒤 떠났다. 혼자가 되었다.
7월 18일 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한 캐나다의 어느 마을. 낯선 곳, 낯선 집에 두 개의 캐리어와 내가 있었다. 오묘한 감정들 속에서 제부가 나가자마자 난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잘 참은 날 칭찬하면서 소란스럽게 짐을 풀었다. 길고 길었던 18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