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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Aug 27. 2024

자존심의 꽃이 떨어지려면.

감사편지 서른두 번째. 시간이 더 필요해요!!!

아무리 부정해도 '악연'은 있나 봅니다.

저에게도 한 공동체를 떠나기 전 반드시 해결하고 싶었던 '악연'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이제는 넘어섰나? 하고 보면 여전히 그분의 벽 앞에서 저의 마음이 요지부동임을 재확인하는 일은 벌어지지요.


얼마 전 모 행사에 예상치 못한 이분의 참석소식은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일이? 숙소도 같은 방입니다.

단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분이기도 하셨고 저의 상식에선 도대체 왜 오시는 거야? 그것도 온 가족 출동이라...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묵은 감정들은 털어버리자 다짐 다짐을 했지만 역시나 '악연은 악연'입니다.

굳이 이분 앞에서 저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비빔국수를 하랍니다.

딸랑 일회용 부탄가스레인지 하나에 50인분 국수를 삶으라니!!!

5인분 이상 삶아본적도  없는데...


아! 진짜 왠수 같은 인간들!!!  이 망할 놈의 비빔국수!!!  다시는 안 먹을 듯합니다.




늦은 저녁,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

한분이 그럽니다.


"ㅇㅇ부 같이 섬길 때  ㅇㅇ님은...  그래요 카리스마가 넘치셨죠. 멋있었어요"


맞습니다.

그때의 저는 40대의 패기와 열정으로 소멸되어 가는 ㅇㅇ부라는 부서를 [올해의 부서상]까지 받게 될 정도로 성장시켰습니다.  

그 인정과 칭찬 때문에 원래 임기보다 일 년을 더 부장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해, 저는 이분과 악연으로 만나게 됩니다. 


 'ㅇㅇ공동체 사람들과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어린이집 실습자로 오기를 원하는 그를 덜컥(오지랖 넓게) 허용하고 맙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선 같은 부서까지 섬기게 됩니다. 이 결정은 지옥의 레이스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마 서로를 잘 모르니 서로가 그랬겠죠?

공동체에서 한 지체이니 학업과 강의와 연합회일로 분주했던 저로선 어린이집에 도움이 되기를, 그분은  '배려와 혜택'을 기대하고 있었겠지요.

이 동상이몽은 공동체를 넘어 어린이집의 운명까지 뒤 흔들어버리는 결과를 낳아버립니다.

버티고 견디다 생전 처음으로 죽을 만치 패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는 정말 죽을 거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죠.


브런치북 [백수가 무어그리 바빠?] 3회 번아웃이 왔다. 이 글 속에 그때의 감정은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소용돌이는 여전한데 다른 부서에서 또 '악연'은 이어집니다. 아! 징글징글하다!!!.


그만두어야 하는 타이밍을 또 놓쳐버려 이번엔 해리증상까지 일시적으로 동반합니다. 응급실로 직행입니다! '진정제'라는 걸 투여했습니다. 겨우 일 년 전 이야기이네요. 딱 작년 이맘때이군요.

이분은 참 옷깃도 스치기 싫습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그분은 또 함께했습니다.

이미 저의 직관이 긴급하게 경고음을 울려 되었습니다.


경고!  경고!


저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죠.

이번 행사를 마치고 그분을 향한 저의 색안경은 더 짙어진 거 같습니다.


진짜 이분은 악연이다!!!





C 님!!


그동안 C님께서 제게 보여주셨던 관심과 신뢰 그리고 무한한 사랑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 이상은 이 공동체에서 마음을 열지 않겠다고 했지만 유쾌하셨던 두 분 덕에 제가 다시 마음을 열었습니다.


원래 이번 감사편지의 글 주인공은 그분이 될 계획이었습니다만, 아직 제가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더 있어 주인공은 님이신가 봅니다.


C님!!

제가 이런 말을 한 거 같아요. 혹 기억이 나시나요? 김창옥 교수님의 말을 빌려왔죠.


저의 자존심의 꽃이 떨어지면 인격의 열매를 쥐고 자유로워지겠다고.



아쉽지만 저의 그분을 향한 자존심의 꽃은 지금 더  절정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네요. 

100통의 감사편지가 마무리되면 그때쯤 제 자존심의 꽃이 질까요?


C님!


부모교육을 하다 보면 영. 유아들의 행동 결과에 대한 과한 칭찬의 부작용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담감으로 일부러 부정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지나치게 친밀해지거나 잘한다는 칭찬으로 제가 설정해 놓은 경계선이 침범되면,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제가 바로 물러서게 되죠. 경계선을 넘어오는 건 무례함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한답니다.

그걸 괜찮은 척 견디고 버티다 보면 제가 아파요. 지금까지 그랬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표정에서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건 저의 감정의 그림자임을 이제는 압니다.

그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렇다는 걸 들킨 거 같아 거리 두기를 더 하는 편이지요.


어느 분이 진심으로 그러시더군요.


제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제발 아프지 말라고요!!!


하나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를 너무나 잘 아는 그분의 간절한 눈빛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러시는 거 같았어요.


"네가 평안하길 원해."

"누군가 내가 아닌, 너를 의지하게 만드는 건 내가 기쁘지 않아."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 인가 봅니다.

더 제가 하나님의 영역을 월권하면 지나온 경험처럼 서로 인사하기도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남편이 오늘 점심은 비빔국수가 어떠냐고 물어보네요.

자존심 꽃 피우느라 그날 못 먹은 비빔국수 오늘 매콤 달콤하게 한 그릇 해야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의 자존심의 꽃이 질 때쯤 다시 안부편지 드리겠습니다.


2024년 8월 27일 김 ㅇㅇ드림




https://youtu.be/4 EGl1 PqoE8 Q? si=gKLJXRJeij4 pCC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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