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주어져야 가지는 선물이란다.
별아!
늦 장맛비가 온 듯 아닌 듯 내리고 있는데 바닥이 촉촉 한걸 보니 꽤 왔나 봐.
타들어가던 잔디가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록색을 뿜어 내는 날이야.
별이가 며칠 전 놀다 간 물풀장을 담은 박스가 눈에 들어오네.
그날은 햇살이 좋아서 하루 종일 물속에서 놀아도 괜찮았는데 오늘이었으면 엄두도 안 나겠는걸.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는 그날 할 수 있는 걸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겠어.
오늘 할머니는 초록색으로 가득 채운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별이와 찍은 사진들을 잠잠이 찾아볼 거야.
별아!
할머니는 어제 합창단 정기연주회 때 사용할 프로필 사진을 찍었어.
미용실에 들러 머리에 힘도 주고, 뽀얗게 화장한 얼굴에 맞게 진한 빨간색 립스틱도 발라주었단다.
연예인처럼, 그동안 보았던 포즈들을 흉내도 내 보면서 사진사와 깔깔대며 웃기도 했었지.
별아!
"사진 기대해요"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니 꽤나 굵은 빗방울이 퍼붓더라.
비를 피해 벽에 기댄 채 합창단 톡에 올라온 정기연주회 때 사용 할 '가족사진' 반주곡을 들었어.
빗소리와 함께 나지막하고 잔잔한 첼로의 선율로 시작하는 곡은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들었단다.
아마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을 거야.
누군가 옆에 같이 있다면 이어폰 한 개를 귀에다 꽂아 주고 싶었어.
별아!
얼마 전, 할머니의 친구분이 조용히 천국으로 떠났어. 할머니는 누군가의 죽음을 이리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건 드문 일이야. 차마 조문을 가지도 못했어.
올봄에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냥 툴툴 털고 오실 줄 알았지. 몇 번이나 '안부톡을 보내야지' 했는데 '내일 해야겠다' 그렇게 미룬 것이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단다
그래서 할머니는 '오늘은 오늘뿐'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았지.
'내일'이라는 건 하나님이 주시면 가질 수 있는 선물인 거야!
별아!
어제처럼 다시 빗소리가 토닥토닥 들려오네.
다시 첼로 선율을 보태어본단다.
타이타닉 같은 멋스러운 유람선 갑판에 앉아, 붉은 노을 기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듣는 것처럼, 오늘도 눈을 감아 볼 거야.
노부부가,
아니면 노년의 친구가,
함께 빛바랜 앨범 한 장 한 장을 넘겨보는 것처럼 오래된 기억들을 끄집어 내 볼게.
별아!
하나님 선물로 주어진 오늘을 마음껏 누리어 본단다.
별이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신나고 즐겁게 행복해!
사랑해 별아!!
다음 주 다시 만나!
텃밭 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