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안에 그림자
어른이 되었다는 건 언제 알게 될까?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는 어른이 되는 것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리광을 피운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아이가 있다. 진정한 어른스러움은 어떤 것일까?
한때 어른이 된다는 것을 나의 아이스러움을 죽이는 것인 줄로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인생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 안의 웃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피터팬> 영화에서 웬디는 서랍에 피터팬의 그림자를 넣어둔다. 피터팬에서 그림자는 아이 때 이루지 못한 어른의 꿈으로 묘사된다. 영화 속에서 웬디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도 그림자를 서랍에 넣어두고 자주 꺼내본다고 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철없었던 꿈을 서랍 안에 고이 넣어두고, 발 딱 붙이고 차렷하고 하루하루의 일들을 견뎌나가는 것일까. 그렇게 1년, 2년… 시간은 지나고 우리는 가장 행복한 추억을 생각하며 마법가루를 뿌리더라도 다시는 날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 걸까.
서랍 안에 간직해둔
당신의 그림자가 있으신가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여왕의 정원으로 가게 된다. 그곳 언덕에서 앨리스는 붉은 여왕에게 하얀 여왕의 졸이라도 되고 싶다고 한다. 붉은 여왕은 네가 좋다면 하얀 여왕의 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달리기를 시작한다. 여왕은 더 빠르게 달리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계속 달렸음에도 그들 주변에 있는 풍경은 바뀌지 않는다. 앨리스는 붉은 여왕에게 모든 것이 똑같은 위치에 있다고 묻는다.
붉은 여왕은 말한다.
“당연하고 말고. 그럼 어떨 거라고 생각했지?”
앨리가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한참 동안 빨리 달리면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거든요.”
붉은 여왕이 대답한다.
“느림보 나라 같으니! 자, 여기에서는 보다시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리는 수밖에 없단다.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해.”
< 거울나라의 앨리스 > 중
현대사회의 우리는 이미 앞선 것들을 따라잡기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이미 뒤처져있다면 2배, 3배 빨리 뛰면서 따라잡기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변화는 사회 속도는 이미 나의 속도를 넘어선 지 오래된 듯싶다. 그리고 경쟁하는 삶은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따라잡았다 생각한 순간 따라 잡히는 꼬리잡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천진난만함은커녕 우리가 어떤 어른이 돼야 하는 지도 까먹고 또한 가야 할 길도 잃게 만든다.
예전에 광화문역사 안 한쪽 벽에 <어린 왕자>의 글귀가 붙여져 있었다. 그 문장을 보면서 항상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어른들은 모두 처음에는 어린이였어.
그러나 대부분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지.”
그렇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흐릿한 잔상만 남아있을 뿐.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기 싫은 일도 때때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책임을 지고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죄송하다는 말을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서로에게 지켜야 되는 선을 오차 없이 지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도세, 관리비, 난방비를 낸다는 것이다. 내 한 몸을 이 세상에서 지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울지 않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재정의 해보려 한다.
어른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의 파편을 마음 한편에 간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에 기대어 웃으면서 꿋꿋이 살아나가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것은 어느 나이에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배우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것은 가끔씩은 울기도 하고, 가끔씩은 아이같이 웃기도 하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것은 내가 가진 삼각형에서 사각형으로 오각형으로 작은 균형에서 큰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서랍에 그림자를 고이 접어 넣어놓았다.
때때로는 꺼내서 한 땀 한 땀 수 놓인 그때의 꿈을 곱씹기도 한다.
그림자를 서랍장에 다시 넣었다.
그래. 다시 넣어 놓고
한동안 찾지 않는 시기도 있겠지만,
나의 환상 속 동화를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기로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