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프랑스어는 두 달, 스페인어는 한 달 정도 배운 적이 있다. 뜻은 몰라도 대강 글을 읽을 수는 있는 것이다. 그 말인즉 간판을 읽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행 중에 내가 찾는 곳이 어딘지 알고 들어간다는 것은 꽤 중요하다. 간판을 못 알아봐서 같은 곳을 뱅뱅 맴도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주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적힌 걸 읽을 수 있는 것과 그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쿄에선 나는 그저 까막눈의 여행자이다.
왜 일본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이 기억났다. 시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제2외국어 과정으로 중국어와 일본어 중 선택해야 했고, 다소 쉬워 보이는 일본어를 골랐다. 그렇게 2년을 배웠다. 그다음은 대학교다. 영문과 학생이었던 나는 교양 과목으로 일본어를 한 학기 수강한 적이 있고, 역사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사학을 복수 전공하며 일본의 역사와 문화도 배웠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모든 것을 잊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히라가나에서 가타카나로 넘어갔다 한자에서 포기하길 반복하며 말이다. (일본의 한자는 같은 글자도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 인지라 일본인도 한자를 잘못 읽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의 나는 일본어는 물론 일본의 문화나 역사,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한다. 다만, 여행을 할 뿐이다.
왜 옛 어르신들이 70, 80세에도 학교를 다니며 한글을 배웠는지 알겠다. 글을 모른다는 건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히라가나는 대충 알아본다 해도 도쿄의 대부분 표지판이나 안내문, 메뉴 등 모든 게 가타카나와 한자의 어지러운 조합이다. 내게는 글자가 아니라 그림처럼 보였다. 요즘은 번역 애플리케이션도 잘 나온다 지만 나는 잡히는 와이파이에만 의존하는 아날로그 여행자다. 길거리나 동네 노포에선 무용인 것이다. 심지어 그런 곳은 영어 메뉴판도 없다. 직원이 도와줄 수 있으면 다행이다.
글을 몰라서 가장 안타까울 때는 바로 마트나 편의점이다. 딸기나 바나나, 고구마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으면 도통 제품의 포장만으로 무슨 맛인지, 안에 뭐가 들어있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먹을 거에 있어서 만큼은 도전정신이 부족하기에 아무거나 집을 수도 없다. 여러 차례 도쿄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 흔한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 먹어본 적이 없는 이유이다. 그저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이 무서웠다고나 할까.
나는 까막눈이다. 그러나 찾아갈 곳의 간판 사진을 캡처해 저장해 놓고 가게의 인기 메뉴를 미리 알아둔다. 직원에게 추천을 부탁하기도 한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데 어려움은 있지만, 포장지 사진을 찍어 나중에 번역 앱을 돌려본다. 다음을 위한 거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미친 척 아무 데나 들어가 아무거나 손가락으로 찍어본다. (물론 부작용이 뒤따를 때도 있다.) 조금은 불편하고 느리지만 이게 내가 도쿄를 여행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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