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게 고함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by 선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의 답은 시원스레 나오지 않는다.


만약 좋아하는데 그 일을 잘 못한다면 좋아하는 마음이 지속될 수 있을까?

잘하지만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에 열정이 없는 것일까?

열정이 없는 삶은 불행할 것인가?

인생을 리허설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비교군이 있어야 더 나은 것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살아볼 뿐밖에는 답이 없다.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 나이 때에 흔히 걸리는 중2병이 단단히 걸렸던 모양인지, 그때 당시 부모님과의 대화는 서로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체로 항상 주제를 벗어나곤 했다. 날이 선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미술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었고, 교내에서 화재방지 포스터 대회 같은 것을 열면 상을 항상 탔었다. 반 친구들에게도 그림 잘 그린다고 으레 인정받는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이것저것 다른 것들을 해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미술학원은 그만뒀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으로는 항상 그리웠었던 것 같다.

15살 때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던 부모님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는 바로 예고 입시였다. 같은 꿈을 좇는 그들 사이에 있고 나니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기도 했었으나, 이미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길을 밟아 온 선두주자들은 항상 내 앞에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그림을 그리면서 묵묵히 시간을 채웠다.

그림이 좋은 이유는 바로 침묵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말로 납득시키지 않아도 되는 고요함.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고
그저 앞에 있는 종이와 연필,
혹은 붓을 가지고 집중하는 그 시간이
나에겐 위로와 치유, 그 이상이었다.




여름 방학이었다. 학원에서는 기본적인 소묘도 했었지만, 방학기간에는 번외로 유명한 화가를 하나 선정해서 그들의 기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졌었다.

몬드리안,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등. 그들의 기법을 참고하여 내가 생각한 것을 그려봤었다. 그때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주변의 친구들이 잘 그린다고 말해주던 것이 생각난다.


“언니는 어떻게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지?”

라고 한 동생이 얘기하자

그때 당시 내가 어머니 다음으로 따르던 미술 원장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언니 그림이 멋있는 이유는

항상 그림에 자신의 생각을 담기 때문이야.



그러던 어느 날 원장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일대일 면담이었다.

긴장된 공기 속에 선생님께서 먼저 운을 띄우셨다.


“너 미술 하지 마.”

“네?”

“선생님이 생각했을 땐 너는 미술 하면 안 돼.”

“어… 음…”

“어떻게 생각해? 그럼 미술 그만둘 거야?”

“……”

아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잠시만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선생님은 앞뒤 다 자르시고 나에게 갑자기 미술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머릿속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이 선생님은 어머니 다음으로
내가 믿고 따르는 사람이다.
이 분의 말을 나는 무조건적으로 무시할 수가 없다.


찰나의 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적막.

한숨을 후우 쉰다.

침묵을 깨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미술 그만둘게요.”

라고 말하자마자

선생님이 펄쩍 뛰셨다.

예상치 못한 리액션에 내가 더 놀랐다.

선생님이 거의 절규를 하시듯이 말씀하셨다.

“아니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무슨 소리세요! 절대 싫어요!

저 미술 할 거예요! 말리지 마세요!

선생님이 뭔데 제가 미술 하겠다는 데

하지 말라는 거예요! 했어야지!!!”

“…네?”


그때 알았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은 누군가가 뜯어말리더라도 내가 세상에게 고함칠 만큼의 확신과 의지를 갖는 일이어야 한다고.



시간이 지나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그 질문은 아직도 헷갈리고 어렵다.

그때 미술을 하고 싶다고 내 주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대의견을 무릅쓰고 고함쳤었어야 했을까.

나는 길을 잃은 상태로 너무 오래 있었던 걸까 하는 내 머릿속의 생각들도 나를 항상 괴롭힌다.


그러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이 생각만은 변하지 않을 거다. 인생이라는 길을 계속 걷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선택에 관한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내가 싫어하는 일과 잘 못하는 일들은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걸러낸 선택지 중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


행복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지속할 수 있는 일은

나에게 열정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가 거듭해서 반복하다 보면 결국에 그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인생에 정답은 없다.

내 길은 내가 만들어가야만 한다.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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