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앝 Jul 02. 2021

내 탓인걸 너는 모른다

애정하는 사람/물건의 1인칭으로 글쓰기

내 탓인걸 너는 모른다


나는 풀이다

꽃은 피우지 못하지만 초록이라도 길러내 보려는 풀이다

나를 너의 곁으로 보내던 사람은 너에게 말했다

열흘에 한 번씩 나를 흠뻑 적셔달라고 했다


너는 열흘에 한 번 내게 다가와 비를 내렸다


뉴스가 말했다

이상 기후라고 했다

매일같이 조금씩 내리는 비로 인해 네가 주는 물을 다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열흘 후 너는 다시 내 몸을 적시러 왔고

나는 다가올 열흘을 위해 있는 힘껏 입을 벌려 벌컥벌컥 애써보았다

이따금 소나기가 내리고 너는 창문을 닫았다

실외기가 웅웅 울었다

그리고 너는 너와 나 사이에 있던 창을 한번 더 닫았다

나는 갇혀버렸다


너는 가끔씩 창을 열고 내게 다가와 말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 네가 주는 물을 다 마셔내지 못한 내 탓인걸 너는 모른다

내 발끝이 녹아내린 것은 내 무능 때문인 것을 너는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